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방황기(彷徨記) 3편
마리나와 나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만났다. 나는 그곳에서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있었고, 마리나는 교환 학생이었다. 발렌시아에서 유학 중인 한 한국인 친구의 초대로 간 파티에서 마리나를 알게 되었다. 사실 그녀에게는 한국인 남자 친구가 있었고 그때 당시 스페인-한국 간 장거리 연애 중이었다.
우리 둘은 서로에게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가르쳐 주기로 하였다. 물론 스페인에서 살며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나와, 스페인에서 한국어 공부를 그것도 가나다라부터 시작하는 마리나 둘 사이의 거래가 공평 할리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대화 내용이 조금이라도 깊어지면 영어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일리 역시 그 날 저녁 파티에서 알게 되었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일리는 내가 본 멕시코인 중에 가장 매력적인 외모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말할 때마다 느껴지는 털털함까지. 대화도 잘 통하고 유머 코드도 상당히 잘 맞았던 우리는 그 날 이후로 친구가 되었다.
둘은 멕시코의 같은 대학교 같은 과 친구였고, 스페인에 교환학생으로 오며 함께 살고 있는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마리나와 일리는 일리가 내 스마트폰에 직접 저장해준 이름 그대로 내 최고의 멕시칸 친구들이었다. (그녀는 처음 알 게 된 날 내 스마트폰에 본인 번호를 저장하며 ‘My best Mexican friend Ili’라고 적었다.)
그리고 멕시코에서의 넷째 날은 모두와 다시 만나는 날이었다. 헤어지며 기약했지만 정말 오게 될 줄 몰랐던 멕시코에서 말이다.
전날의 지진과 클럽 사태로 온 몸과 마음이 피곤했지만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그날은 마리나와 함께 나왔고 드디어 ‘콤비’(Combi)를 탈 수 있었다.
콤비는 멕시코의 로컬 미니버스이다. 며칠 안되긴 하지만 그동안 콤비를 길에서 보기만 하니 신비로운 존재로 여기고 있었는데 (쉽게 탈 수 없기에) 직접 타보다니 영광스러웠다. 우리가 탄 콤비는 다마스 같은 봉고차였다. 마리나는 타자마자 목적지가 어디인지 기사님께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택시처럼 원하는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건 아니고 붙임성 좋은 마리나가 기사님께 그냥 이야기한 것 같았다. 콤비는 우리를 태우고 몇 군데를 더 들러서 나머지 승객을 태우고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집 근처의 지하철 역이었다. 타보고 느낀 점은 ‘역시 혼자서 이걸 타고 다니긴 힘들겠구나’였다. 짧은 여행이니 한 번의 경험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날 우리가 함께 가기로 한 곳은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 성당’(Basilica de Santa Maria de Guadalupe)이었다. 세계 3대 성모 발현지 중 하나인 이곳에는 성지 순례로 매년 2,000만 명의 사람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성모 발현에 대하여 스페인 침략자 그리고 가톨릭 교회가 원주민들을 빠르게 개종시키기 위해 원주민의 모습을 한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이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성모 발현의 기적으로 많은 원주민들이 천주교로 개종을 하였다. 지금도 멕시코는 문화적으로 종교색이 짙은 국가 중에 하나이다.
과달루페 성모 발현의 배경에는 ‘후안 디에고’라는 원주민 청년의 이야기가 있다. 천주교로 개종한 인디오 ‘후안 디에고’에게 어느 날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고, 테페약 언덕 위에 성당을 지으라고 한다. 후안 디에고는 이를 지역 주교에게 이야기 하지만 주교는 원주민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날 리 없다고 이를 입증할 증표를 가져오도록 요구한다. 또다시 디에고 앞에 모습을 드러낸 마리아는 장미꽃이 핀 언덕을 알려주며 그곳에서 꽃을 따오라고 한다. 추운 겨울임에도 장미꽃이 피어 있었고 디에고는 그 꽃들을 틸마라는 외투 안에 담아 주교에게 가져갔다. 주교 앞에서 틸마를 펼치자 장미꽃들이 떨어지고 틸마 안에 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일로 그 틸마(외투)는 성물이 되었고, 이것을 보관하기 위해 1531년에 지어지기 시작한 성당이 바로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 성당이다. 여기서 ‘과달루페’는 바로 유색 얼굴과 원주민의 모습인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이때 지어진 구)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 성당은 규모가 작은 성당이다. 현재는 여러 차례 발생한 지진으로 지반이 침하되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시간이 흘러 1973년 구)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 성당 옆에 지금의 새로운 성당이 지어진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 새로 지어진 성당의 입구에 금빛 문자로 적힌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너의 어머니인 내가 여기 있지 않느냐?’ (No Estoy Yo Aqui Que Soy Tu Madre?)
바로 성모 마리아가 후안 디에고에게 한 말이다.
성당의 안쪽에는 디에고의 틸마에서 오려낸 천조각에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그린 작은 성모상이 있다. 45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상태가 양호하다. 그리고 성당에 많은 사고가 있었음에도 어떠한 손상을 입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성모상을 보기 위해 친구들과 같이 새로 지어진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가끔 나는 역사적인 장소와 현대 문명의 조합에 놀랄 때가 있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성모상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길에는 바로 공항에서나 볼 법한 ‘무빙워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어느 한 곳에 체류기간이 길어져서 순환을 막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빠르게 지나가는 무빙워크 위에서 성모 마리아상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순례자들에게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을 나오며 일리에게 물었다.
