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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고래 Mar 01. 2021

원해서 간 팀을 1년 만에 나온 이유

성장 한계선에 대한 고민, 그리고 커리어 피봇팅

1월 1일 자로 새로운 사업부, 새로운 팀으로 이동했다. 작년 1월 1일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으니 1년 만에 팀을 바꾼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 떠나온 팀은 내가 몇 년 동안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글로벌 업무를 하는 팀이었다. 내가 스스로 원해서 간 팀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불과 1년 만에 나온 것이다.

 시작점은 조직문화였다. 내가 떠나온 A사업부는 재미있게도 회사생활 동안 내가 속했던 조직 중에 가장 평균 연차/평균 연령이 낮은 곳이었다. 사람들도 대체적으로 좋아서, 협력적이고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들이 많았고 텃세 같은 것도 별달리 느껴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리자 레벨에서는 이제껏 내가 겪어본 조직 중에 가장 경직되어 있었다. 비합리적인 의사결정과 업무 하달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페이퍼 워크와 눈치보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보상 없는 야근도 비일비재했다. 몇 년간 겪어보지 못했던 과거로 회귀한 조직문화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이것이 사업부를 떠나게 한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순환이 빠른 이 회사의 특성상 참고 버티면 언젠가 사람도 바뀌고 조직도 바뀐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내가 이것을 참고 버틸 의미가 있는가 없는가였다.



 초기에 A사업부에 합류하면서 내가 받은 미션은, 내가 가진 경험 - ①이커머스/신규 서비스 기획 등 소비재 디지털 플랫폼 활용 경험, ②수익성 관리 업무 경험 - 이 2가지 경험을 활용해서 새로운 업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1년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유의미한 결과물도 도출해냈다. 하지만 업무를 하면 할수록, 여기서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에 대한 의문점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A사업부는 글로벌 유통사들을 상대하는 것이 주된 사업구조였다. 유통사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다 보니 회사 간 커뮤니케이션을 얼마나 원활하게 하는지가 핵심 역량이었고, 때문에 해외에서 공부를 해서 이미 영업/중국어를 자연스럽게 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또 수출 기반의 B2B 비즈니스였기 때문에 최종 고객에 대한 이해보다는 가격관리 측면이 더 중요했고, 사업모델도 수출을 기반으로 한 고정된 구조였다. 마지막으로 모든 Key는 유통사가 쥐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디지털 Tool을 활용하는 등의 자유도는 낮은 편이었다. 반면 나의 경우 비즈니스 영어와 생활 중국어 정도는 구사하지만 준원어민급은 아니었고, B2B보다는 최종 고객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한 B2C 채널 경험이 더 많았다. 또한 다양한 사업모델을 분석하고 시도해본 경험, 다양한 디지털 Tool을 활용해본 경험이 나의 경쟁력이었다. 요약해보면 내가 가진 차별적인 경험이나 장점들이 이 사업부의 Main Biz 와는 크게 관련성이 없었고, 오히려 내가 다른 구성원들보다 약한 부분(외국어 등)을 끌어올리는 것이 더 중요한 상황이었다. 

 당초 외국어를 써야만 하는 환경에서 빠르게 실력을 올려보겠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해보면 해볼 만한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장점들이 곧 큰 의미가 없어질 것이고, 이를 계속 발전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자 진지하게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니어 레벨의 1~3년 차도 아닌 몇 년 후 10년 차를 향해 가고 있는 시점에서, 기존에 쌓아온 장점들을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역량개발을 하는 것이 맞는지? 그러다가 정말 애매한 커리어 셋을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닌지? 많은 고민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원해서 온 팀을 1년 만에 또 바꾸는 것도 Risk가 컸다. 첫째로 회사가 학원도 아니고 옮기고 싶다고 마음대로 옮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실제 이동은 못하고 배신자로 낙인만 찍힌 채 더 힘든 회사생활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둘째로 바꾸고 싶다고 하다가 이상한 곳으로 이동하면 오히려 커리어가 더 꼬일 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잦은 이동으로 인해 회사 내에서 부적응자 타이틀이 생기지는 않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걱정 많던 시점에, 우연찮게 유 퀴즈에서 두 끼 떡볶이 대표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그분은 원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고연봉을 받고 있었는데, 딱히 그 일에는 뜻이 없어서 주어진 일만 하다 보니 별명이 '열정 없는 김대리'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회사를 퇴사하고 떡볶이 창업을 준비하게 되고, 어묵 회사 사장님 앞에서 PT를 하게 될 일이 생겼는데 발표를 마치고 들은 피드백이 '자네 진짜 열정 넘치는 친구구먼.'이었다고 한다. 분명 같은 사람인데, 어떤 일을 하는지에 따라서 받은 평가가 180도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이 방송을 보고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됐다.

 과거 다른 업무를 할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런저런 레퍼런스를 찾아보고, 개인 시간을 들여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업무에 적용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A사업부에서 오고 나서는 이런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야근을 많이 해서, 또는 경직된 조직문화에 지쳐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비즈니스에 진짜 뜻이 있나? 앞으로 이 영역에서 실력자가 되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할 의지와 열정이 있나?

질문을 던졌을 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다른 답을 할 수 있는 업무영역으로 이동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지 출처 :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지금 나는 우여곡절 끝에 사업부 이동을 하여 이커머스 전략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아직 2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고 어느 곳이나 그렇듯 나름대로의 단점들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지금의 업무와 생활 모두에 만족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앞으로 이 업무를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이를 위해 투입하는 업무 내/외적인 시간이 모두 아깝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결국 이런 의지와 노력이 나의 성장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해서 결정했던 것을 1년 만에 뒤집는 것에 현실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때로는 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선택을 해서 1년이라는 시간을 돌아왔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1년이 있었기에 지금 어떤 것이 더 나에게 맞는 길인지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또 더 이상 내가 못해본 업무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지 않았기에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에 참여해본 적도 없으면서 괜스레 스타트업이 가진 경영방식을 엿보고는 하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피봇팅'이었다. 사업모델을 바꾸는 피봇팅이 잘 되면 대박이 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는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고,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내면 옳은 결과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이번 커리어 피봇팅도 옳은 결정이 될 수 있도록, 반드시 좋은 결과로 연결해보려고 한다.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모임, #쓰담의 멤버로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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