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희망 속에서 숨어우는 바람을 노래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제작된 시나위 7집 [Psychedelos]
1998년은 UN이 지정한 ‘바다의 해’였다. 시나위의 7집 앨범 [Psychedelos]는 1998년에 발매된 작품으로 5.5집 [Circus]에 참여한 이후 김바다가 시나위와 함께 한 세 번째 음반이다. ‘상승’을 첫 트랙으로 12분대의 대곡 ‘해랑사2’까지 14곡이 수록된 [Psychedelos]는 7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으로 구성되었다.
[Psychedelos]가 발표된 1998년은 IMF 위기 앞에서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요동이 심했던 시기였고, 국민 대다수는 안정된 삶을 향한 희망을 꿈꾸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일편 정치·경제·종교 분야의 사회 지도층들은 국민의 자성을 바라며 화합과 희생만을 강조하기에 급급했다.
음악적으로 절정에 이르렀던 신대철과 신동현, 그리고 김바다와 김경원이 함께 했던 1998년. 11기로 기록된 시나위는 억압된 바람을 노래했던 [Blue Baby]를 이어서 왜 연장된 주제와 파격적인 틀을 지닌 [Psychedelos]를 내놓은 걸까.
당시는 금지된 것들이 넘치던 시기였다. 위계와 질서로 과하게 치장된 사회 분위기는 소소한 자유와 개성마저 만용으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뚜렷한 해방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던 사람들의 눈빛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실함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환멸과 허무, 염세주의가 병적으로 뻗어나가던 시기, 불과 20여 년 전의 1998년은 그러함이 팽창된 때였다. 격렬함 속에 달콤함을 녹여낼 수 있었던 시나위의 멤버들은 음악적 안위를 버리고 대중의 속마음을 음악으로 대변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시나위의 직전 작품인 6집 [Blue Baby]는 비이상적인 모습을 띄던 세상을 향한 외침으로 가득 채워졌던 음반이었다. 해를 이어 발표된 시나위의 7집 [Psychedelos]는 6집이 지닌 핏빛 정서가 더욱 강화되어 날을 세워 완성된 작품이다. 침묵의 절망을 그렸던 6집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Psychedelos]는 안일함과 나태함으로 죄악의 결과를 보인 기득권을 향한 가속된 절규로 요약된다.
[Psychedelos]에서 시나위는 죽음을 꿈꾸듯 노래하고 연주했다. 동시에 새로운 호흡 속에서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꿈과 희망의 조심스러운 관성을 여러 음의 조합으로 보여줬다.
[Psychedelos]가 발표된 그 해 엑스 재팬(X Japan)의 기타리스트였던 히데(hide, 松本秀人)가 3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리고 대중음악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온 핑클이 데뷔했고, 서태지는 ‘Take Two’와 ‘Take Five’를 타이틀곡으로 하는 5집을 발표하며 컴백했다. [Psychedelos]에서 시나위는 결성 이후 처음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보다 많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다. 로드 무비 형식으로 제작된 ‘희망가’의 뮤직비디오에는 핑클과 서태지, 그리고 히데의 잔영까지 고르게 투영된 패션과 비주얼이 눈에 띈다. 특히 ‘은퇴선언’이 히트를 기록했던 전작 [Blue Baby]를 끝으로 탈퇴했던 정한종(베이스)을 이어서 가입한 김경원(베이스)과 김바다(보컬)의 개성 넘치는 이미지는 이전보다 활발해진 방송 활동에 넉넉한 플러스 효과로 연결되었다.
‘Psychedelos’이 지닌 상징성과 명연이 함께 한 수록곡
시나위가 결성 15주년을 맞이하며 발표한 7집의 타이틀 ‘Psychedelos’는 꿈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 스스로 절망의 환각에 빠져 헤매는 모습을 의미한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는 시대상은 사이키델릭과 얼터너티브에 중심을 잡고 분노와 절규로 응집되어 표출되었다. 이를 대표하는 곡이 바로 ‘개야 짖어라’와 ‘붉은 장미밭’, ‘악의 꽃’, ‘순종의 벽’이다. 퍼즈와 디스트, 변박의 울림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붉은 장미밭’은 중기 시나위를 상징하는 곡이라 할 만하며, 얼터너티브의 기조 속에 전체 멤버의 광폭한 음의 폭동을 불러일으키는 ‘순종의 벽’은 훌륭한 합을 이룬 넘버이다. 대중성을 지향한 록음악 가운데 손꼽을만한 메시지와 가사로 각인되는 ‘개야 짖어라’에서 연출된 김바다의 보컬은 그가 지닌 음악성의 절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분노하고 토로해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고통 속에서 헤매는 모습을 담은 ‘미친계절’과 ‘날개’, ‘유서’ 등. 나락을 벗어나고 싶은 그 시절의 바람을 의미하듯 시나위는 이 앨범의 타이틀을 ‘Psychedelos’로 집약했다.
그럼에도 이 앨범에는 꿈과 희망의 송가라 할 수 있는 ‘희망가’가
지금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
‘금지된 희망’과 ‘숨어우는 바람’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시대와 현실을 너무나 잘 대변한 가사였다.
지난 앨범에 이어 연작으로 자리한 ‘해랑사2’는 이 음반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트랙이다. 변화감이 큰 곡조 속에서 시나위만이 연출할 수 있는 낭만적이고 격정 어린 연주는 감상을 반복할수록 더해지는 묘미가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