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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Feb 08. 2023

마지막 열정을 내뱉은 Ozzy Osbourne

Black Sabbath의 시작과 부활

그리고 끝을 함께 하며 새 솔로 앨범 발표한 Ozzy Osbourne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보컬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은 밴드의 시작점인 1967년부터 1978년까지 함께 하며 8장의 앨범에 참여했다. 헤비메탈은 물론 이후 탄생될 하위 장르인 고딕메탈과 둠메탈의 효시로 통하는 [Black Sabbath](1970)에서 시작된 블랙 사바스와 오지 오스본의 동행은 [Never Say Die!](1978)에 이르러 마침표를 찍었다. 2010년 블랙 사바스의 리더 토니 아이오미(Tony Iommi)와 오지 오스본은 ‘Black Sabbath’의 상품 소유권과 관련해서 1년 동안 진행된 소송을 중단하기로 협의했다. 두 사람은 성명서에서 “‘Black Sabbath’의 소유권보다 블랙 사바스와 오지 오스본의 음악과 협력이 더 중요하다.”라는 극적인 화해법을 내놓았다. 

2011년 11월 11일 웨스트 할리우드의 선셋 스트립에 위치한 위스키 어 고고 클럽에서 블랙 사바스와 오지 오스본의 재결합, 즉 블랙 사바스의 완전체가 공개되었다. 이 재결합 이전에 오지는 두 차례에 걸쳐 블랙 사바스의 보컬로 활동했지만, 마지막으로 참여한 1978년의 스튜디오 앨범을 제외하고 발표된 음반은 단 한 장도 없었다. 2012년 밴드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버밍엄에서 재결합 이후 첫 공연을 펼친 블랙 사바스는 2013년 6월 [13]를 내놓았다. 토니 마틴(Tony Martin)이 보컬을 담당한 [Forbidden](1995) 이후 18년 만에 발표된 신보이자 열아홉 번째 작품이었다. 카메라 렌즈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재킷 속 오지의 모습은 블랙 사바스의 상표권을 주장하며 고소했던 상황을 연상하게 만들었고, 혹자들은 이 앨범을 ‘너 고소 음반’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적인 재결합 속에서 완성된 [13]은 ‘Black Sabbath’라는 이름으로 발표되는 마지막 음반이 될 거라는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여러 이슈가 투영된 [13]은 빌보드차트와 UK차트 등에서 1위를 석권했고, 그래미상 수상 등 밴드의 명성에 버금가는 결과물들을 쏟아냈다. 2016년 블랙 사바스는 자신들의 마지막을 알리는 ‘The End’ 투어를 시작했다. 재결합 이후 첫 공연을 펼친 고향 버밍엄에서 블랙 사바스는 마지막 무대에 올라 혼신의 연주를 펼쳤다. 그동안 폐렴과 호흡기 감염, 파키슨 진단 등으로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던 오지 오스본은 2022년 8월 토니 아이오미와 함께 ‘영연방 경기대회(Commonwealth Games)’의 폐막식에 등장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른 9월 9일 오지 오스본은 자신의 열세 번째 솔로 앨범 [Patient Number 9]를 내놓기에 이른다. 2020년 발표된 12집 [Ordinary Man] 이후 2년 만의 작품이다.      

어둠의 왕자, Ozzy가 쌓아 올린 철의 미학

그래미상과 NME, 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 VH1 Rock Honors, Classic Rock Roll of Honor Awards, Hollywood Walk of Fame 등을 수상하고, 헌액 되는 등 오래전부터 오지 오스본은 헤비메탈을 상징하는 제왕으로 추앙받고 있다. 블랙 사바스의 보컬로 활동하던 당시 ‘어둠의 왕자(Prince of Darkness)’로 불렸던 그는 늘 이야기해 왔다. ‘철의 사운드, 헤비메탈의 미학’에 대해서. 1980년 ‘Blizzard of Ozz Tour’ 투어 이후 2018년부터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No More Tours II’까지 오지 오스본은 16회의 세계 투어를 펼쳐 나왔다. 1987년, 1990년, 그리고 1994년부터 1994년, 2013년부터 2017년까지를 제외한 거의 매년 그는 전 세계를 돌며 공연을 전개했다. 음악에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열정은 나오기 힘들다. 

