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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 Jun 20. 2021

지진의 근원지로 (feat.멕시코 와하까)

멕시코 방황기(彷徨記) 4편

멕시코 방황기(彷徨記) 4편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시간을 보려고 스마트폰을 켜니 간밤에 마리나에게서 온 메시지가 있었다.


“레나!! 네가 멕시코에 오면 갈 곳이야!”


같이 보내준 사진에는 엄청난 풍경의 천연 온천과 폭포가 있었다. 나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헐. 마리나. 여기 이름이 뭐야?”

“이에르베엘아구아! (Hierve El Agua), 와하까에 있어!”

“대박. 너무 좋아!!!!!!!”

“엄마가 같이 가기로 했는데 괜찮지?”

“응 완전 괜찮아!!!!!”


마리나 제법이다 너. 멕시코에 가기 전부터 이런 설렘 일정을 투척하다니.


그리고 멕시코에서의 다섯 번째 날.


시차에도 슬슬 적응한 건지, 몸이 피곤한 건지 9시쯤 일어났다. 주말 아침. 마리나의 가족들은 분주해 보였다. 마리나는 보이지 않았다.


마리나네 엄마는 ‘치과의사’이다. 3달에 1번 정도 시간을 내어 와하까에서 치과 진료를 보고 계신다. 와하까는 멕시코시티에서 460km 떨어진 곳이다. 6시간 이상을 운전해야 도착하는 곳. 그 먼 거리를 직접 운전해서 간다니 대단한 의지였다. 사실 와하까는 마리나 외가의 고향이라고 한다.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갈 채비를 마치자 10시쯤이었다. 그때부터 마리나의 조카인 케빈이랑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11시쯤 되자, 어디선가 마리나가 나타났다.


“레나 준비됐어?”

“응 난 아까부터 준비됐지~”

“가자!”


와하까 원정대처럼 마리나, 마리나의 엄마 그리고 나는 짐을 들고 차에 올랐다. 날씨도 언제나처럼 너무 좋았다.


출발하고 한참을 달리던 차는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어떤 주택가 사이로 들어갔다. 도착 한 곳에서는 과일을 팔고 있었다. 마리나는 차에서 내려 바나나 한 손을 사들고 왔다. 그리고 또 차로 이동하더니 이번엔 여러 가지 큰 냄비가 있는 노점 상 앞에서 세운다. 냄비에서 끓이고 있는 것은 옥수수로 만든 음료였다. 스티로폼 잔에 담긴 따뜻한 음료는 옥수수죽을 음료의 형태에 가깝게 만든 것 같았다. 달콤한 맛이 났다. 그리고 한국의 강정처럼 곡물을 튀긴 것에 견과류를 버무려 굳힌 과자 몇 가지를 사서 차에 다시 올랐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분 뒤 우리는 와하까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노상에서 옥수수로 만든 음료를 끓여파는 가게


드문 드문 멕시코의 변두리 지역의 집, 상점들이 보이다, 말다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하늘, 낮은 산줄기 그리고 선인장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상태로 2시간 정도 더 가다가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간다. 휴게소라고 해도 우리나라 휴게소 같은 곳이 아니다. 화장실 그리고 정말 작은 상점 하나가 있었다. 그곳에 그게 있는 것도 신기했다. 주변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쉬어가는 차는 우리밖에 없었다. 10분 정도 몸을 풀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출발했다.



차 안 라디오에서는 멕시코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다시 주택, 상점 그리고 사람들이 바깥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골 마을로 진입한다. 어느새 도심에서 볼법한 상점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마리나 우리 이제 도착한 건가?”

“레나, 웰컴 투 와하까!!!”


상점가 사이의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니 작은 주차장이 나온다. 그곳에 차를 대었다.


“마리나 숙소에 먼저 가는 게 아니야?”

“응 숙소는 좀 멀리에 있어. 저녁을 먼저 먹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얼마나 멀리 있기에 그러는 거지? 지금까지 마리나의 화법상 멀다는 것은 정말 정말 멀다는 뜻이었다.

