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꾸는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소양 5가지
서문편/꿈은 어떻게 현실이 되는 가.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국제mia님 도대체 꿈이라는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 거예요? 저도 빨리 꿈을 찾고 싶어요. 꿈이 있으면 정말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 텐데! 제발 좀 그 비법좀 알려 주세요"
그래서 나는 생각해보았다. 꿈을 찾는 것에 진정 비법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정녕 나는 어떤 비법을 사용해 꿈을 찾게 된 것인가?
정말 너무 나도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해왔기에 국제mia는 과거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살며시 눈을 감자 대뇌피질 안에 잠 들어있던 수 억만개의 뉴런들을 깨우는 기나긴 '기억' 여행이 시작된다.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대뇌피질 속 비탈길에서 잠들어있던 10년 묵은 뉴런이 기억을 번개처럼 때린다. 이놈이다. 꿈. 죽어있던 심장을 흔들어 깨우던 그놈. 바로 그놈 말이다.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20살 가을. 무늬만 행복이었던 단발마의 쾌락 속에서 허우적 거리던 나는 존경하던 97학번 선배와의 대화를 통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人生에 대한 철학적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의문은 "너는 왜 사는 가" 라는 철학적 물음으로 번졌고 나는 이 물음을 해결하기 위한 자아와의 기나긴 사투에 들어간다.
"왜?" 너는 무엇을 위해 사는 가?"
이 질문에 곧 바로 답을 하는 것은 사실 나에게 불가능 한 일이었다. 살아가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이유가 없으니 열정을 찾을 수 없었고 열정이 없는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무슨 일을 해도 항상 무기력하고 공허한 기분을 느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좀 충격이었다. 그러나 사실 제도권에서 12년 동안 '입시교육'만 받아온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있으리 만무한 일이었다.
"WHY? FOR WHAT? 너는 왜? 무엇을 위해 사는 가?"
그래서 나는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성공한 사람들의 수기를 읽었으며 당시 수준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했던 공자의 정명론과 같은 철학책도 펼쳐보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이란 직업들은 전부 뒤져가며 나에게 어울리는 직업을 찾아보고자 애썼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안에도 '비법'은 들어있지 않았다.
"휴...내게도 '살아가는 이유'가 있으면 좋겠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런 꿈 말이야. . 그런데 유레카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날, 나는 대학교 학생 복지동에 있는 화장실에서 무심코 볼일을 보던 도중 나사가 풀려있던 동공이 번쩍 열리는 한 글귀를 보게 되었다.
"너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행복!"
맥 없던 얼굴에서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미소가 구름처럼 지어졌다. 행복! 아, 얼마나 기다렸던 이 단어인가. 얼마나 껴안고 싶은 단어인가. 아 이 얼마나 따스하고 포근한 단어인가. 내가 행복을 위해 산다면!
행복이라는 2글자만 봐도 미소가 구름처럼 지어지거늘 현실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평생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죽여주는 일이겠는가!
왜 사냐고?
"나는 행복하기 위해 산다"
그랬다. 행복이었다. 그들도 모두 행복을 위해 살았던 것이었다. 내가 책에서 접했던 성공한 사람들은 '직업'도 '살아가는 이유'도 각기 달랐다. 그들은 각기 다른 목표와 이상을 지니고 있었고 이를 달성시키기 위해 다소의 고난도 감수하려는 결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 최종 목적은 행복이었다.
죽어있는 가슴 속에서 삶의 역동을 부르는 결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만족을 지속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렇다할 세상 경험도 없는 20살이 만족을 지속할 수 있는 한 가지의 일을 찾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밑천도 없이 단지 상상만으로 지속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한 가지 일을 결론 짓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일단 '직업'보다는 내가 만족을 느꼈던 경험을 끌어내보기로 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직업'으로는 뱃속에 잠자고 있는 열정을 불러일으켜 실용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결의를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이 미천한 인생에서 내가 '만족'을 느꼈던 경험은 많지 않았다. 게임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친구와 노는 것으로 통해서 느꼈던 만족은 많이 있었지만 이 만족이 지속되었을 때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던 나는, 만족 뒤 그 어떤 허무감도 찾아오지 않았던 진짜 만족을 느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심장을 뜨겁게 만들어 주었던 만족,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던 진짜 만족을 말이다.
내가 진짜 만족을 느꼈던 경험은 중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보게된 '네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나는 아직도 끝없는 내전(內戰)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들의 처참한 삶을 보게 되었다. 영상속에서 보이는 그들의 삶은 나의 삶과 많이 달랐다. 고통이란 '공부를 해야 하는 것' '학교에서 시험을 못본것' '잠을 많이 못자고 학교 가는 것' 으로 생각했던 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의 삶을 보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그들에게 고통이란 '생존(生存 )' 그 자체였다. 아무 죄도 없는 아이와 평범한 가족. 그리고 그들 사이로 한 장면이 대비가 되었는데 서양의 가족들이 레스토랑에서 단란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 그 무엇이 인간의 삶을 갈라 놓았는 가'
다큐멘터리가 영어판이라 내용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 영상은 어린 나에게 많은 성찰을 하게 해주었다. 사소한 일 따위에 고민하며 고통받는 나에게 내가 받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과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준 것이었다.