1948년에 태어난 오지 오스본은 신에 등장했던 1967년부터 줄곧 ‘철의 미학’을 추구했고 경이로운 음악 여정을 걸어 나왔다. 그가 기록해 나온 결과물들은 록과 헤비 사운드의 시작이었고 결정체였다. 무엇보다 그의 보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저음은 물론 하이로 올라가는 피치의 폭과 각이 매우 정교하며 넓다. 거기다 크게 샤우팅을 하지 않음에도 하이톤의 울림이 맑고 명쾌하다. 이는 헤비메탈을 상징하는 사운드인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 베이스의 음역을 더 드넓게 아우르는 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점은 오지가 가창한 대표적인 발라드 곡들에서 극명하게 발견된다. 먼저 블랙 사바스의 [Vol. 4](1972)에 수록된 발라드 넘버 ‘Changes’, [Technical Ecstasy](1976)의 ‘She's Gone’은 오지의 엄청난 음역대와 독특한 발성법을 확인할 수 있는 곡이다. 또한 솔로 앨범 [Blizzard of Ozz](1980)에 수록된 ‘Goodbye to Romance’와 엘튼 존(Elton John)과 함께 한 ‘Ordinary Man’, 잭 와일드(Zakk Wylde)의 텐션이 불타오른 [No More Tears](1991)의 ‘Mama, I'm Coming Home’ 등의 곡에서 전달되는 오지 오스본만의 보컬 미학은 다시없을 명창이라 할 만하다. 

그와 소통하며 호흡을 같이 나눈 이들은 모두 축복받은 음악가의 길을 걸었고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토니 아이오미를 비롯한 기저 버틀러(Geezer Butler)와 빌 워드(Bill Ward)는 블랙 사바스의 멤버로서 오지 오스본과 밴드를 결성하고 여러 명작을 남긴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오지 본인도 이에 걸맞게 블랙 사바스의 멤버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경건한 예우를 표해 나왔다. 이러한 표본을 바탕으로 오지 오스본은 1980년 발표된 첫 솔로 앨범부터 각 포지션에 수많은 신인과 명뮤지션들을 맞이해 나왔다. 

1979년 블랙 사바스를 떠난 오지는 씬 리지(Thin Lizzy)에서 활동하던 게리 무어(Gary Moore)와 도켄(Dokken)의 조지 린치(George Lynch), 론 스타(Lone Star)의 딕시 리(Dixie Lee) 등을 포함한 여러 뮤지션들과 리허설을 실행하며 자신의 밴드를 구성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한동안 오지의 주변에 신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즐비하게 줄을 섰고, 같은 해 11월 오지는 1집 녹음을 위한 라인업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콰이어트 라이어트(Quiet Riot)의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Randy Rhoads), 레인보우(Rainbow) 출신의 베이시스트 밥 데이슬리(Bob Daisley), 키보디스트 돈 에어리(Don Airey), 유라이어 힙(Uriah Heep) 출신의 드러머 리 커슬레이크(Lee Kerslake)를 맞이한 오지는 불후의 명작 [Blizzard of Ozz]를 레코딩한다. 

단 한 장의 앨범으로 블랙 사바스에 맞먹는 힘을 형성한 오지 오스본 밴드의 출발에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불운도 동시에 찾아왔다. 가장 큰 불운은 랜디 로즈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기타 포지션의 거듭된 멤버 변동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시작점에서의 불안했던 상황은 결과적으로 보다 많은 기회와 결과로 나타나는 아이러니로 이어진 셈이다. 그리고 기타리스트 못잖게 잦은 변화가 일어난 파트가 바로 키보디스트 자리였다. 1집 레코딩 당시의 멤버였던 돈 에어리는 음반에만 참여했고, 이후 투어 멤버와 세션으로 참여하는 등 번복된 활동을 보여줬다. 이후 마이크 모란(Mike Moran)과 사보이 브라운(Savoy Brown) 출신의 존 싱클레어(John Sinclair) 등이 거쳐 갔지만 정식 멤버로서 자리를 굳히지 못했다. 초기 밴드 음악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건반 파트는 점차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오지 오스본 밴드의 건반 파트에서 주목을 이끌었던 뮤지션은 예스(Yes) 출신의 릭 웨이크만(Rick Wakeman)의 참여였다. 오랜 시간 동안 세션과 백업 뮤지션으로 충당되어 왔던 오지 밴드의 키보디스트는 현재 릭의 아들 아담 웨이크만(Adam Wakeman)이 정식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Ozzy와 함께 했던 주요 뮤지션들

