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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Nov 25. 2023

리엘을 아시나요?

캄보디아 여행 6 - 늘 경계해야 할 것

캄보디아에서는 미국 달러를 주로 쓴다. 그러니 캄보디아로 떠나는 사람은 미국 달러만 환전하면 된다. 하지만 도착해서 몇 번 현금을 써보면, 캄보디아 화폐인 리엘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미국 달러를 주로 쓴다 해도, 리엘이 일종의 서브 화폐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우선 1달러 미만의 센트 단위를 계산할 때는, 미국 동전을 쓰지 않고 리엘을 쓴다. 그래서 딱 떨어지지 않는 금액을 계산하면 잔돈으로 리엘이 생긴다. 물론, 떨어지는 경우에도 때로는 2달러, 3달러를 리엘로 거슬러주기도 한다. 가끔은 달러 지폐가 부족하기도 할 테니까. 그렇게 해서 받은 리엘은 나중에 나 또한 달러가 부족할 때, 혹은 딱 맞게 계산하고 싶을 때 쓰면 되었다. 여행 막바지에 현금이 모자랄 때는 달러와 리엘을 함께 섞어서 계산하기도 했다.


어쨌든, 리엘이 쓰이는 경우는 대부분 잔돈으로서다. 1달러가 약 4000리엘인데, 20달러, 30달러를 뭉치로 리엘로 주는 경우는 없다. 그러니 나 역시 리엘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받는 잔돈들이 계속 1달러, 0.75달러 정도였으니까, 주는 대로 대충 받았던 것이다.* 어차피 리엘의 가치가 크지도 않고, 남으면 다음 여행 때 쓰는 정도일 테니까.


이러한 관광객의 습성은, 같은 이방인에게 잘 드러나 보일지도 모르겠다.



둘째 날 저녁,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캄보디아에서 머문 동안 먹었던 유일한 서양 음식이었다. 호텔 바로 위치한 곳인데 좋은 후기가 많이 보여서 들러보았다. 주인이 서양인이라더니, 분위기가 딱 미국이나 호주의 바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뉴질랜드 사람이라고 했다.) 텔레비전에는 럭비 경기가 틀어져 있었고, 손님들도 대부분이 서양인이었다.


엄마는 햄버거를 주문했고, 나는 햄버거를 먹으려다가 메뉴에서 타코를 발견하고는 타코를 주문했다. 햄버거 맛집이라 그런가 햄버거가 더 맛있었지만 타코도 푸짐했다. 상큼한 라임주스까지 함께 마시니 낮에 더위 속에 걸으며 잃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분이었다.


맛있게 잘 먹고 계산서를 받아보니, 총액 13.98달러가 찍혀있었다. 지갑에는 잔돈이 충분치 않았고, 1달러짜리 지폐들은 나중에 팁을 줄 때를 위해 아껴두고 싶어서 그냥 20달러를 냈다. 적당히 알아서 거슬러주겠지 싶었다.


나온 잔돈에는 달러는 없었고 리엘뿐이었다. 몇 장의 지폐 속에는 처음 보는 10,000리엘짜리(약 2.50달러)도 있었다. 나는 무려 1만 리엘짜리 지폐까지 줬으면 충분히 줬겠지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대로 지갑에 넣으려는데, 엄마가 계산 한 번 해보라고 했다.


그때서야 처음으로 리엘 계산을 해보았고, 내가 받은 돈이 약 3.25 달러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3.98달러면 14달러로 친다고 해도, 6달러를 받아야 했다. 절반 밖에 받지 못한 것이다.


거슬러준 직원을 불러 계산이 잘못된 것 같다고 하니, 달러가 없어서 그렇다면서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내가 6달러어치를 받아야 한다며 달러를 언급하자 잘못 이해한 것 같았다) 그래서 카운터로 가서 다시 물어봤다. 그러자 주인과 그 주변에 서 있던 직원들이 계산이 잘못된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니까.


혹시 달러와 리엘을 섞어서 거슬러줄 수는 없느냐고 물어보니 달러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럼 리엘로 다시 제대로 달라고 하자 또 계산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6달러면 24,000리엘을 주면 되는 것인데, 식당 주인과 직원 서너 명이 모여서 그렇게까지 오락가락할 계산이 아닌데... 당황스러웠다.


결국 나는 가방 구석구석을 뒤져서 1달러짜리들을 탈탈 털었다. 나중에 필요시 바로바로 팁을 주기 위해 곳곳에 꽂아둔 지폐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14달러를 만들어내어, 거스름돈 받을 필요 없이 딱 떨어지는 만큼의 돈을 지불하고 왔다.



처음엔 실수였을 수도 있지만 두 번 그러니까 괜히 사기 치려고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문이 든 게, 정말로 달러가 한 장도 없었을까? 리엘과 함께 섞어서 줄 수 있는 1~3달러조차 없었을까? 물론 상황에 따라 잔돈이 부족할 수는 있지만, 손님이 모두 외국인인 식당이었는데 달러가 없다는 것도 좀 의아했다. 안 좋게 생각하니 계속 안 좋게 생각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정말 순수하게 계산이 서툴렀거나 다른 영수증과 헷갈렸거나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결국 손해를 입는 건 나다.


캄보디아는 불쾌한 호객행위도 없었고 (한 두 번 거절하면 물러난다), 만난 모두가 다 친절하여 마음이 스르륵 열리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돈도 제대로 계산하지 않을 정도로 나의 경계심이 풀어져있었나 보다.


하지만, '믿되, 너무 믿지는 않기'.


씁쓸하지만 여행 중에 한 번만 스치고 지날 사람에 대해서는 늘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모든 이가 악의가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모든 이가 악의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식당의 주인이 캄보디아인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캄보디아인이었다면 내가 단 며칠 만에 너무도 사랑해 마지않게 된 이 나라의 추억에 흠집이 났을 테니까.



* 나중에 이전 거스름돈들을 한 번씩 확인해 보았고, 다행히 이전에는 모두 제대로 받은 것으로 보였다. 이후에도 잘못된 거스름돈을 받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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