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그나이트 Mar 08. 2019

내 아내가 작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에 아내가 호들갑스럽게 나를 깨우며 말했다.

“여보, 대박!!  이번 달에 내 통장에 저작권료 2천 원 들어왔어. 뭔 일이지?”


“뭔 소리야.”


“옛날에 당신 노래 내가 작사한 거 1곡 있잖아. 그때 저작권 등록해서 돈이 들어오는데. 원래 한 달에 300원 정도였거든. 근데 이번 달에 2천 원이 들어왔어. 내 노래가 어디 일본 같은 나라에서 소리 소문 없이 인기가 생겼나? 갑자기 왜 이렇게 많이 들어왔지? 당신도 지난달보다 2천 원 더 들어왔겠다. 어머 대박. 이러다가 막 잘 되면 2만 원씩 들어올까?”


 딸랑 2천 원에 주책 부리는 아내가 좀 귀여워 보이긴 했다.
 

8년 전, 이그나이트 2집을 발매할 때, 아내에게 작사를 하나 맡긴 적이 있다.

곡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콘셉트를 아내와 같이 준비한 곡이기도 했고 

글솜씨가 있는 아내였기에 기대하며 작사를 맡겨본 것이었다.


그 결과, 

다시는 정말 다시는 마누라랑 같이 일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아내에게 작사를 부탁하자 아내는 난리 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출산 후 50일밖에 지나지 았았던 상황이어서 그랬지만 

무슨 작사 하나 하려고 친정에 가서 애를 맡기고 며칠을 고민하지 않나.


악보를 달라고 하지 않나, 

후렴구가 뭔지, 

파트가 뭔지도 모르지 않나!!!


그리고 막상 남이 아닌 내 아내가 써놓은 가사를 보니, 
 

이건 뭔 놈을 생각하면서 쓴 곡일까 

내가 이렇게 나쁜 놈일까 

이 여자가 왜 이렇게 외로워할까? (외로운 곡을 맡긴 주제에) 

이 여자가 지금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 슬픈 가사를 썼나, 


등등


작사가 마음에 안 들면 “내 아내가 일을 못하네” 싶어 쓴소리를 하면, 아내는 아내대로 지적질하지 말라고 당신이 글을 뭘 아냐고 험악해졌고, 


작사 내용이 마음에 들면 “이건 무슨 생각하면서 쓴 건가” 싶어서 

아마추어처럼 감정 이입되면서 화가 나는 등 


부부가 함께 일한다는 것은 공과 사의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안 좋은 상황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내는 무려 한 달 반 만에 가사를 완성했고,  그 한 달 반 동안 엄청나게 싸웠더랬다. 우리 둘은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해 다시는 같이 일을 안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물론 완성된 노래는 괜찮아서 정식으로 등록하고 발매하긴 했지만. 딱히 인기를 끈 것도 아니고, 타이틀도 아니어서 내 기억 속에 잊힌 곡이 되었다.






그 후, 아내는 매달 5백 원, 3백 원 등 몇백 원씩 들어오는 저작권료가 신기하고 좋았었나 보다.


그런데 갑자기 2천 원이 들어왔으니 너무 놀라서 


혹시 일본이나 중국에서 이그나이트 노래가 팔렸나?

나도 몇 배로 돈이 더 들어왔으니 

남편 저작권은 막 더 많이 들어오지는 않았을까 상상하면서 혼자 좋아했던 것이다.


사실 아내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했는데 내 저작권료는 그냥 평소와 비슷했다 쩝.


에효 
 

아내가 작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글솜씨도 있고 

곡 콘셉트 등 감각이나 이해력도 좋은데, 

왜? 

나불대기만 하고 정작 가사는 못쓸까?

너무 애통하다.


어느 영화에서처럼 같이 데이트하면서 작사 작곡도 하면, 저작권도 둘이 같이 받고 좋을 텐데 


하지만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사실 순간 아내의 밝은 목소리에 “다시 해볼까?”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는 다시 이불속으로 숨었다.


그래도 한 곡이라도 해본 것이 참 다행이다.


다시는 부부가 같이 일하지 않도록 경험을 하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글, 작성 : 이그나이트, 성효영

매거진의 이전글 생계가 아니라, 생활음악인 이그나이트 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