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생각
돈은 참 무섭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그리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에서도 돈을 벌고 모으는 것, 또 쓰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돈이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많은 것들이 돈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이 아주 많으면 제일 좋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가질 수 없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행복을 보장할 정도의 수준이라도 가지기를 바라는게 차선의 욕구일텐데, 이 '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 참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주관적인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일상을 살아간다.
개개인의 삶을 놓고 볼 때는, 각자의 가치에 맞게 돈을 열심히 벌고, 또 그에 맞게 쓰고 또 모으며, 또는 적극적으로 불리며 살아가면 별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수준의 돈도 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사실 가장 큰 문제지만, 그런 경우는 오늘 하고자 하는 말과는 연관이 적으므로 예외로 한다.) 그런데 돈에 대한 가치가 상이한 다른 개인이 마주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A라는 사람이 100을 번다. B도 100을 번다. A는 돈을 잘 모으고 불려서 좋은 집과 차를 사고, 자식들에게 물려줄 여분의 자금을 모으는 게 목표다. 50이 어쩔 수 없이 필수로 드는 생활비라면, 30은 저축을 하고, 10은 재테크에 활용하고, 10을 소비성 여가 항목으로 지출한다. B는 똑같이 50을 생활비로 쓰지만, 사람들과 함께 좋은 것을 나누고 순간순간을 누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자 인생의 목표다. 그래서 저축은 10만 하고,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사먹거나, 불우이웃을 돕거나, 문화생활 등에 40을 쓴다. A와 B가 자주 함께 만난다면, A는 돈 쓰는 것에 인색해질수밖에 없고, B는 그런 A를 보고 서운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쌓인다면, A와 B는 서로 만나고 싶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예시로 든 상황은, 단순히 친구와 만났을 때 밥값이나 커피값을 누가 자주 내느냐 정도로 생각될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더 민감한 상황들이 많이 생긴다. 누구의 가치관이 맞고 틀리다는 것을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돈의 영향력이라는게 생각보다 너무 광범위해서 놀라는 일이 요즘 자주 생긴다. 내가 돈에 대해 가진 기준이 명확하면, 상처를 줄 일도, 상처를 받을 일도 많아진다. 특히 가까운 사이에서는 더 그렇다.
굳이 나누자면, 나는 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소시민이지만 (이것도 주관적인 평가일 수 있다), 주위 사람들에 비해 돈에 대한 스트레스를 조금은 덜 받는 편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않다는 뜻은 아니고, 수중에 모아놓은 돈이 많지 않은 현재의 상황이 크게 불안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첫 번째 이유로,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보면 있다가 없기는 쉽지만, 없다가 있기는 개천에서 용나기만큼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필요한 만큼의 분량을 내가 믿는 신이 꼭 필요할 때에 채워주실거라는 바보같은 믿음이 있다. (그 필요한 때와 분량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것이 대부분이고, 방법도 아주 고생스러울때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런 믿음은 여러 번의 개인적인 경험과, 그리고 성경이라는 책에서 그렇게 얘기함에 근거한 것이다. 누군가는 그 믿음이 아주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냥 내 얘기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큰 돈이 드는 자산에 대해 기대하는 수준이 낮은 편이다. 집도 없고 차도 없지만 크게 부끄럽지도 불편하지도 않고, 지금 뿐만 아니라 평생 좋은 집에 살지 않는다고 해도 함께 사는 사람과의 트러블이 없다면 적절히 행복할 것 같다. 다행히 남편도 지향점이 같은 사람이다. (물론 아이가 있는 선배들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을거라 말을 한다.)
여튼 이런 이유로, 나는 번 돈을 내가 생각하는 '좀 더 가치있는 일'에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데, 최근 가치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몇 번 겪게 되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왜 더 중요한 일의 가치를 알아주지 못할까라는 섭섭함과 원망이 먼저 생겼다. 하지만 곧 각각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상황과 가치가 다를 수 있고, 그것을 내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은 아주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믿는 이 믿음만큼, 그들도 돈을 어떻게 써야 행복에 더 가까워 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 씁쓸했다. 그들이 나를 아직 세상물정 모른다고 안타까워한 그 만큼.
통근버스를 타고 퇴근하는데 옆 사람이 가죽재킷을 입고 꾸벅꾸벅 졸면서 가죽 시트와의 마찰로 발생하는 소리가 계속 귀를 괴롭힌다. 그냥 듣기 싫은게 아니라, 계속 들으니 화가 날 정도다. 하지만 그 소리를 없앨 순 없다. 그 사람에겐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퇴근길 단잠이기 때문에 내가 듣기 싫다고 그것을 방해할 권리는 없다. 가방을 뒤져보니 다행히 이어폰이 있어서 안도의 한 숨을 쉬며 노래를 틀었다. 거슬리던 소리는 잦아들고 그제서야 나에게도 잠시 금요일 저녁이라는 시간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찾아왔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바꾸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지만, 이해되지 않음에서 오는 서운함과 원망을 뛰어넘는 무엇인가로 그 마음을 덮는 일. 그리고 그 사람도 그렇게 나를 이해해 주기를 기다리는 일. 참 생각이 많아지는, 비오는 금요일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