그 영상을 보고 난 뒤 까까머리의 중학생은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앉으라고 해도 앉지 않았던 책상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기에 그 중학생은 그 아이를 만나고 싶었던 것 같다. 최소한 그 아이를 만나서 "힘내"라는 말이라도 전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영상을 보고 얼마뒤 그 중학생은 어머니와 함께 월드비전이라는 단체를 찾았다. 탄자니아에 살고 있는 자신의 또래 아이에게 월 3만원씩 후원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1달 뒤쯤 그 중학생은 자신이 후원했던 그 아이에게서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 친구야. 니 덕분에 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어! 난 선생님이 될거야! 우리 그때 꼭 만나자"라는 글을 읽는 순간 중학생의 눈에서는 따스한 눈물이 쏟아졌다. 그랬다. 나는 이 순간, 살면서 처음으로 심장이 떨렸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나는 당시 어린 내가 왜 게임기를 사려고 한푼 두푼 꾸깃꾸깃 모아 두었던 저금통을 털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일원으로서, 인류애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창한 구호가 있던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지금 생각하기에 나는 지구 반대편 넘어에 있는 그 아이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나보다 불우한 환경에 처해있는 그 아이가 꿈을 향해 열정을 다해 도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자신이 태어난 이유와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도 나중에....미디어라는 매개체로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을 적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아, 이 만족을 평생동안 느낄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는 가? 진짜 행복하겠지? 와 생각만 해도 심장이 떨린다!"
물론 그 심장의 떨림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떄문에 본디 이면적일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가슴의 울림을 받을 때의 그 느낌을 알지 못하기 떄문이다.
그러나 그 느낌은 나에게 정말 색다르게 다가왔다. 이런 느낌이었다.
"내가 훗날 이런 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평생을 살 수 있다면, 정말 행복 하겠다"
'
물론 그 감정에 대한 100% 확신은 없었다. 기껏해야 20살이었기 때문이다. 현실과 이상은 다른 법. 실제로 그런 일들을 진행해보지 않는 이상, 이것이 100% 내 꿈이 다고 확신할 만한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특이한 만족은 느껴본적이 없었기에, "이렇게 살면 행복하겠다"는 그 느낌을 받아본적이 없었기에, 나는 이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이 감정에서 촉발된 '다큐멘터리 PD'라는 직업은 내가 다시 수험생활을 하면서 가슴 속 깊이 간직해야 할 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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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 초반에는 미디어로 타인의 가슴을 울리는 가치를 실현시킬 도구가 프로듀서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렇다 할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직업에 대한 동경으로 삶의 가치가 생겨나긴 했지만 사실 '가치'가 중요한 것이지 도구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가치만 잃지 않는다면 도구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활동들을 했습니다.
관심분야에 대한 책을 읽었고 가슴이 이끄는 것이라면 도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로듀서 이외에도 꿈을 실현시켜줄 다양한 도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프로듀서, 아나운서, 기자, 특파원, 소셜 네트워크창업(뉴미디어) 등이 제가 발견했던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대학생활을 하면서 가치의 변화가 왔습니다.
'타인의 가슴을 울리는 삶'이 꼭 미디어일 필요가 있는가? 가슴을 울리는 것이 희열을 느끼는 것이지 미디어로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디어도 수단일 뿐이다.
미디어를 제거하고 보니 저는 또 다른 저의 가능성을 보게되었습니다. 더 다양한 직업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국제기구 공무원, 외교관, 해외주재 공무원.. 등등.
만약 제가 미디어라는 한계를 치고 저의 꿈을 찾아봤다면 저는 이런 직업들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제가 언어를 공부했었던 것도 다양한 도구에 쓰일 수있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미디어라는 한계만을 치고 도구를 결정했다면....저의 또 다른 능력을 보지 못했겠죠?
정말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으나 무수한 관심을 경험해오면서 꿈은 보다 구체화되었는데 다양한 경험의 끝에서 저는 손수 기획하고 제작한 콘텐츠를 통해 타인의 가슴을 울리는 삶에 행복을 느끼는 자아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미디어 콘텐츠 관련 業으로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취업을 거부하고 창업을 선언했던 이유는 현재의 자리에서는 제가 공부했던 이유인 '꿈'을 실현시킬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업을 통해서도, 미디어로 타인의 가슴을 울리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기획하고 만들면서 행복을 느끼는 콘텐츠는 지식교육 관련 콘텐츠였습니다. 교육은 다른 사람들을 무언가에 열정적이 되도록 만드는 것과 또 그 불꽃을 내가 창조하길 원한다는 감정과 많은 연관이 있죠. 이는, 타인의 가슴을 울리는 삶을 살고 싶어하는 저의 성향과도 가장 합치하는 것이고, 20대 전반을 거쳐 다양한 진로를 경험한 제가 전문성을 지닌 분야이기도 해서, 이를 기획하고 만들어 누군가의 가슴에 닿을 때면 정말 가슴 떨리는 희열을 느끼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제가 하는 사업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수주를 받아 기획하여 제작하는 콘텐츠도 제 자신의 행복보다는 돈이 될 수 있는 사업군에 국한돼 있었습니다.
