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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 Feb 20. 2022

4컷 생각 #104 임신은 처음이라31 - 출산(2)

버라이어티 한 출산

새벽 3시. 병원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중에 영상 녹화를 해 둔 것이 있다. "아니면 집에 가면 되니깐 걱정 말고 확인만 해보자."라며 나를 안심시키던 남편의 말이 담겨있는데..


진진통이 맞았다. 내진을 해 보니 이미 5cm가 열려있고 진행도 빠른 거 같아서 자연분만으로 2~3시간이면 낳을 것 같다고 간호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병실에 짐볼이 있는데 그걸 타야 하는지 물으니 그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진행된 거라고 했다. 이 정도 열렸으면 많이 아팠을 텐데 안 아프시냐고 물었다. 난 이게 많이 아픈 건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진진통이라는 게 엄청난 통증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심한 생리통이 잠시 왔다가는 정도는 참을만했다.


남편은 선택 제왕절개를 할 예정이었는데 주말 동안 선생님께 전달이 안 되었을 것 같다고, 연락드려달라고 했다. 간호사님께서는 연락드려는 보겠는데, 당직 선생님께 자연분만이나 제왕절개 하실 수 있다고 했다. 출근 시간에 오실 테지만 연락드려서 만약에 빨리 오셔도 2~3시간이 걸릴 거 같다고 했고, 그러면 이미 자연분만으로 출산을 해버리게 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남편과의 상의 끝에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후기를 보고 선택한 선생님께 제왕절개를 받고 싶었다. 당직 선생님은 내 상황을 잘 모르실 거 같고, 실력도 어떨지 내가 후기를 보지 못한 분이라 기다려보기로 결정했다. 기다리다 나오면 당직 선생님과 자연분만을 하고, 조금 더 걸리면 담당 선생님 오시면 자연분만인지 제왕절개인지 더 쉬운 걸로 추천받기로 했다.


그때부터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3시간 뒤면 6시이고, 6시간 뒤면 병원 진료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9시였다. 진행 속도를 보니 아마도 2~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6시 이전에 아이가 나오거나 선생님이 오셔 추천해주시겠지 생각했다. 진통이 오면 호흡을 하며 자궁문이 더 열리기를 기다렸다.


1~2시간 정도 기다리다 너무 아프다고 말하니 진통제를 놓아주셨다. 맞을 동안은 진정이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효과가 없었다. 더 놔 달라고 하니 그건 마약성 진통제라서 많이 맞으면 안 된다고 했다.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던 6시가 지나도 아기가 나오지 않자 더 힘들었다. 그 시간만 생각하고 버텼는데 선생님도 아직 안 오셨다고 하셨다. '연락을 안 한 건가? 그래도 9시에는 오시겠지?'하고 더 기다렸는데 7시부터 통증이 엄청나게 심해졌다. 골반뼈를 세게 때리는 것 같기도 하고 잡아 뜯는 것 같기도 한 통증이었다.


너무나 아파서 남편에게 "제왕절개 해달라고 말해줘. 자연분만 안 할래. 선생님 언제 오신대? 오시면 제왕절개 해달라고 얼른 말해줘"라고 말했다. 통증 줄이는 호흡이고 뭐고 정신이 없어서 혼미해지려 할 때쯤 9시가 되었고 담당 선생님께서 오셨다. 자궁문이 8cm까지 열렸는데 아이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건 자연분만이 안 되는 거라고 지금 제왕절개 바로 가십시다라고 했다.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수술실로 갔다. 수술 부위만 살짝 제모를 하고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페인 버스터, 유착방지제, 흉터연고 각각 15만 원인데 하시겠냐길래. 무조건 한다고 했다. 더 아프기 싫고 더 위험하기 싫고 흉터 남는 것도 싫었다.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다.


빠른 속도로 수술이 준비되었다. 2분 정도? 잠시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에 '제왕절개는 하반신 마취라 복부를 가르는 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게 떠올랐다. 그동안의 아픔이 너무 힘들어서 하반신 마취 후 복부를 가르는 것까지 맨 정신으로 있기 너무 무서웠다. 마취 선생님께 "선생님, 무서워요. 무서워요."를 연발했다. 그러자 마취 선생님께서는 "아기 나오는 거 안 봐도 되세요?" 물으셨고, 나는 "네!"라고 대답을 했다. "그럼 지금부터 재워드릴게요." 하셨고 나는 잠에 빠졌다. 마취과 선생님 실력이 엄청 좋으신지 신기하게도 아기가 나오는 타이밍에 맞춰 깨워주셨다. 아기가 나오는 걸 보긴 보고 다시 잠들었다.


남편 증언에 따르면,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빠르게 남편에게 설명을 하시고 동의서를 받으신 후 수술에 들어가셨다고 했다. 아기가 5분 정도만에 나왔다고 했다. "수술에 동의하십니까?" "네" 하고 영상편지를 찍자고 해서 말하는 사이에 "응애!!"소리가 나왔다고.


수술이 끝나자 선생님께서 설명을 하시길 아기 머리가 커서 아예 골반에 진입도 못했고, 나오려고 자궁 안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고, 그러는 바람에 자궁이 다 부어있어서 위험했지만 수술하는 입장으로는 꺼내기 쉬워서 금방 나왔다고 하셨단다. 그리고 나는 수술부위 봉합을 하고 그 후에 나왔다고 했다. 와 5분 만에 나오다니.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던가. 그럼 내가 왜 그 고통을 겪고 있었던 걸까.


무통주사는 왜 안 놓아준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제왕절개 할지 자연 분만할지 고민하고만 있었고, 그러다 자궁문이 많이 열려서 그때는 효과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관장도 못하고 제모도 못했으니깐. 무통주사 없이 쌩으로 견딘 후 제왕절개를 한 거다. 어휴.


담당 선생님이 왜 빨리 안 오셨는지 내 기억이 희미한 부분이 있어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담당 선생님은 원래 시간에 출근하는 거고 당직 선생님께 긴급 제왕절개를 받겠냐고 물었단다. 근데 자연분만의 희망도 품고 내가 담당 선생님께 제왕절개를 받겠다는 집념으로 기다린 거라고 했다. 그냥 당직 선생님께 받았다면 그 아픔을 겪지 않았을 텐데. 미쳤네. 내가 왜 그랬지 싶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냥 새벽에 바로 선택 제왕을 당직 선생님께 받을 거다.


겪기 전출산이 내 계획대로 되는 건 줄 알았지. 이럴 줄은 몰랐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교훈. 자연분만 안 될 수 있다고 진료받을 때 들었으면 그냥 첨부터 제왕절개를 계획하자. 계획했는데도 그전에 나오려 하는데 담당 선생님도 안 계시면 당직 선생님께 병원 가자마자 수술받자. 그 아픔을 견디고 있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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