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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연 Apr 12. 2020

원고 쓰기 싫어 죽겠다

누가 나 대신 좀 써줬으면 함

나에겐 지금 내일까지 마감을 해야 하는 원고가 2개가 있다. 하나는 반드시 내일까지 내야만 하는 200자 19p짜리 원고고(주제도 너무 노잼인), 하나는 굳이 내일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내 스스로 내일까지 하자고 데드라인을 잡아놓은 원고다. 그런데 둘 다 하기 싫어 죽겠다. 귀찮아 죽겠다. 그 원고들을 처리하지 않고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내가 참 우습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브런치에 글을 쓰고싶다.




브런치를 오픈 할 때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장대한 포부가 있었다. 일 주일에 한 번 그럴듯한 글을 쓰는 것. 어른이 되고 나서는 내 스스로를 위한 글을 쓴 것이 손에 꼽을 정도여서, 여하튼 장르가 무엇이 되었든 글을 써야지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한 글자도 쓰기 전에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장렬히 실패했고, 내가 그만큼 글쓰기에 절실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했다. 그리고 굳이 그것에 스트레스 받거나 낙담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조직에서 종종 글을 쓴다. 외부 매체에 기고를 하기도 하고, 우리 매체에 어떤 이슈를 알리기 위한 짧은 글부터 A4 4P에 달하는 장문의 글까지 쓴다. 초안을 쓰고, 출력하고, 고치고, 담당 팀에 컨펌받고, 사진까지 세팅해서 송고하거나 업로드하면 그게 그렇게 질리면서 뿌듯할 수가 없다. 대개 글의 완성도와 사람들의 호의가 비례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는데, 에너지는 내 컨디션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이 일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은 항상 가지고 있는 편이다.


글은 12살때부터 썼다.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와 신경숙의 <외딴 방>을 읽고 소설가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해리 포터야 그렇다치고,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어떻게 <외딴 방>을 읽고 그렇게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문체나 분위기, 또래가 이해할 수 없는 겉멋 같은 것에 매혹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여하튼 나는 그 때부터 매일매일 8년동안 글을 썼다. 소설을 주로 썼고 종종 시를 썼다. 학교 앞에 파는 500원짜리 노트 한 권은 이틀이면 뚝딱 채울 수 있었다. 그것으로 대학을 갔다.




학부생 때는 글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나는 왜 소설가가 되려고 하는가? 나는 왜 등단을 하려고 하는가? 기성세대를 비롯한 대중에게 이해받고 싶은 내가 참 보잘것없어 보였다. 타인에게 공감을 구걸한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성공한 작가들을 보며 부러웠고, 거장의 자리에 있거나 그를 추종하면서 여자들을 대상화하고 성폭행을 하는 선배들이 역겨웠다. 애정과 열등감, 경멸과 우울이 수시로 감각을 휩쓸었다.


학교를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술 먹고 노는 것을 반복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열렬한 마음은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나는 투쟁심이 강하지 않았고, 무언가를 집요하게 욕심내고 성취하는 것에 약한 사람이었구나 싶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것은 어떻게든 계속됐다. 과제를 하거나, 에세이를 쓰거나, 비평문을 쓰거나... 에디터로 취직을 하게 됐다가 지금의 조직으로 이직을 하게 됐다. 어쨌거나 거의 16년동안 글은 계속 써온 셈이다. 실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대학교에 입학해서 휴학을 1년 하고 졸업을 하기까지 나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집착적으로 고민했다. 유년시절이 그렇게 유쾌하지 못했고 대학생으로서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던 터라 앞으로의 삶이 내게는 너무나 중요했다. 되짚어보자면,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그 시절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타인을 착취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5년의 고민은 별다른 스펙이나 경험 없이 한 줄짜리 문장으로만 남았다. 나는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약자의 노동력이나 삶을 착취하고 싶지 않고, 동물을 좋아해서 그들을 착취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사실 동물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인간이나 비인간동물이나 뭐가 다를까 싶은 생각의 지분이 더 크다. 아무튼 타인을 착취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기 보다는 그냥 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에 가깝지 않나 싶지만.


글을 쓰고-무언가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결과물을 내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고- 월급을 받고, 외고료가 들어오면 그걸로 내 고양이들을 위한 용품을 산다. (10일에 정산되어야 할 외고료는 내일 들어오겠지?) 이따금 고향집 개에게 간식을 보내기도 한다. 다른 비영리단체에 아주 쬐끔 기부를 하기도 한다. 참 평온하고 재미없는 삶이지 싶다.




아직도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요새도 종종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왜 SNS를 하는가, 등에 대해 답없는 고민을 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알고 있지만 소통, 공감, 연대, 이런 단어들이 나는 어렵다. 인간으로서 외롭고 이해 받고 싶어 하는, 내가 옳다고 타인들이 말해주길 바라는 나 스스로가 참 어렵다.


생각이 많은 건 좋지 않다. 쉽게 우울해진다. 인간의 본질은 새벽에는 눈을 떠서 몸을 움직여 곡물을 생산하거나 동물을 사냥해 포식하고, 빛이 없는 밤에는 잠드는 데 있다. 몸이 게으른 상태에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되면 쉽게 우울하고 피로해진다.


원고를 다 하고 집에 갈 땐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가야겠다. 이제는 원고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됐다. 원고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 미루고 미뤄왔던 원고다. 원고료를 받으면 팀원들에게 방석을 살 예정. 한큐에 마감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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