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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마 Apr 04. 2024

영국 유학... 아니, 영국 워홀기

유학으로 시작했다가 워홀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우당당탕 영국 유학기가 영국 워홀기로 바뀌었다.

 그것도 단 일주일 만에.


 이 모든 일이 사실 그제자(4/2)로 일어난 일인데, 작성하는 기준의 나는 이 모든 일에 그저 어언 이 벙벙하다. 아직 친한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자세히 말하지도 못한 상황인데.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면서도 사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어이가 없다. 아니 일이 이렇게 흘러간다고?!

 ... 인생은 이렇게나 모를 일이구나.


 결론을 우선 말하자면,

 나는 유학이 아니라 영국 워홀을 가게 되었다.


 원래는 가능하다면 석사생으로써 다시 영국을 가고 싶었는데. 이전 비자 이력 때문에 인터뷰까지 본,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학교 중 한 곳에서 나를 거절했다. 학교에서 비자를 스폰해 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즉, 비자 이슈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준비를 시작하면서 6개월의 시간 가지고는 내가 직접 지원서를 다룰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걸 이전 경험으로 알았기에 유학원이라는 대행업체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결제도 하고 5개를 모두 다 지원을 해놓고 결과를 기다리다가 알고 보니 나는 사실 '비자법상 동일 전공으로 비자 재발급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 였던 거다. 왜냐면 석사를 같은 전공으로 두 번 가고자 하니까.


 지원을 하여도 비자법에 따라 어렵다는 걸 몰랐다. 나의 경우에는 동일전공에 재석사를 희망하는, 제법 흔치 않았던 경우라 그게 비자법상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유학원도, 상담을 신청했던 학원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학교 측의 메일을 받고서야 알게 됐다.


  그분들의 노고는 알고 있었지만 도무지 나는 나를 대행하는 조건으로 대가를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학원이 비자법에 대해 모른 채 안일하게 넘어가고, 또 학교에 문의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을 감출 수는 없었다. 결국 문제 제기를 하여 일부 환불은 받으며 일단락되었으나... 그들의 몫을 다하여 나에게 미리 알려주었다면 나의 시간과 노력의 방향성이 분명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의 지원 방식이 비자법상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동일 전공으로는 절대 쓰지 않았겠지.


 유학원도 나도, 모두의 노고가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되어 입이 썼다. 적어도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모두 바라던 결과는 아닐 터였다.


 몇 년 전 석사생의 신분으로 출국했을 때는 조금 늦은 6월에 결과가 나왔어도 큰 어려움 없이 비자 신청을 하고 출국을 했었다. 영국은 사실 석사생의 비자 발급이 까다로운 나라가 아니다. 처음의 출국길이었던 19년도에 그렇게 어렵지 않았기에 유학원을 너무 믿었고 비자법에 대해 안일했던 결과였다. 어쩌면 인생의 깨달음이다. 아, 사람은 정말 내 맘처럼 움직여주지 않구나. 당연했다. 나만큼 간절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별표 세 개. 법과 절차, 산수, 이권에 대해 무지하고 사실 전혀 관심이 없는, 머가리 꽃밭인 성향인 나는 (이제 나이를 쪼끔 먹었더니 ENFP+INFJ를 왔다 갔다 한다)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법이다. 법이 되고 안되고를 결정하는구나.


 나는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꽤나 맘에 드는 포트폴리오를 얻었고, 내가 늘 아쉽고 목말라했던 디자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하였다. 그 사실에는 한 점 후회가 없다. 그러나 나의 도전이 어쩌면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시도였다는 생각이 들면 가슴속 깊숙한 곳이 체한 것처럼 답답했다. 밤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은 오랜만이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것 같은데. 갑자기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나는 회사도 그만둔 채 무엇을 위해 그렇게나 열심히 한 걸까. 내가 어디서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차선책이라고 생각했던 영국워홀이 2024년부터는 선착순 5000명으로 늘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생각해 보니 나는 포트폴리오가 있지. 내가 2020년 석사를 코로나 이슈 없이 제대로 졸업했었다면 나는 당연히 2년 워크 비자를 신청했을 거고, 런던으로 가서 이력서를 돌리고 포폴을 보여주며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거다.


 — 좋아, 그러면 다시 해보지 뭐!


 그리하여 (단순한) 나는 떠나게 됐다.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는 않았던 방식으로.


 워홀이 플랜 B일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은 했는데, 그게 이러한 방식으로 이렇게 가게 되는 인생의 스토리라인 일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왜 나는 인생이 항상 이런 루트로 전개되는 걸까. 늘 웃기면서도 슬픈 부분이지만 그래도, 막상 결과를 받으니 생각보다 마음은 후련하다.


 그제야 나는 제출을 마친 지난 1월부터 쉽게 잠들 수 없었던 수많은 밤들의 이유를 알았다. 나는 내 도전이 실패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유학이 아니면, 영국이 아니면, 내가 더는 나 아길 길을 찾을 수 없어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코로나로 인해 석사 유학이 강제 종료된 후 시작된 나의 4년여의 방황이 이제야 비로소 끝이난 기분이었다. 이제는 또 내가 모르는 다른 방황, 또 다른 좌충우돌의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어쩌면 늘 그렇듯이.


 그래도 이제는 너무나 두려우나, 동시에 더는 두렵지 않았다. 문이 모두 닫힌 듯 보여도 울 필요가 없다. 반드시 다른 문이 열리게 되니까.


 우리 모두,

 파이팅.  



 +

*혹시 모를 나와 같은 사람이 있지 않도록 강조하는 구절*

1. 영국은 동일 전공으로 석사를 한 번 더 하는 것이 비자법상 어렵다.
 (물론, 아예 이전 학업 이력과 전혀 상관없는 전공이라면 가능하다)

2. 유학원이든 학원이든, 어떤 사항을 물어봤을 때 누군가가 된다고 하여도 곧이곧대로 믿지 말고 학교에 따로 더블 체크를 하자.
(사실 두 번의 경험으로 보건대 시간이 된다면 그냥 혼자 준비하는 게 백번 나은 것 같다. 아무리 내가 돈을 주어 정당하게 서비스의 값을 지불해도 그들은 내 맘처럼은 꼼꼼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3. 비자법은 매년 조금씩 바뀔 수 있다. 꼭꼭 학교뿐만 아닌 많은 기관에 직접 문의를 해서 타당성을 높이자.

4.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의 어디로 나아가고자 하던, 지금 나이가 얼마던, 당신의 모든 도전은 의미 있다.
 우리 모두,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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