오지 오스본을 연상할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인물은 단연 랜디 로즈이다. 무명에 가깝던 랜디는 오지 밴드에서 참여한 [Blizzard of Ozz](1980)와 [Diary of a Madman](1981) 단 두 장의 음반으로 불세출의 뮤지션으로 남게 되었다. 랜디를 이어 오지 밴드에 등장한 기타리스트들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도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오지 밴드에는 브래드 길리스(Brad Gillis), 제이크 E. 리(Jake E. Lee), 잭 와일드, 스티브 바이(Steve Vai), 알렉스 스콜닉(Alex Skolnick), 존 홈스(Joe Holmes), 거스 G(Gus G)가 정규 멤버 및 투어, 세션 멤버로 활동했다. 현재는 투어와 세션, 정규 멤버 등 4차례 걸쳐 오지 밴드를 오갔던 잭 와일드가 다시 한번 기타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다. 잭은 [No Rest for the Wicked](1988) 이후 2022년 신보 [Patient Number 9]까지 6장의 정규 앨범에 참여하며 오지 밴드의 기타리스트 가운데 가장 많은 앨범에 참여한 멤버로 기록되고 있다. 정규 음반 외 많은 투어에도 함께 했던 잭은 3장의 라이브 앨범에도 참여했으며, 특히 실황 명반 [Live & Loud](1993)에서 역대급 연주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오지 오스본 밴드의 시작점에서 눈에 띄었던 인물은 루디 사조(Rudy Sarzo)이다. 그는 무명에 가깝던 신인 시절 콰이어트 라이어트에 가입하며 신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루디는 랜디와 각별한 관계를 맺으며 활동했는데, 랜디의 중재로 오지 밴드에 합류할 수 있었다. 랜디의 죽음은 밴드에 남은 두 명의 멤버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먼저 오지는 랜디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알코올과 약물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루디는 오지의 방황하는 모습을 마주하던 중 랜디의 부재에 따른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결국 ‘Diary of a Madman’ 투어 이후 콰이어트 라이어트에 복귀한 루디는 명작 [Metal Health]에 참여하게 된다. 

루디 사조 이후 피트 웨이(Pete Way)가 밴드에 합류했고, 다음 주자로 무명에 가깝던 필 수산(Phil Soussan)이 가입한다. 4집 [The Ultimate Sin](1986)에서 명연을 펼친 필은 전신 밴드 와일드라이프(Wildlife) 당시에 작업했던 ‘Shot in the Dark’을 제공하는 등 큰 역할을 담당했다. 필을 이어 오지 밴드에 합류한 연주자는 블랙 사바스에서 오지와 유별난 우애를 지니고 있던 기저 버틀러였다. 그는 [Just Say Ozzy](1989)와 [Ozzmosis](1995)에 참여한 이후 밴드를 떠났다. 1993년 오지 오스본은 그래미어워드에서 ‘최고 메탈 퍼포먼스’를 수상하게 되는 ‘I Don't Want to Change the World’가 수록된 [Live & Loud]를 발표한다. 이후 자신의 마지막 앨범이라고 밝혔으나 번복된 [No More Tears]를 위한 ‘No More Tours’를 대대적으로 진행한다. 이 투어와 다음 음반의 작업을 위해 오지는 50명이 넘는 베이스 주자의 오디션을 지켜봤고, LA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스킨 온 스킨(Skin on Skin) 출신의 마이크 아이네즈(Mike Inez)를 최종 멤버로 선정했다. 그러나 사운드에 만족하지 못한 오지는 최종 녹음에 밥 데이슬리를 초빙해서 레코딩을 완료했다. 이 사이 기타 파트에 스티브 바이와 조 홈스, 드럼에 딘 카스트로노보(Deen Castronovo) 등이 밴드를 오갔고, 메탈리카(Metallica)의 기운이 오지 오스본 밴드에 가미되며 오지 밴드에는 새로운 활로가 열리기 시작한다. 

