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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Dec 07. 2023

당신의 터전이 나와 다를지라도

캄보디아 여행 7 - 톤레삽 호수의 깜퐁플럭 수상가옥과 맹그로브 숲

톤레삽 호수에 가보고 싶었던 건 맹그로브 숲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맹그로브는 물속에서 자라는 나무 종류로, 동남아나 아프리카, 미주, 호주 등 여러 곳에서 자라지만, 어쩐지 그동안 여행하며 한 번도 제대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맹그로브의 모습도 궁금했지만, 왜 굳이 육지가 아닌 물속에서 살게 되었는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직접 본다고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힌트를 얻게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사실 엄마는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맹그로브 숲까지 가려면 깜퐁플럭 수상가옥 마을을 지나야 하는데, 부모님께서 10년 전 패키지여행으로 캄보디아를 방문하셨을 때 그곳에서 충격적인 경험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10년 전 부모님의 이야기에는 좋은 이야기도 많았지만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톤레삽에서 배를 타고 지나가는데 아이들이 헤엄쳐서 나와, 관광객들이 물 위로 던져주는 라면, 과자 등을 받아 갔다고 하셨다. 과자 봉지 등을 던지도록 자꾸 유도하는 투어사도, 비판적 사고 없이 신나게 던지는 일부 관광객들도, 현지 아이들을 비인간적으로 보는 모습에 당시 부모님께서는 굉장히 불쾌하고도 불편하셨다고 했다. 그때 당시 가셨던 마을이 깜퐁플럭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곳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다시 경험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을 테다.


10인승짜리 배에 엄마와 나, 가이드, 그리고 운전해 줄 기사만 타고 톤레삽 호수로 이어지는 강을 따라갔다. 나 역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다. 이번엔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이니 10년 전의 '빈곤 포르노'에 노출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걸 연상케 하는 것들을 마주하게 될까 봐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눈살 찌푸려지는 풍경은커녕, 빈곤과는 거리가 먼 깔끔한 동네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예상외로 깨끗한 모습에 오히려 나의 편견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부모님의 이야기 말고도 수상가옥이라고 하면 왠지 가난한 사람들이 육지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밀려 나와 물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곳은 그냥 물에서 살기를 택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마을 회관, 경찰서, 교회, 모든 것들이 땅이 아닌 물 위에 설치된, 물 마을이었다. 주류에서 밀려난 비주류가 아닌, 비주류가 되기를 택한 이들.


막연하게 우중충함을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집의 모양도, 칠한 색감도, 갖가지 화분이나 인테리어도. 상대적으로 더 잘 사는 집들은 더 크고 화려했는데, 집에 신당 같은 무언가를 꾸며놓기도 했다. 이들은 이곳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서 육지에 가게 되면 적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부만 보고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수상가옥들을 지나고 나니, 맹그로브 숲에 들어갈 수 있는 쪽배를 타는 곳이 나왔다.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지나가기 위해서는 작은 배로 갈아타고 가야 했다. 쪽배는 현지인들이 노를 저어주는데, 대부분 아주머니들이다. 때로는 어린 자녀를 함께 태우고 가기도 한다. 우리는 드물게도 17살짜리 어린 남자아이가 젓는 배에 탔다.


우기 끝 무렵이라 그런지 숲에는 물이 많이 차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나면 물이 거의 말라서 구경하기 어렵다던데, 우기에 여행하는 건 이런 장점이 있었다.


고요하게 물소리만 참방참방 나니 온전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쪽배를 타고 짙은 초록빛 물을 조용히 가르며 신비로운 풍경 속에 더 스며들어갔다. 나무가 무성한 곳에는 그 틈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기도 했고, 탁 트인 공간에서는 멀리 뒤로 톤레삽 호수가 보이기도 했다.


높은 나무들만 봐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도, 우리의 17살 운전자는 우리가 아래의 풍경을 놓치지 않도록 애썼다. 거대한 우렁을 건져서 보여기도 했고, 기다란 풀을 하나씩 따주기도 했다. 먹으라고 먼저 시범을 보이기에 한입씩 떼어먹어봤으나, 너무 써서 나머지는 그냥 들고만 있었다. 그런데 마저 안 먹어서 다행이다. 나중에 가이드님이 보시더니 이건 이 동네 사람이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서 날로 먹었을 때 배가 아플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들은 주민이지만, 우리는 이방인이니까.



그곳에 가기 전까지는 맹그로브 나무들이 왜 물속에서 자라는지 궁금했다. ‘어떻게’가 아니라, ‘왜’. 그런데 수상가옥을 보고 맹그로브 숲을 보고 나니, 내 질문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여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이런 곳에서 사는지가 아니라,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는 관심이지만, ‘왜’는 오만함일 수 있다.


맹그로브는 그저 물속에서 자리를 잡고 적응해 나간 나무들이다. 수상가옥에 사는 사람들 역시 맹그로브 나무들과 같았다. 그저 이곳에 삶의 터전을 둔 사람들, 머물고 싶어서 머물고 있는 사람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지난해 출판한 나의 에세이에 이런 문장을 담았다. ‘나의 여행지는 누군가의 집’이라고. 그곳이 익숙해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고, 그곳이 익숙하지 않아 여행지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의 모든 장소는 그곳을 대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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