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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레스트 Aug 26. 2022

구걸

2022.08.26 매일매일 부지런히 프로젝트 - 글쓰기 par1

서희는 오늘도 힘겹게 노트북에 글을 적는다. 이제는 어떤 이야기를 팔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이미 자기 주변의 이야기는 최대한 가져다 썼다. 사기당한 삼촌의 이야기부터 전 남자 친구와의 이야기. 남자 친구의 선배 이야기까지 더 이상 쓸 내용이 없었다.


처음부터 글쓰기가 이렇게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냥 있었던 이야기를 쓰면 되었고. 이야기가 조금 재미없다 싶으면 살짝의 거짓말을 덧되면 괜찮았다. 픽션이라는 이름으로. 그래서 처음에는 노트북에 앉아 글을 쓰는 게 신명이 났다. 하지만 이는 곧 신물로 바뀌었다.


“신명이 나는 것과 신물이 나는 것은 같은 것이다. 물을 삼키다가 갑자기 사래가 들리듯이 목 구녕이 켭켭이 막히기 시작하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나도 모르게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결국에는 다시 살아가기 위한 행동임을 나는 알고 있다. 아니 모르고 있다. “


어느새 서희의 노트북에는 스스로도 뭘 썼는지 알 수 없는 글이 쓰러져 있다. 처음의 거짓말은 약간의 양념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양념이 너무 많이 들어가 버린 느낌이다. 마치 음식을 할 때 재료가 좋지 못하면 강한 양념으로 재료의 향을 숨기는 것과 같이. 이미 지쳐버리고 바닥나 버린 서희 자신의 재능을 더 큰 거짓말, 더 자극적인 소재로 덮어버리고 있었다.


“지쳤다는 것, 무언가를 써내려 가기 위해서 적는다는 것은 체력을 갈아먹는 일이다. 그것도 매번 새로운 것을 갈구한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그러다 결국에는 내가 전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그냥 글자에 빠져서 허우적 되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너무 많은 양념과 과도한 재료는 음식을 결국 잡탕으로 만들어 버린다. 지금 서희 앞에 있는 글들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


“소리가 들리고 결국 내가 쓰고 있는 소리가 뭔 소리인지 나 스스로도 모르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글자의 행렬에 홀려서 또다시 컴퓨터에 앉아 있는 내가 보인다. 이름도 없이 A, B라고 불리는 존재들과 어느새 대화를 하듯 말을 지어내는 내가 마주 본다. “


어떤 거장은 자기와의 작품과 대화를 나눈다고도 한다. 그런 점에서는 서희는 또 다른 의미에서 자기의 작품. 아니 글과 뭔가 통하려고 한다. 알 수 없는 문자와 문장이 어떤 계시를 내려주길.


“처음에는 정말 신명이 났지만, 즐거움은 결국 빚이 되는 것처럼 쌓여있던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것에 불과했다. 한 없이 퍼주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올 것 같은 이야기도 결국에는 다 말라버린 우물처럼, 마지막 한 방울에는 쓰디 씬 신물처럼 씁쓸함의 이야기만 뱉어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한 방울을 포기하지 못해 오늘도 마지막까지 써 내려갈 이야기를 구걸한다. “


서희는 결국 자기 글 앞에서 대화가 아닌 구걸을 한다. 멋대로 써버린 글이 다른 사람 눈에는 멋지게 보이는 글로 둔갑하길… 하지만 이 또한 가능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부모가 버린 자식은 다시금 부모를 찾지 않듯, 자기가 쓴 글을 버린 작가는 글이 담긴 의미를 죽여버리고 만다는 것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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