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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Mar 11. 2020

딸에게 주는 레시피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따뜻한 요리법 



나는 요리에 영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대학교 땐 공동부엌이라는 핑계로 단 한 번도 요리를 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부터는 지친다는 이유로 배달음식만 먹었다. 엄마는 늘 요리하는 온기가 있어야 집이 아늑해진다고 했다. 정말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집에서 냉기가 흘렀다. 그러다 보니 가계에도 빵꾸가, 내 소중한 위장에도 빵꾸가 나버렸다. 


돈 아끼는 데는 약속 줄이는 게 최고고, 위장 아끼는 데는 음식 조절이 필수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줄이고 집에서 몇 가지 필수 채소들을 구비해 먹기 시작했다. 가끔 엄마찬스로 불고기나 밑반찬을 얻을 때면 나름 임금남 부럽지 않은 소박한 밥상을 마련할 수 있었다. 좋은 단백질과 지방을 챙겨야지 싶어 아보카도도 썰고 연어도 구워 먹을 때면 레스토랑에 온 듯한 느낌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요리에 관심이 생겼고, 오늘은 어떤 걸 만들어서 먹어 볼까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내가 해먹은 음식들, 나를 위한 (매우) 소박한 한끼 


그러던 어느 날, 회사 도서관에서 <엄마의 레시피>라는 책을 봤다. 너무나 유명한 공지영 작가의 에세이집이었는데, 제목 그대로 자신의 딸에게 손수 전하는, 자기만의 요리법과 삶의 지혜가 담긴 책이었다. 우울할 때는 이걸 먹으렴, 남자 친구와 다투었을 때는 이게 좋을 것 같구나 등등. 책에선 나를 위해 정갈하게 차린 음식이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스스로 무언가 해 먹었다는 성취감, 나를 위해 고민하고 (나름) 엄선한 재료를 먹는데서 오는 뿌듯함, 이렇게 먹지 않았더라면 배달앱에 새어나갔을 돈 2만 원을 아꼈다는 행복함. 단지 요리하고 먹는 것만으로도 이 세 가지 긍정적인 감정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책을 읽으며 진심으로 공감했다. 


레시피와 함께 딸에게 들려주는 인생에 대한 조언도 재밌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어떤 엄마도 딸이 불행한 결혼을 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공지영 작가 또한 딸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넨다.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레시피를 듣는 딸의 마음은 어떨까? 나를 최우선으로 지지해주는 엄마이자,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내 인생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다면, 세상 살며 온갖 풍파를 겪어도 크게 엇나가진 못하겠다 싶었다. 힘들고 지칠 때, 눈 딱 감고 엄마의 레시피를 해본다면 기분이 틀림없이 나아질 테니까. 


나도 한번 더 다짐한다. 아무리 간단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요리라도, 나를 위해 하는 요리는 나를 더 강하고 단단하고, 소중한 사람으로 만든다. 내일도 스스로를 위해 소박한 한 끼를 대접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책 속의 말처럼, 삶은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몫이니까. 


엄마가 언제나 그렇게 말하듯 삶은 자기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몫이다.   ··· 오늘은 혼자서 따뜻한 된장차를 마시며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자.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성공한 날이고, 이보다 더한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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