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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마 Apr 10. 2024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

미묘한 불행과 미묘한 행복 사이에서


 인생을 살다가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을 때,

 그럴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기분이 드는 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영국생활에서 쓸 돈을 위해서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문득문득 전 직장에서의 트라우마 같은 것들이 일상에서 솟아오르기는 하지만, 개복치마냥 두근거리는 속을 '내가 지난날에 많이 힘들었었구나'라는 말로 애써 위로해 보는 요즘이다. 일상을 (사실은 애써서) 열심히 살아내 가는 요즘이지만 너무 많은 변화들과 너무 많은 노력사이에서 조금은, 일정 부분의 내가 소진된 기분이 들곤 했다.


 힘들다고 말하는 게

 왜 이렇게 늘 힘이 드는지.


 짧다면 짧은 갓 서른 살의 인생동안 얼마나 많은 변수들을 마주했는지 모르겠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던 시절에는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쉽게 간과하고는 했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만에 하나'라는 말이 꽤나 종종 인생에서 등장하고는 한다는 것을.


 지금의 나로서는 내가 10월 출국에 맞춰 갈 수 있을지라는 것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저 가장 밝은 길이 이곳이기에 우선 떠나보는 길이다. 그러나 사실 종종, 꼭 내 발걸음 바로 위만 불을 비춰 걸어가는 기분이 들곤 했다. 너무나 좁은 시야로 길을 걸어가는 듯한—


 이상하게도 설렘보다

 두려운 게 더 많은 서른의 여행길.


 이상하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십 대 중반만 해도 도전하러 떠나는 발걸음이 하나도 무겁지 않았는데 앞자리가 3으로 된 게 뭐라고 요즘에는 무슨 일을 해도 겁부터 난다. 얼마 전 나의 오래된 친구 A와 이런저런 요즘의 이야기를 하다가 깨달은 부분이 있었다. 조금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고 보니 세상에 이렇게나 나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일들을 너무나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고.


 회사에서도, 뉴스를 틀어도, 하다못해 유튜브 댓글창을 봐도.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무서운 일들이, 이런 무서운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나의 작은 세상보다 더 자주 일어나고는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곤 했다. 사회는 생각보다는 차갑고, 회사생활은 기쁜 일보다는 힘든 일들이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아주아주 힘들다거나 불행한 건 아니지만 그 미묘한, 행복함보다는 조금 더 불행한 느낌. 그 미묘한 불행감.


 사회생활은,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그건 너무나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서른 살의 나로서는 도무지 정의하지 못하는 감각이기도 했다. 이건 사회초년생으로서의 그런 것일까. 나이를 더 먹으면 비로소 이 감정들을 제대로 정의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될까.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유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어느덧 워홀이 되었을 때 부모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그래, 너는 언제나 뭐든지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먹어봐야 만족하는 애지. 그냥 하고 싶은 걸 해보렴 ‘


 — 그 말이 괜히 뻘하게 웃기면서도 ‘그렇지, 나는 그런 사람이었지’라고 생각했다.


 수입은 없지만 청년만큼의 시간을 살아야 하는 노년을 앞둔 부모님은 딸의 결정에 얼마나 많은 걱정을 했을까. 생각해 보면은 늘 잔잔히 속 썩이는 딸이었다. 가고 싶은 길이면 무작정 머리부터 들이미는 나를 늘 부모님은 걱정으로 말렸고, 나는 그 와중에도 가고 싶어 철딱서니 없이 몸이 근질거렸다, 앞에 뭐가 있은지도 모르면서. 사실 나는 20대 내내 비슷한 모든 상황마다 부모님이 나를 믿음직한 딸로서 여기지 않은 거라 생각했지만 (이것 역시 말하자면 참 긴 이야기지만), 그래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모든 화에는 걱정이 있었다는 걸.


 인생 처음으로 받은 부모님의 지지에 나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죄송했다. 나중에 과연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의연하게, 모든 걱정을 모른 척 숨기고는 알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자식에게 잘 다녀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짐을 싸면서도 불안감이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내가 만족하면 되었다. 미묘한 불행보다 미묘한 행복이 더 크면 된 거다. 그 행복을 키워 나가는 것은 또 나의 몫이니까. 그것 역시 감사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을 테니까.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늘 그랬듯이,


 늘, 그랬듯이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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