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나를 사랑하는 게 먼저인 우리 — 휴식 되찾기 프로젝트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삶을 동경한 적이 있다.
생산성에 (심하지는 않고 소소히) 조금 매달리는 자로서 1분 1초를 생산성 있게 살지 않으면 무엇인가 불안하고, 초조하고, 손톱을 물어뜯게 되는 나는, 요즘 (사실 본성을 거스르면서) 가장 정신건강에 적합한 일상 루틴을 찾는 것을 목표로 아침 9시에 눈을 뜨는 것에 노력을 하는 중이다.
다른 이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한쪽 귀와 눈을 늘 닫아놓고 살고는 했는데, 사실 나는 (티를 안 내려고 늘 노력하지만) 조금 예민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십 대와 이십 대 내내 잠이 드는 게 늘 어려웠고, 자려고 누우면 둥둥 떠다니는 생각 탓에 쉽게 잡이 들지 못했다. 늦잠은커녕 몇 시에 잠을 자든 오전 6시면 눈을 번쩍 뜨기 일쑤고, 깊게 잠을 자는 날이 한 달에 손에 꼽고는 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달라지려고 한다(?) 물론 이 모든 결론들이 한 번에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지속적인 시도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제는 몸과 마음의 휴식을 멋들어지게 할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이 마음을 위해 뭐부터 해볼까, 하는 물음에 가장 먼저 고개를 든 것은 일단 아침 일정이었다. 제시간에 맞춰 칼같이 일찍 밤에 잠을 드는 건 (노력은 하였으나) 늘 난제였으니 레벨이 높아져버려 그러려니 하며 우선 넘어가고, 아침이라도 좀 느긋하게 보내보자며 내 나름의 소소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바로바로—
'느긋한 휴식 되찾기 프로젝트' (타란)
사실 온전히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몸과 마음을 위한 휴식에 대한 갈망은 나 혼자만의 문제라기보다는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마음인 것 같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안에서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쁨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직장인이든, 프리랜서든, 자영업자든. 하루종일 일에 치이다 보면 퇴근 후 집에 와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심신의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난 지 오래다. 씻고 밥 먹고, 유튜브를 보다 잠깐 히히덕거리다 보면 어느새 저녁. 그렇게 지쳐 잠이 들기 일 수 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뭐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뭔가를 하지 않는다는 말 자체가 그저 순수한 불안이 돼버리는 혹시 모를 나와 같은 사람들의 고질병 같은 마음.
그저 더 성장하고 싶다는 갈망 같은 마음에서 온 불안 같은 거겠거니, 하고 피곤한 하루들을 스쳐 보내다가 요즘에서야 이것 역시도 어쩌면 조금 문제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 준비와 워홀 준비를 이어서 하느라 회사를 안 다니고 있는 지금 역시도, 나는 쉬는 방법을 잊은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피곤하게 살고 있었던 까닭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5시 반, 6시에 일어났던 것은 영국에서 잠깐 살았던 대학원생 시절부터였다. 가뜩이나 잠도 잘 못 자면서. 낯선 환경에서 살며 영어도 부족하고, 공부를 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 나는 일찍 일어나 영어 공부라도 하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빠져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는 그것이 맞았다) 게다가 그 시기를 전후로 시작되었던 크고 작은 수많은 일들과, 또 어떠한 불안감들은 깊은 흔적으로 남아서 아직까지도 나에 삶 전반을 지배했고, 5년이 지난 이제서야 무엇인가 그 마음들이 어느 부분들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고 싶은 게 많으면 몸이 바쁘다고 했던가. 그 짝이 딱 내 짝이라고 생각하고는 했는데. 단순히 그런 마음 때문 같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든 지는 사실 그렇게 얼마 되지는 않았다.
단순한 마음으로, 하고 싶은 건 (혹은 해야 할 것은) 많고 시간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다 좋아하서 하는 일'이라는 허울 좋은 포장으로 시작했건만 어느 순간 내 몸은 이제는 조금 쉬어야겠다며 항복을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단지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 사실 건강에 조금씩 이상을 느끼고 있던 건 몇 년 전부터였다.
영국에서 있다가 다급하게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너무 안 좋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당신의 나의 체력은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겪어본 몸상태였다. 다행인지 조금은 예민한 편이라 무엇이든지 미리 민감하게 알아챌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 당시의 느낌으로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큰 '잣'(...)이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말 못 할 피로감이란. 병원에 갔더니 역시나 감은 틀리지 않았고 작으면 작고 크면 큰,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 꼽을 수 있을 법한 건강이상과 병명을 듣고 나서야 '나의 컨디션 되찾기 프로젝트'는 조금씩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낫는 과정에서 당연하게 따라오는, 의사 선생님과의 정기적인 만남과 방문의 과정 안에서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젊은 데 뭐', 하는 안일한 말 뒤로 슬금슬금 올라오는 두려움들을 숨겼다. 그러다 조금씩 깨닫게 되었던 것은... 자기 계발과 성장이라는 이름하에 어쩌면 나는, 마음 한편에는 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우리는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일정 수준에 건강한 스트레스는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하니까. 그러나 나는 간혹 지나치다 싶을 만큼 스스로를 몰아세우곤 했다.
그냥,
어쩌면 나의 바람은 우린 모두 다정한 말을 들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시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늘 쫓기는 마음으로 달리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감으로 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모두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당신이 하고 싶은 그곳이 맞는 길일 거라고.
사실은 늘, 짧은 식견으로 글을 쓰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내가 부끄러워하는 당신과 따뜻한 말들을 많이 나눌 수 있기를.
그러니 평화로운 오전에, 오후에, 어느 저녁에
열심히 하루를 보낸 멋진 당신은 쉴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쉬는 날이 있는 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쉼이 있어야 나아감이 있을 테니까.
우리 모두 오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