2003년 제이슨 뉴스테드(Jason Newsted)가 탈퇴하고 6년 만에 발표한 앨범 [St. Anger](2003)에 참여하게 되는 로버트 트루히요(Robert Trujillo)가 새로운 베이스 주자로 가입했고, 8집 [Down to Earth](2001)가 발표된다. 로버트는 리이슈로 재녹음된 [Blizzard of Ozz]와 [Diary of a Madman]에 참여한 이후 메탈리카로 이적한다. 기회를 잡고 떠난 로버트의 자리는 오지가 ‘젊은 시절의 기저 버틀러를 연상하게 만든다.’라고 언급했던 제이슨 뉴스테드가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제이슨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났고, 오지 밴드에서의 제이슨의 위치는 ‘메탈리카의 고귀한 음역까지 포함한 오지 오스본’이라는 이슈만을 남겼을 정도로 아쉬움이 컸다. 뒤이어 제이슨의 자리는 댄직(Danzig)과 롭 좀비(Rob Zombie) 출신의 롭 니콜슨(Rob ‘Blasko’ Nicholson)으로 대체되고 그는 현재까지 오지 밴드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 

오지 밴드의 드럼 파트 역시 토미 앨드리지(Tommy Aldridge), 카마인 어피스(Carmine Appice) 등의 명인과 랜디 카스틸로(Randy Castillo), 마이크 보딘(Mike Bordin) 등의 신진들이 교차해서 자리했다. 현재는 2010년 가입한 토미 클루페토스(Tommy Clufetos)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19년 [Scream](2010) 이후 10년 만에 발표된 오지의 12집 [Ordinary Man]에는 정규 멤버 외에 50여 명으로 구성된 화려한 세션들로 연주 파트가 채워졌다. 먼저 엘튼 존(Elton John)이 오지와 함께 타이틀곡의 가창을 담당했고, GN’R 출신의 슬래쉬(Slash), 더프 맥케이건(Duff Mckagan), RHCP의 채드 스미스(Chad Smith), RATM의 톰 모렐로(Tom Morello), 루이스 벨(Louis Bell), 유명 프로듀서이자 멀티 플레이어 앤드류 와트(Andrew Watt), 그리고 오지의 딸 켈리 오스본(Kelly Osbourne) 등이 주요 뮤지션이었다.   

   

오명을 벗어나 오로지 자신의 음악을 완성해 나온 Ozzy

1981년 오지 오스본은 CBS 레코드와의 회의 자리에서 사탄 숭배자로 미화될 수 있는 일화를 남겼다. 그날 오지는 CBS의 경영진과의 회의 중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비둘기를 공중에 띄울 예정이었으나, 술에 취한 나머지 비둘기의 머리를 물어뜯었고, 급기야 그의 입에서는 비둘기의 피가 뚝뚝 떨어졌다. 당시의 상황이 보도된 이후 그의 행동은 여러 매체를 통해서 패러디되었고, 이는 한동안 오지 오스본을 악마 숭배자로 미화하는데 주요하게 활용되었다. 

비슷한 예가 더 있다. 1982년 1월 아이오와주에서 펼쳐진 공연에서 오지는 살아있는 박쥐를 물어뜯는 퍼포먼스를 행했다. 공연 이후 오지는 광견병 치료를 받았고, 2019년 머리가 분리되는 박쥐 장난감 ‘Ozzy Plush Bat’을 판매하며 과거의 기억을 희화하려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무대에서 다른 뮤지션들과 차별화되고 자신만의 이미지를 형성하려 노력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1983년 캐나다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오지 오스본은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살인을 범한 인물이 오지의 3집 [Bark at the Moon](1983)의 수록곡 ‘Bark at the Moon’을 들었다고 전해졌다. 아울러 살인범의 친구는 법정에서 “평소에 그는 ‘Bark at the Moon’을 들으면 마음속에서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오지의 음악을 통한 사회적 이슈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984년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청소년 존 맥컬럼(John McCollum)이 자살한 이후 그의 부모는 CBS 레코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이유는 존이 자살하기 직전에 오지의 솔로 데뷔 앨범 [Blizzard of Ozz](1980) B면 마지막 트랙에 위치한 ‘Suicide Solution’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었다. ‘Suicide Solution’은 알코올 남용의 위험을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존의 죽음과 관련이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1991년에도 발생되었지만, 법원은 오지의 음악이 자살과 약물남용 등의 사회적 현상을 부추긴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아직도 믿(고, 또 믿)기지 않지만, 오지 오스본은 영국교회의 성도로 공연 직전이나 매일 밤 기도를 한다.  

