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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 Oct 03. 2021

멕시코 시골 마을에서의 아침식사

멕시코 방황기(彷徨記) 5편

크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앙. 


'하아...' 


또 지진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겪은 지진보다 약한 지진이었지만 꽤 오랜 시간 흔들림이 지속됐다.  

목재로 지어진 집이어서 그런지 소리가 많이 났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엄청난 내적 갈등을 겪었다. 


'지금 내가 나가면 마리나가 나중에 놀릴까?',  '하지만 깔려 죽으면 놀림도 못 받는 걸.'  


그때 언젠가 일본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좌우로 흔들리는 지진은 집안의 물건들만 잘 고정되어 있다면 위험하지 않을 거야. 문제는 상하로 흔들릴 때야" 


잠시 진동을 느껴보니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그 집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질 만한 것도 딱히 없었다. 저 거대한 이층 침대가 옆으로 쓰러질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흔들림이 멈추었다. 마리나의 말대로 멕시코시티보다는 와하까에서 지진을 겪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그대로 침대에 누워있다가 일출을 보러 나갔다. 

근데 이럴 수가.  커튼을 걷어 발코니 문을 열고 나가보니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역시 그랬던 것이다. 해가 빨리 지는 만큼 빨리 뜨는 법. 주변이 고요하고 새와 바람 소리만 들렸다. 멕시코의 자연은 채도를 뺀 듯한 색깔이었다. 나무도, 선인장도, 돌도, 마른 풀도. 


쓰레기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새벽이 어색했지만 혼자 조용히 아침볕을 받으며 멍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스마트 폰을 열어 보니 간밤에 한국에서 온 연락이 있었다. 멕시코의 지진 소식이 뒤늦게 뉴스로 나왔나. 다들 지진은 괜찮냐고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안부 연락이었다. 엄마는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정말 위험한 수준의 지진이 났다면 공항이 폐쇄되고 이런 연락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는 듯했다. 


마리나와 마리나의 엄마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미동 없이 자는 두 여자. 


나는 큰맘 먹고 샤워를 하기로 했다. 멕시코라고 해도 2월은 아침저녁으로 꽤나 쌀쌀하다. 그리고 샤워기의 물을 튼 순간 후회가 크게 밀려왔다. 얼음장 같은 물들이 몸 위로 쏟아졌다. 몸에 물을 적신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 볕이 드는 곳에 가서 앉아 책을 읽으며 두 여자가 깨길 기다렸다. 한참 뒤에야 일어나서는 아침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아침? 이런 산 중에 레스토랑이라도 있는 거야? 



우리는 산속의 오솔길을 걸어 내려갔다. 아마 전날 저녁 덜컹 거리는 차도 이 오솔길을 이용했던 것 같다. 유일한 길이었다. 거의 자갈밭이었는데 중간중간 사람 키보다 큰 선인장들이 있었다.  관광객처럼 선인장 사이에서 마리나의 엄마와 사진을 찍었다. 20분쯤 걸었나? 어느새 평지다. 그리고 어디선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이런 소리가 났다.


'다닥. 다닥. 다닥. 다닥.'


뒤를 돌아보고 나의 두 눈을 의심했다. 바로 마차였다! 마차라고 해도 뒤에 짐을 싣는 차였지만 분명 앞에는 말이 짐을 끌고 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 길을 걷는 사이에 말 뿐만 아니라 당나귀를 타고 지나는 마을 사람들을 포함해 요즘세상에 참 신기한 광경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좀 더 걸어가니 마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어떤 집 앞에 도착했다.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겉으로 볼 때는 말이다.  


마리나가 울타리를 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모양이었다. 반대편으로 가서 보조 문을 두드리니 한 여자분이 나온다. 아직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고 하셨다.  


다시 동네를 어슬렁 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마을이 신기했지만 그 마을 사람들도 내가 신기한 듯했다. 서로가 신기한 신기한 상황.  셋 다 너무 배가 고파 근처 구멍가게에서 타코를 튀긴 뻥튀기를 2 봉지 사들고 나눠 먹으며 30분 정도 마을을 돌아다니다 다시 아침식사를 파는 집으로 향했다.  



아까 봤던 여자분이 들어오라며 울타리를 열어주었다. 들어가 보니 집의 앞마당 같은 공간 위에는 목재로 간이 천장을 만들어, 테이블을 몇 개 두고 레스토랑처럼 운영하고 있었다. 마리나는 이 집에서는 초콜라떼 (한국어로 굳이 따지자면 핫쵸코)를 먹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커피가 너무 간절했다. 오믈렛과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는 아메리카노에 설탕이 들어간 느낌이었는데 어딘가 구수한 맛이 났고, 외관은 사약과도 같았다.  마리나의 엄마가 주문한 쵸코라떼도 궁금해서 옆에서 한 모금 얻어 마셨다. 아아아. 세상에 뭐 이런 맛이 다 있지. 



우리가 흔하게 먹는 진하고 달디단 쵸코가 아니었다. 어떤 의미로 커피에 가까운 맛이 났는데 그도 그럴 것이 카카오 원두로 만든 음료였기 때문이다. 또 쵸코라면 설탕이 잔뜩 들어간 가공된 것만 먹어보다 천연 원두의 맛을 느껴보니 세상에 모르고 사는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물렛도 로컬 살치쵼 (소시지) 이 들어가서 짭짤하고 맛있었다. 달콤한 커피와 너무 잘 어울리는 메뉴였다. 매일 이런 아침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아침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마리나는 갑자기 좀 뛰어야겠다고 마리나의 엄마와 나를 두고 앞질러 뛰어가기 시작했다. 꽤 먼 거리에 오르막 길인데 괜찮을까. 


마리나의 엄마는 영어를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와 둘만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스페인어를 써야만 했다.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아이를 키워봐서 그런지 내가 어떤 이야기를 얼마나 느리게 한다 해도 참을성 있게 다 들어주셨다. 마리나의 엄마도 아이를 바라보듯이 웃으면서 들어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대답해 주셨다.  

'와. 마리나네 엄마랑 1년 같이 살면 스페인어 많이 늘겠다.’ 생각하면서 오르막길에 접어드니 10미터 앞에 마리나가 보인다. 엄청 지쳐 보였다. 얼굴은 시뻘게져 있었다.  

그때부터 같이 걸어 올라갔고 별채에 다 다르자 마리나가 말했다. 


“지금 샤워해야 해” 


헉….. 역시 마리나는 계획이 있었다. 샤워기에서 찬물밖에 나오지 않으니 자기 몸을 오히려 뜨겁게 만드는 치밀함. 


그날은 마리나의 엄마가 치과진료 예약이 있어 어떤 마을로 가야 했다. 우리는 와하까에서 관광을 할 수 있었지만 나도 그 마을이 궁금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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