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적응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청년 백수 백이십만 시대.
때는 바야흐로 6월, 나는 그 시대적 흐름에 숟가락을 얹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일상은 아주 많은 것이 바뀐 듯 보였지만 막상 보면 그렇게 바뀐 것은 없었다.
매일 아침 6시에 울리던 알람에 맞춰 나는 여전히 눈을 떴지만 회사를 가지는 않았고, 졸면서 탔던 지하철을 같은 시간에 타고는 했지만 회사를 갈 필요는 없었다. 12시면 여느떄와 같이 점심을 먹고 1시면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늘 내가 하던 업무는 아니었다. 고정수입이 사라지고 나의 작고 귀여운 퇴직금이 남았지만 (아주아주 아끼면서 살면) 그걸로 올해 말 까지는 어떻게든 먹고살만했다. 나는 조금 가난해졌고 매일을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아야 했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이 꽤나 기꺼웠다. 숨을 훅 들이마셨다가 다시 천천히 내뱉는 기분이었다. 아, 나 살아있구나. 여기 이렇게 나로서 살고 있구나. 드디어 허리춤을 졸랐던 지퍼를 내리는, 숨을 쉬는 듯한 감각이었다.
회사를 떠올리면 지금도 무엇인가 정의 내리지 못하는 감정이 있다.
돌이켜보면 사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학창 시절에서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늘 조금은 어려웠던 조직생활에 대해, 사회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뭔가 나는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응어리가 있는 기분이다. 그 털어버리지 못한 마음을 위해 지금 이렇게 펜을 들고 있는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서 느꼈던 감각은, 사회에서의 우리는 나 자신이 가장 정상처럼 보이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직에서 눈에 띈다는 것은 어쩌면 커다란 흠이다. 눈에 띄는 것은 양날의 검 같아서 잘하면 칭찬을 받을지 모르나 추락할 때는 너무나도 빠르고 위협적으로 변했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화장을 하는 것도 그 사회와 조직에서 요구하는 선이 존재했다. 입을 여는 것도 딱 그만큼만,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도 딱 그만큼만, 사람을 사귀는 것도 딱 그만큼만.
나는 이 사회의 일원이고 그 안에 들어가야 했기에, 그래야 먹고살 수 있기에, 그리고 어쩌면 내 삶의 시간이 그 이후에서야 비로소 진전될 수 있기에. 사실은 나 역시도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 부단히 늘 노력해 왔다. 오로지 나로서 살지 못하는 그 감각이 늘 어려웠지만 한편으로는 납득한 것 일지도 몰랐다.
사회에 맞춰 사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숙명이다. 나는 이 사회에 속해 있기 위에 이곳에 적응해야 한다. 개인인 인간은 약하나 집단으로서의 개인은 강하다. 반드시 나쁜 뜻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더 멋지고 근사한 것을 만들어내니까. 혼자는 두려워도 마음이 맞는 믿을만한 사람들과 함께는 더는 두렵지 않으니까.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화합하는 것 역시도 배워야 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 그 가운데에서 중심을 잘 잡는 것이 참 어렵다. 어느 마음이라도 지나치고 치우쳐지면 쉽게 길을 잃었다. 어떤 조직이 좋아 그곳에 나를 맞추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 버리면 놀라울 만큼 빠르게 스스로를 잊는다. 회사생활에서의 내가 그러했다. 어쩌면 마음 한편에는 무엇인가 나와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래도 어떻게든 잘 해내고 싶어서, 잘 맞춰내고 싶어서 나를 깎고 다듬었다. 그리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자꾸만 나 자신을 까먹었다.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 사람이었고, 무엇이 나의 꿈이었는지를.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흐르면서 그 시간들을 하나둘씩 복기해 보는 길이다. 프로젝트 작업을 하고, 나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인 모든 순간들을 다시 돌이켜보면서 정의 내려가면서 나는 나만의 답을 찾고 있다. 그리고 요즘에서야 내가 내린, 어쩌면 아주 초기인 나의 답은 “우리는 나 자신을 깎아내리면서까지 나를 다른 무엇인가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 잘 못 된 건 없었다.
늘 내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던 나는 깨달았다. 적응하지 못하는 우리는 모두 잘못하지 않았다. 그저 그곳은 나의 자리가 아니었을 뿐이다.
도시에 어디일지도 모르고, 시골에 어디일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일 수도 있고, 영국일 수도 있고, 그 보다 더 먼 곳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우선 떠나기 위해 짐을 챙겨보는 길이다.
이 작은 여정이라도 일단 떠나야
비로소 마침내 내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을 테니까.
언젠가는 가장 나 다울 수 있는,
한번 보면 깨달을 나의 자리를
비로소 찾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