다채로운 영역에서 활약한 Ozzy

헤비메탈은 물론 신을 상징하던 오지 오스본이 블랙 사바스를 탈퇴하게 된 배경에는 잦은 음주와 약물 문제가 컸다. 그러나 그는 건강과 정신적 투명함을 추스르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밴드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3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았다. 블랙 사바스와 오지 오스본의 솔로 앨범을 포함한 22장의 음반 판매량은 1억 만장을 넘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독특하고 전위적인 무대에서의 캐릭터처럼 오지 오스본은 ‘물랑루즈(Moulin Rouge!. 2001)’와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 in Goldmember. 2002)’ 등 20여 편의 영화에도 출연, 혹은 성우로 참여했다. 2002년 3월 MTV에서 새롭게 편성된 프로그램 ‘The Osbournes’이 방영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오지 오스본과 그의 아내이자 매니저 샤론(Sharon), 딸 켈리, 아들 잭(Jack)이 함께 출연한 리얼리티를 표방한 이 프로그램의 오프닝은 ‘Crazy Train’이었다. 이 오프닝은 1997년 이지리스닝 가수 팻 분(Pat Boone)이 리메이크했던 버전을 연상하게 만드는 스윙 스타일이었다. 사실적인 장면과 여러 욕설이 난무한 ‘The Osbournes’은 총 52개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시즌 4로 구성되었고 2005년 3월까지 방영되었다.      


생전에 완성된 최상의 헌정 앨범이라 할만한 [Patient Number 9]

13개의 숭고한 트랙으로 채워진 [Patient Number 9]은 블랙 사바스를 떠난 이후 34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발표된 오지 오스본의 13집 앨범이다. 오지 오스본의 선명한 눈빛과 이미지가 매력적인 이 앨범은 오지의 생애 마지막 앨범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작 [Ordinary Man]을 발표한 직후부터 제작이 기획되고 녹음까지 순차적인 단계를 거친 이 앨범은 살아 있는 뮤지션에 대한 선후배 음악가들의 헌정이 담긴 최상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크레딧에는 정규 멤버로 오지 오스본만 명시되어 있다. 기타와 베이스 건반, 작곡까지 담당한 프로듀서 앤드류 와트를 필두로 제프 벡, 잭 와일드, 토니 아이오미, 에릭 클랩튼 등이 기타를 담당했고, 로버트 트루히요와 더프 맥케이건이 베이스 파트에, 그리고 채드 스미스 등 10여 명의 주요한 뮤지션이 각 파트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특히 잭 와일드는 7곡에 기타 파트로 참여했고, 5개의 트랙에서 건반을 담당했다. 이 외에도 제프 벡과 토니 아이오미는 각각 2개의 트랙, 채드 스미스가 10개, 로버트 트루히요가 7개의 트랙에 참여했으며 20여 명의 스트링 파트가 작품의 완성도에 기여했다. 

2022년 6월 24일 제프 벡이 참여한 첫 싱글 및 타이틀 곡 ‘Patient Number 9’이 뮤직비디오와 함께 선공개되었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평소 그림에도 일가견을 드러냈던 오지의 작품이 주요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어서 발표된 트랙은 거장 토니 아이오미가 참여한 ‘Degradation Rules’, 다음으로 잭 와일드가 피처링한 ‘Nothing Feels Right’이 공개되었다. 65회를 맞이한 그래미어워드에서 이 앨범은 ‘최우수 록앨범’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수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지 오스본의 이름은 블랙 사바스의 멤버로 데뷔하던 57년 전부터 현재까지 뚜렷한 흔적과 비교할 수 없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헤비메탈을 통한 인류애의 구현을 표방해왔던 오지 오스본은 세상의 생명체가 존재하는 그 날까지 대대로 회자될 뮤지션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를 떠오를 때 ‘Crazy Train’과 ‘Mr. Crowley’ 등에 이어 ‘Patient Number 9’을 더하게 되었다. 


- 이 글은 월간 파라노이드 35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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