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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Aug 26. 2024

거칠지만 아름다운 음악 속 사람들 2

글램메탈의 성공 속에서 인연이 교차했던 제이크 E. 리와 조지 린치

티. 렉스(T. Rex)와 뉴욕 돌스(New York Dolls), 키스(KISS), 앨리스 쿠퍼(Alice Cooper), 스위트(Sweet),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하노이 록스(Hanoi Rocks) 등은 초기 글램록을 대표하는 밴드와 뮤지션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각적인 이미지와 펑크를 기초로 한 음악으로 인기를 얻었다는 점이다. 대중적으로 환영을 이끌어낸 글램록은 음악적으로 맹점이 불안정한 시기를 거치며 어느 순간부터 확장이 중단되었다.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글램록이 지닌 취약점을 보강하고 새로운 흐름을 마련해 낸 밴드가 등장하게 된다. 


바로 데프 레파드(Def Leppard)였다. 이들은 글램록의 주를 이루던 펑크 사운드에 NWOBHM(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의 기운과 헤비메탈의 혼용된 틀과 맥을 덧씌웠다. 초기 대표작인 [High 'n' Dry](1981)와 [Pyromania](1983)는 글램록은 물론 글램메탈의 신기원을 열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비슷한 시기 ‘Don't Tell Me You Love Me’가 히트한 나이트 레인저(Night Ranger)의 [Dawn Patrol](1982)의 성공을 넘어 콰이어트 라이어트(Quiet Riot)가 신을 뒤흔들었다. 이들의 3집 [Metal Health](1983)에 수록된 슬레이드(Slade)의 원작 ‘Cum On Feel the Noize’가 빌보드 200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던 것. 그렇게 1983년은 글램메탈이 신을 점령하기 시작한 해로 기록된다.  

 

   

글램메탈의 황금기를 열었던 콰이어트 라이어트와 나이트 레인저에는 랜디 로즈(Randy Rhoads)와 제프 와트슨(Jeff Watson), 브래드 길리스(Brad Gillis)라는 걸출한 기타리스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처럼 글램메탈을 상징하는 밴드에는 그룹의 인기에 부합하는 기타리스트들이 늘 자리했다. 머틀리 크루(Mötley Crüe)의 믹 마스(Mick Mars), 본 조비(Bon Jovi)의 리치 샘보라(Richie Sambora), 래트(Ratt)의 워렌 디마티니(Warren DeMartini), 도켄(Dokken)의 조지 린치(George Lynch) 등이 대표적이다. 초기 글램메탈 밴드들이 지닌 또 하나의 유사점은 이전보다 매혹적인 비주얼과 가창력을 바탕으로 하는 우수한 발라드가 한두 곡씩 수록되었다는 부분이다. 글램메탈의 전성기를 지나 새로운 영역을 마련했던 신데렐라(Cinderella)와 포이즌(Poison), 스키드 로우(Skid Row), 워런트(Warrant), 테슬라(Tesla) 등의 음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과 정반대의 패션과 음악적 콘셉트를 지닌 그런지와 얼터너티브메탈의 등장으로 글램메탈의 흔적은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전 장르의 몰락과 새로운 강자의 등장이 거듭되던 1980~90년대 사이에는 실력과 인기는 물론 평단의 지지까지 더한 글램메탈 계열의 밴드도 존재했다. 반 핼렌(Van Halen)과 데프 레파드,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와 같은 밴드가 먼저 떠오를 수 있겠다. 이외에도 대중적 심지와 평론가들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었던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의 인기는 특히 강렬했다.

     

음악적으로 오지 오스본 밴드를 글램메탈로 분류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밴드를 거쳐 나간 기타리스트들은 모두 글램메탈의 유전자를 지닌 이들이었다.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와 함께 헤비메탈을 상징하는 보컬로 많이들 오지 오스본을 꼽는다. 이는 두 사람이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를 매개체로 이어 나간 각각의 화려했던 솔로 이력이 분명하게 근거한다. ‘Prince Of Darkness’라는 별명답게 오지 오스본은 헤비메탈의 여러 하위 장르 가운데 특히 색감과 음감이 어두운 장르로 분류되는 둠메탈과 블랙메탈, 고딕메탈에 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글램메탈의 향취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내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1억 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해 나오고 있는 오지 오스본 밴드는 멤버로 활동했던 뮤지션들의 걸출한 라인업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밴드를 거쳐 간 기타리스트들은 대중적으로 이전보다 더 인기를 얻고 성장해서 다음 단계로 연결되며 신을 풍성하게 이끌었다. 결성 초기 오지 오스본 밴드의 사운드를 정립했던 인물은 랜디 로즈였다. 그의 뒤를 이어 활동했던 브래드 길리스, 그리고 제이크 E. 리(Jake E. Lee), 잭 와일드(Zakk Wylde), 스티브 바이(Steve Vai), 조 홈스(Joe Holmes), 거스 G(Gus G) 등은 헤비메탈의 역사에 족적을 분명하게 남긴 연주자들이다. 이중 제이크 E. 리는 독보적인 테크닉을 선보였고, 연주 스타일에 걸맞게 거칠면서도 유려한 행보를 보여준 뮤지션으로 기억된다.       


