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코넬과 에디 베더, 그리고 Grunge의 시작과 죽음의 명곡
북미 원주민들이 오랜 시간 동안 거주해왔던 시애틀의 주민들은 19세기까지 벌목을 주로 하며 생계를 이어 나왔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며 제조와 기술을 중심으로 변화를 맞이한 시애틀은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를 지니고 있다. 1990년과 2000년 사이에 도시의 인구가 5만 명 이사 증가했는데,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와 아마존, 알래스카 항공 등 21세기에 어울릴만한 기업들이 시애틀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던 배경을 지닌다. 사회·문화적으로 시애틀은 거대한 차이나타운과 여러 재즈클럽이 성황을 이루던 시기를 거쳤고,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기타, 보컬)와 하트(Heart)의 기운을 이어나온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1980년대 헤비메탈 신은 LA메탈 혹은 글램메탈로도 불리는 헤어메탈과 스래쉬메탈의 등장으로 출렁였다. 줄기차게 등장했던 세기말적 밴드들의 음악은 수많은 뮤지션과 밴드를 통해 매일매일이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를 전달했다. 당시에 출현했던 많은 음악인들은 지역적으로 LA와 샌프란시스코, 네바다를 중심으로 하는 캘리포니아 지역 출신들이 주를 이뤘다. 신을 주도하던 캘리포니아 지역 뮤지션들보다 위쪽에 위치한 태평양 북서부 지역, 즉 워싱턴주의 시애틀에도 새로운 성향과 음악적 틀을 지닌 이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이들은 펑크와 헤비메탈의 조화를 이뤘고, 그런지 사운드로 불렸으며, 사회와 자아, 학대, 배신, 고립, 중독 등을 주제에 자유와 열망을 담은 소재를 더한 가사룰 바탕으로 음악적인 틀을 새롭게 정립하면서 대중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음반업계의 특징은 독립적인 제작과 유통 시스템이었다. 그 모습은 10여 년 후인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정착해서 진화를 이루고 있는 인디(Indie) 문화와 거의 흡사했다. 시애틀의 1980년대 중반은 서브 팝(Sub Pop)으로 축약된다. 서브 팝의 직원들은 ‘때, 먼지’라는 의미를 지닌 ‘그런지(Grunge)’를 의도적으로 대중에 노출했고, 이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서브 팝의 ‘때’를 묻혀 성공한 밴드는 너바나(Nirvana)와 펄 잼(Pearl Jam), 사운드가든(Soundgarden), 스톤 템플 파일러츠(Stone Temple Pilots),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등 시대를 풍미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과 움직임은 먼지처럼 쉽게 날리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시애틀을 중신으로 데뷔한 여러 밴드는 1990년대 헤비메탈의 신기원을 열었고, 얼터너티브와 그런지 사운드를 상징하는 음악 집단으로 기록되고 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덧입혀지는 밴드들이 머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이다.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 1970)과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1970), 짐 모리슨(Jim Morrison. 1971)의 연이은 죽음처럼 그런지에까지 드리워졌던 어두운 그림자는 머더 러브 본의 앤드류 우드(Andrew Wood. 1990) 이후 커트 코베인(Kurt Cobain. 1994)과 레인 스탠리(Layne Staley. 2002),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 2017), 채스터 베닝톤(Chester Bennington. 2017)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난 앤드류 우드에 대한 헌사로 결성되었던 프로젝트 밴드 템플 오브 더 도그(Temple of the Dog)의 숭고했던 헌정은 그래서 더 의미있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라디오헤드(Radiohead)의 ‘Creep’에 견줄만한 1990년대의 송가로 기록된 ‘Hunger Strike’를 앞세운 템플 오브 더 도그의 유일한 앨범 [Temple of the Dog]는 그런지의 정신을 축약한 위대한 작품이었다. 6명의 멤버들이 해변에서 쏟아냈던 정열적인 연주는 언제든 곱씹어도 아련한 향수와 고즈넉한 기운마저 전달한다. 크리스 코넬이 작곡한 ‘Hunger Strike’는 코넬과 에디 베더의 듀엣으로 초연되었고, 두 사람을 축으로 여러 밴드와 뮤지션들이 라이브에서 가창했던 곡이다.
크리스 코넬과 에비 베더는 그런지는 물론 헤비메탈 역사에 있어서 매우 거친 톤의 가창 스타일을 지닌 보컬리스트들이다. 또한 두 사람의 가창은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와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처럼 자신들 고유의 스케일을 완성한 후에 데뷔한 명보컬리스트들이었다. 코넬은 바리톤식 가창력을 바탕으로 4옥타브의 음역을 지녔고, 가성부터 샤우팅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에디 베더의 보컬 역시 바리톤에 주한 가창력을 보이는데, 멜로디컬한 전개와 저음부터 고음에 이르는 단계별 스케일이 고르게 번지는 고급스러운 기품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음의 절정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프레이즈에 여러 톤을 가미했다는 점이고, 작곡과 작사에 있어서도 두각을 보이며 여러 명곡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장점이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곡이 바로 템플 오브 더 도그의 ‘Hunger Strike’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완성된 ‘Hunger Strike’는 또 다른 죽음을 불러낸 곡으로 남겨졌다. 2007년과 2008년 린킨 파크(Linkin Park)의 ‘Projekt Revolution Tour’에서 크리스 코넬은 무대에 올라 채스터 베닝톤(Chester Bennington)과 함께 ‘Hunger Strike’를 열창했다. 이 날 무대에서 코넬은 린킨 파크의 히트곡 ‘Crawling’까지 열창하며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2017년 5월 사운드가든의 공연을 마치고 휴식을 위해 호텔에 들어갔던 코넬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코넬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했던 베닝톤은 코넬의 장례식에서 레오나르드 코헨(Leonard Cohen)의 ‘Hallelujah’를 부르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코넬이 세상을 떠난 지 2개월 후이자 코넬의 생일이었던 7월 10일, 베니턴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베니톤은 코넬의 늦둥이 아들 크리스토퍼의 대부였으며, 코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망의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지에 드리워졌던 죽음의 그림자에 대한 중단의 의식처럼 기획되고 선을 보였던 템플 오브 더 도그의 유일한 음반이 발매된 지 4개월 후인 1991년 8월, 많은 음악 팬들은 펄 잼의 데뷔작이자 역사적인 작품 [Ten]을 마주하며 예열되었던 그런지의 화염 안으로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펄 잼의 결성에는 머더 러브 본과 인연이 깊은 제프 어멘트(Jeff Ament. 베이스)와 스톤 고사드(Stone Gossard. 기타)가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