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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여동생 Jan 18. 2018

디테일의 미학, 스몰데이터

[IT인문학] #1 스몰데이터

정확한 의미는 몰라도, 뉴스나 인터넷 등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과 제조업의 디지털화가 주축을 이루었던 3차 산업혁명에서 진일보한, 다양한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와 사회 전반에 접목되어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차세대 산업 혁명을 지칭하는 용어다.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기술이 바로 인공 지능(AI), 사물 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인데, 그중에서도 빅데이터는 PC와 인터넷, 모바일 기기 등을 이용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방대한 양의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의 콘텐츠를 의미한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25XX53100001



“디테일에 집중하는, 스몰데이터”


대규모의 정보인 빅데이터를 잘 분석하면 특정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들의 유의미한 피드백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갑자기 화제가 된 이슈, 질병이 발생하는 장소나 시점에 대한 트렌드 등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와는 반대로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개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스몰데이터’이다. 방대한 양의 디지털 데이터를 분석하는 빅데이터와는 다르게, 이 스몰데이터는 개인의 취향이나 필요, 건강 상태, 생활양식 등 사소한 행동에서 나오는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마케터가 SNS상의 모든 정보를 분석해서 ‘이번 겨울에는 롱 패딩이 유행할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는 것이 빅데이터 분석이라면, 누군가가 SNS에 ‘왜 패딩은 대부분 무채색만 나올까?’라고 쓴 것을 보고 다음에 출시할 패딩 컬러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 것은 스몰데이터 분석에 가깝다.



요즘 이 스몰데이터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미 진행된 과거의 데이터를 가지고 통계적 기반 위에서 분석이 이루어지는 빅데이터와는 다르게, 소소한 감성과 작은 행동들을 관찰하여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미래지향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파산 직전에 몰렸던 레고(LEGO)사에서 ‘미래 세대는 이전 세대와 비교했을 때 시간과 인내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복잡한 블록에는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따르지 않고, 어느 소년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린이들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본인이 선택한 무언가를 발전시키고 성취해낸 증거가 되는 물건을 갖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더 작고 정교한 레고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위기를 극복할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광범위한 시각으로 흐름을 살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한참을 자세히 들여다볼 때 그제야 보이는 일은 우리 삶 속에서도 흔히 존재한다. 매일 출근하기 위해 바쁘게 오가던 동네 골목길이, 여유로운 주말 한낮에 천천히 걸으며 건물 유리창에 비치는 햇빛과 가게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걸으면 전혀 다른 동네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소설책을 볼 때도 줄거리를 따라 정신없이 읽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시 한 번 책을 펼쳐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면 아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감정은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1997)’를 보면서도 잘 느낄 수 있다.



“비극 속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인 귀도는 나치가 이탈리아를 점령하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간다. 사랑하는 부인 도라와 분신 같은 아들 조슈아가 모두 수용소행 기차에 오르지만, 도라와는 헤어져 아들 조슈아와 함께 남자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귀도는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무자비한 수용소 생활을 단체 게임이라고 속이고, 1,000점을 먼저 따는 우승자에게는 진짜 탱크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어느덧 전쟁이 끝났다는 말을 듣게 되지만, 끝내 탈출을 시도하던 귀도는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사살을 당한다.



이 영화는 크게 봤을 때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고, 결말 또한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난다. 하지만 단순히 슬픈 영화로만 평가하기엔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장면이 너무나 많다. 이 영화는 결코 나치 통치의 악함이나 유대인의 역사적 슬픔이 아닌, 극한상 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무서워하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노력하는 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슈아에게 독일군 자녀들이 밥 먹을 때 몰래 함께 먹도록 재치를 발휘하는 장면이나, 수용소 방송실에서 아내와 같이 들었던 오페라 음악을 틀어주는 장면, 마지막 총살을 앞두고도 아들에게 끝까지 게임인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장면까지. 전쟁이라는 큰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한 명 한 명의 삶의 표정을 들여다보면, 이처럼 시대적인 아픔을 뛰어넘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전쟁과 비극이라는 빅데이터가 아닌, 그 속에서의 가족의 사랑이라는 스몰데이터를 눈여겨본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시각이 빛났던 영화였다.




“아이디어는 지나치기 쉬운 곳에 숨어있다”


가끔씩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기획하기 위해 사용자 조사를 할 때가 있다. 어떤 사용자를 인터뷰 대상자로 삼을 것인가를 정할 때, 서비스나 제품의 정상적인 타깃 고객군이 아닌, 극단적 사용자(extreme user)나 비사용자(non-user)와 같은 조금은 ‘특이한’ 사용자를 선정할 때가 많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적인 사용자들을 통해서는 트렌드나 기존 서비스에 대한 불편함을 파악할 수 있는 반면, 예상 범위를 벗어난 소수의 사용자들을 통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수가 적다고 중요하지 않은 사용자로 치부한다면 결코 독특하거나 개성 있는 사용자들이 주는 인사이트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얘기한 바와 같이 IT 업계에서나 마케터들에게 스몰데이터는 그 가치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당신 인생 가운데 스몰데이터는 무엇이며 혹시 무심코 지나쳐지고 있지는 않은가?  이직, 결혼, 육아, 취업 등 어떤 인생의 큰 흐름 가운데 당신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없는 삶 가운데서도 따뜻한 코코아 한 잔, 오랜 친구와의 수다 같은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있지 않기를,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디테일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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