'그래...나도 이제 현실이겠지.....그래.... 할 만큼 했지.......이제 내 나이는 변화보단 안정이겠지...그래..'
그러던 어느날. 몸에 넘치는 술을 마시고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에 저는 한 재수생이 모의고사 점수에 비관해 자살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휴....
공부를 못한다고 죽다니....고작 20살이...대학 때문에 죽다니..
20살에 인생이 끝났다고?
공부는 타고난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
꿈
재수
대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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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에 이르는 과거의 기억이 필름의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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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계가 정말 엄청난 기회가 널린 곳이라는 것을 알게된다면, 목적지로 가는 수 많은 갈래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고작 수능 따위에 목숨을 끊지는 않았을 텐데.....
저는 집에 도착한 이후 무언가에 이끌리듯 정장 마이를 벗지도 않고 의자에 앉아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 .
이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 다양한 직업, 다양한 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글을 시작으로 꿈에 도전하는 과정에 있는 청춘들이 제 블로그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저를 찾아온 청춘들과 꿈에 대해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정성을 다했는 지. 제가 왜 그렇게 뜨거운 열정을 쏟았는지...
"MIA님 덕분에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어요"
"MIA님 저 이제 다시 도전합니다^^"
"MIA님!!!!!!! 저 넘사벽이라 불리는 공기업에 합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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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열정을 다해 소통을 했던 이유는 저에게 일고 있는 뜻모를 감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언젠가 제가 느껴봤던 감정이었습니다. 언젠가 아......
탄자니아 아이에게서 "꿈이 생겼다"다는 이야기를 듣고 흥분됐던 그때,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이었습니다.
저는 블로그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상동몽! 그리고 더욱더 진정어린 소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느덧 미디어로 타인의 가슴을 울리는 삶을 살자는 저의 꿈을! 제가 감히 생각치도 못한 블로그를 통해서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 글을 보고 힘을 얻었다는, 다시 도전하고 있다는 그리고 꿈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16살때 탄자니아에서 저에게 편지를 보낸 아이의 글을 읽었던 때와 똑같은 감정, 그 뜨거움! 가슴이 마구 뜨거워지며 살아있다는 감정이 느껴집니다.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며, 가슴이 마구 벅차오릅니다.
타인의 가슴을 움직이는 삶!
자, 여러분!! 꿈!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어떻게 이뤄나가야 할까요? 국제mia는 여러분의 멘토의 신분이 아닌 동네 형과 오빠의 신분으로 여러분들에게 조언을 하고자 합니다. 즉! 어렵게 대하지 말라는 이야기! ^^ 저 진짜 대단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ㅜ
저는 꿈이라는 것은 경험과 지식의 축적을 통해 비로소 현실로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경험과 지식'입니다.
제가 정의하는 경험과 지식이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나,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그 안에는 어떤 행복이 있나... 세상의 이면을 들춰내 보는 것입니다.
사실, 꿈꾸는 사람들이 갖춰야할 기본소양을 정의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꿈을 위해 갖춰야할 자질을 어떻게 정의를 내릴 수가 있겠습니까. 꿈은 바다와 같이 넓은데 말이죠. 그러나 저는 미력하나마 현실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그것을 5가지로 정의했습니다. 이 시대 보편적인 대학생들을 기준으로, 진로를 열어감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5가지 소양! 아마, 이 5가지 소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면 여러분들 스스로 "아, 옳거니, 그렇구나. 맞어"라며 고개를 끄덕이시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소양은 제가 강조하지 않아도 사회에서 '공부하라!'고 줄곳 이야기하는 지식이거든요, 물론 사회에서는 '스펙'이라고 불립니다만, 음 거기에 제 작은 역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취업을 위해 억지로 쌓아야할 스펙'에서 '꿈과 행복을 위해 갖춰야 할 기본소양'으로 만들기! 공부하는 마인드의 전환!
자! 행복을 찾아나서는 지식여행! 흥미진진 하죠? 기대 되지 않나요? 스펙이 아니라 꿈을 위한 지식 입니다. 행복입니다. 행복을 느껴가면서~ 꿈도 생기고 얼마나 아름다운 가요! :) 자, 이제 우리 함께 지식여행을 떠나봅시다~!^^
"누구나 마음 속에 보석을 지니고 있다. 다만 캐내지 않아 잠들어 있을 뿐이다"
- 이어령
국제mia는 진심으로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