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5. 호스트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꿀팁이 되는 어떤 태도에 대하여

헬프엑스는 일손을 도우며 다른 사람의 공간에 머무는 여행이다. ‘일’이라는 말이 무겁게 들릴 수 있지만 내가 해본 바,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 헬퍼의 일이란 건 주로 일상적인 것이다. 요리, 아이들이랑 놀아주기, 라마 풀 뜯게 하기, 강아지 산책 시키기, 페인트칠, 텃밭 가꾸기, 심지어 타박타박 걸어서 도시락 배달하기 같은…. 


이런 일을 하며,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노동이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닐 수도 있곘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진정 필요한 건 데이터 분석하고 엑셀 문서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날 보며 꼬리를 치는 강아지 밥 주고 산책 한 번 더 시키는 것, 텃밭에서 금방 딴 재료로 건강한 저녁 식탁을 차려내는 것일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꼭 필요하지만 흔히 다른 이들의 손에 미루어버리는 ‘일’을 헬퍼는 맡아서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은 호스트와 관계를 쌓을 수 있는 기회이자 동기가 된다. 호스트에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아씨시 근처 마을에서 헬프엑스 중. 큰 강아지 하루 네 번 산책 나가는 게 내 일이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말해보자면, 헬퍼로서 호스트와 좋은 관계를 맺는 첫 번째 팁은 이쪽에서 먼저 ‘도와줄까요?’라고 묻는 것이다. 그때는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진정한 ‘도움’이 되니, 내 쪽에서도 기분이 좋다.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먼저 돕겠다고 하는 편이 낫다. 그런 일이 쌓이면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두 번째 팁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맡겨졌다면 정확히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하기 싫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아니라면 일단 하루 정도는 열심히 해보고, 그래도 여전히 하기 싫으면 그때 가서 이야기한다. 또 왜 하고 싶지 않은지 ‘예의 바르게, 우회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강점을 정확히 알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바에는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마음이 가는 다른 일을 열심히 돕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상식 있는 호스트라면 당연히 헬퍼의 생각을 고려할 것이며, 취향과 능력을 존중해서 다른 일을 맡길 것이다. 


헬퍼는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다. 그곳에 온 손님이고, 친구다. 직장에서 일할 때도 물론 그렇지만 헬퍼에게는 무엇보다 자존감이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헬프엑스로 유럽과 남미를 여행할 때 좋은 관계를 지속하며 오랫동안 머문 곳은 모두 헬퍼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했던 곳이었다.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공짜로 먹고 자는 사람을 헬퍼라고 생각하는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곳은 헬프엑스 정신에 맞지 않는다.     

좀 더 적어보자면, 헬퍼는 단지 노동력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헬퍼는 ‘외부인의 시선’을 가져다준다. 건강한 자존감으로 무장한 헬퍼는 여행자의 유연함과 창의성, 외국인의 신선한 관점을 선물처럼 가져온다. 현명한 이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관점, 바로 ‘낯설게 보기’다. 현명한 호스트는 헬퍼의 이러한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한다.      


세 번째 팁은 ‘호스트 물건을 내 물건처럼’ 소중히 쓰는 것이다. 페루 우아라스에서는 원주민 넬슨(그는 잉카족의 후예였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헬프엑스를 했는데, 넬슨이 휴지와 물은 개인적으로 사서 쓰라고 했다. 유럽에선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기에 처음에는 야박하다 싶었으나, 한편으로 합리적이란 생각도 들었다. 해발 3300미터에 위치한 그의 집에선 모든 물자가 귀하다. 적정 사용량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니 휴지 같은 소모품은 차라리 개인적으로 사서 쓰는 게 낫다. 정말 낭비하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나도 누군가를 오래 집에 들였을 때 소모품은 개인이 알아서 구매해 쓰길 바랐다. 이를테면 세탁 세제 같은 것들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 소유로 생각해야 조금이라도 아끼는 법이다. 

‘내 물건을 자신의 물건처럼’ 아껴주리라 믿을 만한 사람들과는 뭐든 공유할 수 있지만, 그렇게 신뢰가 쌓이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헬퍼는 이러한 호스트의 입장을 이해하고 사소한 물건 하나까지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이러한 생각을 호스트에게 조금은 ‘어필’할 필요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4. 어떻게 남의 집에 가서 살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