“멕시코 사람들은 정말 성모 발현 이야기를 믿어?”
“신을 믿지 않는 사람과는 신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맨날 파티만 다니고, 몸매 가꾸기에만 열심인 줄 알았는데 어색했다. 일리의 이런 모습.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 성당을 나와 우리가 향하게 된 곳은 전날 지진으로 들어가 보지 못한 ‘바스콘셀로스 도서관’(Biblioteca Vasconcelos)이었다. 지진 이후 일반 시민들에게 오픈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지만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아 일단 가보기로 했다.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은 일반 시민 및 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내부에 책들을 넣는 책장이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인터스텔라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유명해진 도서관은 많은 관광객들도 찾고 있다. 사실 도서관은 혼자 조용히 보고 싶었다. 어차피 들어가면 소리 내서 대화도 못 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친구들 모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겸사겸사 모두 함께 도서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역시나 도서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그리고 이동 한 곳은 ‘차풀테펙 성’ (Castillo de Chapultepec)이다. 차풀테펙 공원의 중심부에 있는 성으로 공원 입구에서부터 성까지 들어가는 길도 꽤 걸어야 하고 내부도 큰 편이라 또 다른 반나절은 이 곳에서 보냈다. 차풀테펙 공원은 서울의 ‘어린이대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중심부의 성을 제외하면 말이다. 진입로에는 풍선, 솜사탕, 아이스크림과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노점상들이 있었다. 우리는 간단히 허기를 달랠 겸 망고를 사서 먹었다. 달콤한 망고 위에 뿌려먹는 빨간 고춧가루 같은 칠리가 얹어져 묘하고 이국적인 맛이 났다.
차풀테펙 성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멕시코에 가기 전에 역사책을 읽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런 지식이 없었다면 이 넓은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조금 지루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곳은 멕시코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현재 국립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785년 스페인 총독의 지시로 화려한 바로크 풍으로 지어진 이후에 그 주인이 수도 없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제국의 통치, 멕시코 독립전쟁, 미국과의 전쟁 그리고 프랑스의 침공 등 격변의 시대가 만들어낸 수많은 유산들이 차풀테펙 성 안에 빼곡히 쌓여 있었다.
물론 이런 역사적 배경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정원과 공원을 즐기기 위해 가는 것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마지막에 성안을 다 둘러보고 나왔을 때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을 마주하고는 어쩐지 산 정상에 올라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공원을 나올 때는 당 충전을 위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었다. 콘 위에 동그랗게 올려진 형형색색의 아이스크림. 어렸을 적 유원지에서 먹었던 아이스크림의 맛이 났다. 추억의 맛.
저녁은 이날 동행한 아날리라는 친구의 추천으로 멕시코시티에 있는 ‘과달라하라' 요리 전문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서울에 있는 남도음식 전문점 같은 느낌? 메뉴에 좀 특이한 음식이 있었다. 간단히 설명하면 바게트 빵을 이용한 샌드위치이다. 안에는 잘 구운 새우가 들어있는데 특이하게도 샌드위치를 충분히 적실만큼 수프에 담겨 나왔다. 여기서 놀라운 포인트는 수프에 젖은 샌드위치는 비닐장갑과 함께 등장한다는 점이다. 먹는 모습은 그리 좋지 않았겠지만 맛은 훌륭했다. 그리고 비닐장갑을 끼고 먹으니 자연스레 ‘국물 닭발’과 ‘매운 갈비찜’이 생각나며 웃음이 나왔다.
저녁을 먹고는 멕시코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독립기념비 ‘엘 앙헬’ (El Angel) 앞 계단에 걸터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이 되자 다들 지쳐 있었다. 아침부터 그 넓디넓다는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 성당’과 ‘차풀테펙 성’을 다녔으니 무리도 아니다. 태평양을 건너서 온 친구에게 멕시코를 보여주겠다고 함께 열심히 다녀준 친구들에게 너무 고마운 하루였다. 낮에는 뜨거울 정도로 내리쬐던 해가 사라지니, 바람이 꽤 많이 불고 쌀쌀해졌다. 아날리는 멕시코 전통술인 ‘풀케 (Pulque)’를 마시러 가자고 했지만 마리나의 체력이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았다. 내가 온 며칠간 본인 방에서 편히 잠도 못 자고 힘들었던 마리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전날 새벽까지 클럽에서 신이 나서 춤추던 모습도 오버랩이 됐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마리나, 그리고 마리나의 엄마와 함께 할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니 체력을 비축해야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두 친구들과는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었다. 너무 늦지 않게 또 만나길.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리나에게 물었다.
“마리나 우리 내일 몇 시 출발이지?”
“엄마가 아침 9시에 출발한다고 했어”
“헉.. 그러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야겠네?”
“아니 그렇게 얘기했으니까 12시나 1시쯤 출발할 거야”
“아…”
갑자기 다음 날 중으로 출발은 하는 건지 의심스러워졌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매우 특별한 곳으로 가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멕시코의 네 번째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