리프에 대한 창작 능력과 핑거링 플레이, 스윕 피킹, 양손 태핑 등을 앞세운 현란한 테크닉의 기타리스트로 통했던 제이크 E. 리는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배경으로 미묘한 매력의 이미지를 풍긴다. 리는 고교 시절부터 이름을 날리던 기타리스트였다. 여느 뮤지션과 마찬가지로 리 역시 밴드를 결성하게 되는데. 첫 밴드의 이름은 티저(Teaser)였다. 밴드명 티저는 요절한 딥 퍼플(Deep Purple)의 기타리스트 토미 볼린(Tommy Bolin)의 데뷔 솔로 앨범에서 차용한 것으로 리는 볼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후 리는 글램메탈을 상징하는 밴드로 성장하는 래트에 가입했고, 메탈리카(Metallica)도 참여했던 역사적인 컴필레이션 앨범 [Metal Massacre](1981)에 참여한 이후 일생일대의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블랙 사바스를 탈퇴한 로니 제임스 디오의 새로운 밴드 디오(Dio)의 기타리스트로 낙점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잼과 리허설이 오간 한 달 사이에 자신의 연주에 참견이 컸던 디오와의 견해 차이로 밴드를 떠나고 만다. 

그가 만약 당시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덜어내고 디오의 멤버로 남았다면 헤비메탈을 상징하는 디오의 [Holy Diver](1983)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그의 자리를 대신해서 화려하게 빛났던 비비안 캠벨(Vivian Campbell)은 화이트스네이크와 데프 레파드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로즈의 죽음 이후 길리스의 가입과 탈퇴 사이에 향후 대형 뮤지션으로 성장하게 되는 인물이 오스본의 주변에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조지 린치. 뮤지션으로서 조지 린치의 시작에는 여러 인연이 거듭되고 있었다. 그는 1970년대 후반 더 보이즈(The Boyz)라는 밴드의 멤버로 클럽에서 활동해 오던 기타리스트였다. 당시 더 보이즈와 함께 클럽에서 연주하던 팀은 콰이어트 라이어트와 반 핼렌이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린치는 오지 오스본 밴드의 창단 멤버를 뽑는 오디션에 참여했지만 랜디 로즈에 밀리고 말았다. 이후에도 뮤지션으로써 계기가 마련되지 않던 린치는 오지 오스본 밴드의 투어에서 테크니션으로 꾸준하게 활동했고, 오스본과 유대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린치는 길리스가 떠난 오지 오스본 밴드의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오스본의 부인이자 밴드의 사업적인 부분을 담당하던 샤론 오스본(Sharon Osbourne)은 린치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린치의 짧은 머리 스타일이 이유 중 하나였다. 

오지 오스본은 확실히 실력 못잖게 운 역시 좋은 뮤지션이었다. 솔로 활동을 시작했던 1980년대 초반, 오스본에게 한 사람의 귀인이 찾아왔었다. 그의 이름은 다나 스트럼(Dana Strum. 베이스). 키스 출신의 비니 빈센트 인베이전(Vinnie Vincent Invasion)에서 마크 슬로터(Mark Slaughter)와 함께 활동했던 그는 이후 글램메탈의 후반기를 대표하는 밴드 슬로터(Slaughter)에서 활약하게 되는 뮤지션이다. 뮤지션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에 앞서 스트럼은 오지 오스본에게 랜디 로즈를 소개했던 인물로 더 큰 의미 부여를 받는 이다. 


린치에 대한 영입과 해고 사이에서 갈등하던 오스본 부부에게 다시금 귀인 스트럼이 다가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제이크 E. 리를 소개했고, 결국 오지 오스본 밴드는 새로운 멤버로 리를 맞이하게 된다. 디오와 오지 오스본을 거친 유일한 기타리스트로 기록되는 제이크 이. 리가 자신에게 맞는 날개를 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조지 린치는 당시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 해고되던 날 직전에 마트의 배달원으로 면접을 봤고, 고용주의 요청으로 긴 머리를 짧게 잘라야만 했다.(아.. 머리카락이 짧아 슬펐던 나의 젊은 날이여..)” 조지 린치는 이후 글램메탈의 대표적인 그룹인 도켄을 결성하게 되었고, 구릿빛 피부와 짧은 머리는 그의 연주 못잖은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Blizzard of Ozz](1980)과 [Diary of a Madman](1981) 두 장의 음반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랜디 로즈를 뒤이어 등장한 리 역시 오지 오스본 밴드에서 두 장의 음반에만 참여했다. 헤베메탈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리프로 손꼽히는 타이틀 곡을 담고 있는 [Bark at the Moon](1983)과 오지 오스본 밴드의 새로운 음악적 전환기를 마련한 [The Ultimate Sin](1986)에 참여한 이후 리는 배드랜즈(Badlands)를 새롭게 결성해서 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Bark at the Moon' Live 바로 보기


Jake E. Lee 'The Ultimate Sin Tour' Live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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