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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Jan 15. 2024

맛있었던 하노이

베트남 여행 3 - 하노이 맛집 투어

하노이 여행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하노이에서 먹은 음식들만큼은 완벽했다. 어떻게 이렇게 먹는 족족 다 성공적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쩌면 완벽하지 않은 여행이었기에 음식이라도 완벽했던 걸까? 여행의 신은 때로 아주 공평하니까. 여행에서는 모든 것을 성공하는 일도, 모든 것을 실패하는 일도 없다.


1. 반미 (반미마마 Banh My Mama)


하노이에서의 첫 식사는 기찻길 인생샷을 포기하고 얻은 반미였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반미가 이렇게 훌륭하게 맛있는 기억으로 남을 줄은 몰랐다. 야심 차게 계획했던 식사도 아니었으니까. 예상치 못하게 반해버린 반미의 맛은, 더 큰 기대를 안고 계획했던 다음날의 식사들이 모두 별로여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물론, 다음날 계획했던 식사도 모두 완벽했지만 말이다.


* 반미 이야기는 이전 글 참조 : https://brunch.co.kr/@felizerin/411


2. 짜까 (짜까탕롱 Cha Ca Tang Long)


다음날, 그러니까 하노이에서의 마지막날,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난 뒤에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가물치튀김인 짜까를 파는 식당이었다. 아, 사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기찻길이었지만 이번에도 실패하고 지나쳤으니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자.


베트남을 방문하는 것이 15년 전 그리고 5년 전에 이어 나름 세 번째였는데, 짜까라는 음식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미슐랭 1 스타를 받은 식당이 있길래 더욱 궁금해져서 찾아갔다. 예약을 미리 하지 않았는데, 운 좋게도 하나 남은 실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야외 자리도 낭만은 있겠지만 에어컨은 없다.


이곳의 주문은 매우 간단한데, 코팅된 한 장 짜리 종이 메뉴에는 세트 메뉴 하나만 적혀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걸 먹으러 간 것이었기에 곧장 2인분을 주문했다. 그런데 우리가 거의 다 먹었을 때쯤, 옆 테이블에 현지인 단체 손님이 왔는데 생선뿐 아니라 고기도 들어간 걸 먹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 장 짜리 메뉴판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만 건네는 메뉴였나 보다. 다음에 또 가게 되면 현지인 메뉴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문하고 잠시 뒤, 팬 위에 가물치 튀김과 채소를 함께 볶아주면서 나왔다. 그리고는 곧이어 함께 곁들여 먹을 쌀국수 면과 피시소스, 허브, 파, 땅콩 등이 테이블에 차려졌다. 세트 메뉴에 포함된 스프링롤도 두 개씩 나온다. 1인당 2개라 총 4개가 나왔다. 직원은 친절하게 먹는 방법도 알려주었는데, 가물치 튀김과 함께 볶아진 채소를 국수 위에 얹고, 나머지 것들을 적당히 함께 올려 곁들여먹으면 된다.


가물치 튀김 그 자체도 고소하고 맛있었지만 면과 채소를 함께 곁들여 먹으니 맛이 풍부해져서 더 좋았다. 면도 좋지만 밥이 있으면 밥이랑 비벼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흔하지 않은 메뉴라 더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는 먹을 수 없을지 찾아보기도 했다. 다음에 하노이에 또 가면 이 식당 그대로 다시 방문하고 싶다. 그때는 고기 메뉴도 주문해 봐야지!