차를 주차하고는 시내로 걸어 나왔다. 몇 군데 레스토랑을 비교해보고는 한 곳을 정해 들어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따뜻한 타코와 잘 구워낸 닭다리, 그 위에는 검은콩으로 만든 소스를 얹었는데 이번에도 수프처럼 국물이 자작하게 있었다. 세련되게 맛을 살린 요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맛있었다. 우리 엄마가 멕시코에서 평생 살았으면 이런 음식을 만들어 주셨을까?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는 저녁 7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올라 숙소로 출발했다. 점점 시내에서 멀어지는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로 깊고 어두운 곳을 향해 차는 달려갔다.


어느 순간 저 멀리 반짝이는 불빛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고, 우리는 어두운 산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도로라는 것이 사라졌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약간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도착해서 갑자기 마리나가 트렁크에서 텐트를 꺼내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그만큼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오두막이 나타났다. 우리는 산 정상에 올라와 있었다.


그곳은 4인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산 중에 덩그러니 있어서 그렇지 잘 지어진 집이었고 예쁘게 단장 해 놓은 모습도 눈에 띄었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주변을 살펴보니 그 집 건너편에 별채로 보이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 별채가 바로 우리가 와하까에 있는 동안 머물 곳이었다. 마리나의 엄마와 반갑게 인사하는 오두막 집의 주인은 마실 물이 든 물병과 열쇠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제 불이 들어와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전까지는 전기가 연결되지 않아 조명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밤에는 휴대용 손전등을 이용했다고 한다. 갑자기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물은 나올까? 화장실은 있을까? 화장실이 없어도 이 정도 인구 밀도면 밖에서 해결 가능한 것인가?


침착하게 첫 번 째 질문을 했다.


"마리나, 물은? 물은 나와?"

"응. 나오지. 근데 따뜻한 물은 안 나와"

"아..."


사실 마리나의 집에서도 따뜻한 물을 쓰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어떻게 하면 너무 뜨거운 물이 나오고, 어떻게 하면 계속 차가운 물만 나왔다. 다 여기에 오기 위한 훈련 과정이었던 것인가. 이 대답을 듣고는 질문을 멈추기로 했다. 예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부족하다고 큰일 날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부족하게 생각한 것은 나뿐이었다.

그리고 샤워할 때 오는 현타는 잠시 뿐이었다.


별채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 하나 짜리 공간이었는데 그 공간도 엄청 큰 이층 침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간이침대와 발코니로 연결되는 문이 있었다. 마리나는 침대의 이층을 쓰겠냐고 물어봤다. 나는 거절하고 간이침대를 쓰겠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며칠 전 지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멕시코시티에 있었던 지진은 멕시코시티가 진원지가 아니었다. 그럼 진원지는 어디냐고?


바로 와하까였다.


여행 출발 전에 마리나에게 물었다.


"마리나. 지진 진원지가 와하까인데 우리가 굳이 거길 가는 게 좋은 생각일까?"

"음... 아무리 큰 지진이 와도 와하까가 멕시코시티보다 안전할 거야. 거긴 고층 빌딩도 없고... 특별히 무너질만한 게 없어."


"아..."


가끔 마리나는 현자 같다.


어쨌든 나는 이층 침대에서 자다가 지진이 와서 별채가 무너졌을 때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이 두려웠다. 심지어 지진이 나면 빠르게 발코니 문을 이용해서 탈출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간이침대를 택하였다.


저녁 8시쯤 됐을까. 산 중에 해는 도시의 해보다 빠르게 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같은 밤이지만 밀도가 높은 어두움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별이 잘 보였다. 하늘에 박혀 있던 그 별들을 잊을 수 없다.


다들 피곤해서 그런지 일찍 잠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알람을 새벽 5시쯤 맞춰놓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출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알람보다 나를 먼저 깨운 건 바로...



지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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