3. 에그 커피 (카페 지앙 Cafe Giang)


짜까를 먹고 난 뒤에는 천천히 시내를 산책하다가 카페에 들어갔다. 짜까처럼 베트남 방문 3번 만에 알게 된 것이 또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에그커피다. 하노이 내 관광객들을 받는 카페라면 대부분이 에그커피를 파는 듯했는데, 그중에서도 원조라고 하는 곳으로 향했다. 사실 막상 마셔보면 맛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주말이라 자리가 없으면 다른 곳에 가려고 플랜 b까지 세워뒀는데, 다행히도 2층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1층이나 2층이나 비좁기는 마찬가지지만, 2층에 자리가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테이블도 의자도 굉장히 작아서, 왠지 걸리버가 된 느낌이었다. 이런 편하지 않은 자리가 회전율을 높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기본 에그커피 한 잔과 에그코코아 한 잔을 주문했다. 따뜻한 에그커피도 궁금하긴 했는데 너무 덥다 보니 둘 다 아이스로 주문했다. 다행히 두 메뉴 모두 성공적이었다. 계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크림이 부드럽고 달콤했다. 커피와 코코아 간의 차이는 조금 덜 달고 더 달고의 차이 말고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두 잔 모두 맛있게 먹었다.


시원한 곳에서 기분 좋게 당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 가지 신기했던 건  직원이 주문을 받아서 가져다주는데, 나갈 때 계산은 1층에서 하는데 내가 뭘 시켰는지 안다는 것. 계산하는 직원은 2층에 올라온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어디 CCTV라도 있거나 직원 간 소통이 매우 잘 되는 모양이다.


4. 쌀국수 (Pho bung Hang Trong)


달달한 커피를 마신 후 우리는 하노이 산책을 조금 더 이어갔다. 오후 산책 후 마사지를 받고 나니 벌써 어둑어둑해져서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가장 기대했던 식사인 쌀국수를 먹으러 갈 시간이었다.


가장 공들여 검색했던 맛집이 바로 쌀국수 맛집이었다. 몇 년 전 다낭과 호이안에서도 맛있게 먹기는 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쌀국수를 한 그릇 먹어보고 싶었다. 열심히 검색 끝에 발견한 곳은 골목 2층에 위치한 작은 가게였다. 맛있다는 극찬 후기들 중간중간에는 장소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후기들도 많이 보여서 더욱 궁금했다.


대로변에서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서, 누군가가 찍어둔 입구 사진을 참고하여 찾아낼 수 있었다. 간판 아래 좁은 길을 통해 뒷건물로 이동한 뒤,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갔다. 왼쪽에는 주방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먹을 공간이 있었다. 그런데, 식당이라고 불러도 될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정말이지 남의 집 거실에 온 느낌이 들었다. 가정집 분위기의 식당이라기보다는 그냥 가정집 같았다. 어릴 적 친구 집에 놀러 와 밥 먹는 기분이었달까.


메뉴도 쌀국수밖에 없으므로,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님께 인원수만 전달하고 아무 데나 앉으면 되었다. 손님들은 현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외국인은 우리 외에 서양인 커플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맛집으로 꽤 소문난 곳이라, 어찌어찌 잘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조금 기다리니 밀가루 튀김빵인 꿔이가 먼저 나왔다. 꿔이는 그냥 먹어도 되지만 쌀국수에 찍어 먹으라고 주는 빵이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쌀국수에 넣어먹다 보면 또 은은한 중독성이 있다.


그리고 곧, 가장 중요한 쌀국수 두 그릇이 나왔다. 국물이 진짜 깊었다. 이럴 때마다 맛을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그저 맛있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그 이상 더 어떤 미사여구가 필요하겠나 싶기도 하다. 그냥, 정말로 맛있으니까. 겨우 1인분에 40,000동, 한 그릇에 2천 원꼴이라니.


면도 적당히 부드럽고 쫄깃하고 고기도 부드러웠다. 한참 쌀국수를 떠먹다가, 꿔이를 넣어서 또 먹다, 막판에는 뒤에 보이는 매콤한 양념까지 함께 넣어 먹어보았다. 기본 쌀국수가 맛있으니 어떻게 먹어도 좋았다.


하노이 여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복잡해진 거리, 하루종일 연속해서 들리는 오토바이 빵빵거리는 소리,  디딜 틈 찾기 어려운 인도 걸어 다니는 것조차 힘들게 했다.


하노이를 내가 또다시 찾게 될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내가 하노이를 다시 찾게 된다면 이곳에서 먹었던 음식들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함께 드는 하루였다.


여행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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