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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붙잡는 마음의 무게

취미는 장비빨?

by 세잇

시작이라는 셔터

긴 명절을 앞두고 시작한 집안 정리. 그 무심한 노동 속에서 잊고 있던 시간을 만났다. 깊숙한 다용도실 구석, 혹은 옷장 맨 위 칸. 먼지가 소복이 앉은 낡은 가방을 열자 묵직한 금속 바디의 유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20년도 넘은 DSLR과 똑딱이 카메라, 그리고 그 옆을 지키는 렌즈와 현상도 하지 못한 필름통들.



내게 사진은 늘 무게로 남아있다. 부모님의 가내수공업으로 인해 살림살이라고는 공구류와 기계장치로 한가득이었던 집안의 한켠에 유물처럼 잠들어 있던 낡은 수동카메라. 묵직한 금속 바디와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듯한 필름 감는 소리. 그것은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단순한 질량이 아니라, 한 세대가 고스란히 담긴 시간의 무게였다. 그 유물을 내 손으로 꺼내든 건 지금의 반려인이 어린 시절 사진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는데, 흘려보낸 과거와 함께할 미래를 채워주겠다는 낭만적인 오만함과 그 순수한 동기가 이 길고 험난한 취미의 첫 셔터였다.



그땐 모든 것이 수동이었지. 노출계의 바늘을 가운데에 맞추기 위해 조리개 링을 돌리고, 초점을 재느라 스플릿 스크린을 보며 영점을 잡는 행위. 그 모든 아날로그적인 노동이 한 장의 사진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줬다. 카메라는 수동에서 자동으로, 다시 DSLR이라는 디지털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편리함은 얻었지만 그 무게와 노동이 주는 쾌감은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장비의 신전

취미는 장비빨이라던가. 카메라 수집은 멈추지 않는 탐욕의 여정이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의 수동 카메라에서 시작된 여정은 50년 된 폴라로이드를 켤 때 펼쳐야만 했던 자바라의 마법을 거쳐, 이안반사식 핫셀블라드의 묵직한 중형 포맷에까지 닿았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똑딱이 카메라는 일상의 가벼운 순간을, 토이 카메라는 예상치 못한 색감의 즐거움을 안겨주었고.



단순히 기계를 모으는 것을 넘어, 네거티브 필름과 흑백 폴라로이드 필름을 찾아 을지로 골목을 배회하며 20대를 보냈다. 멸종된 필름을 얻었을 때의 희열. 인화와 현상에 드는 비용을 아끼려 저렴한 현상소를 찾아다니던 집착. 그 끝은 결국 환등기를 들이기까지 하는데. 사진의 끝은 환등기라던가. 내가 찍은 사진을 어둠 속에서 거대한 빛으로 쏘아 올리는 행위. 그것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나만의 작은 장비의 신전을 짓는 과정이지 않았나 싶다.




깨달음의 순간들

장비에 흠뻑 빠져 살던 만큼 사진 기술에도 뼈아픈 시간을 들이지 않았나 싶다. 단렌즈와 줌렌즈 사이를 오가며 조리개 수치가 빛과 심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고 화각과 피사체, 구도를 맞춰나가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사진 기술을 배운 시간은 흡사 글쓰기의 '배아픔'과 같지 않았을까.


친구들과 출사를 나갔다가 카메라 기종과 렌즈의 성능을 두고 아귀다툼하던 술자리는 이제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진심이었지. 용돈을 모아 렌즈를 구매하던 설렘, 그리고 아이의 탄생을 핑계로 '이건 육아용 아이템이야'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투자하던 기억. 결국 가정에 보탬이 되고자 무거운 장비들을 하나둘 방출했을 때의 공허함은 취미를 넘어선 추억의 방출이지 않았을까. 사진은 찍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찍고 왜 찍는지를 깨닫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장비를 정리하며 비로소 깨닫게 되었지.


이 아이는 어느덧 자라, 혼나면 방문을 꽝 닫는 청소년이 됩니다...


요즘의 사진

장비로 무거웠던 가방, 필름의 질감, 현상소의 빨간 불빛은 이제 모두 과거의 유물이 되지 않았을까. 요즘은 모두 스마트폰 하나로 사진을 찍으니까. 손끝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색감이 보정되며,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재현된 셔터음과 함께 클라우드에 백업되어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디지털 기억이 된다.


문득 내 품을 떠난 수동 카메라와 핫셀블라드들의 무게가 떠오른다. 그 무게는 불편했지만 그만큼 사진 한 장의 소중함이 담겨있었지. 지금의 사진은 너무 가볍지 않나. 찍고, 보고, 곧바로 잊으니까. 하지만 그 가벼움 속에서도 여전히 셔터를 누른다. 반려인의 어린 시절을 채워주려 시작했던 사진이 이제는 아이의 매 순간을 기록하는 일이 되었으니까.


결국 기록하려는 본질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나 싶다. 묵직한 장비들을 어깨에 이고 지던 무게감은 사라졌지만, 사랑하는 이들의 시간을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의 무게는 여전히 남아있다. 기술의 진화는 그 무게를 노동에서 간편함으로 바꾸었을 뿐이겠지. 먼지 쌓인 카메라 가방을 다시 닫으며, 나는 스마트폰을 펼치며 다시 한번 확인한다.


사진의 본질은 결국 기계나 기술이 아니라, 기억을 붙잡아두려는 간절한 마음의 무게라는 것을.

그리고 그 무게가 나를 여전히 셔터 앞에 서게 만드는 이유라는 것을.


아아...싸이월드 시절의 감성 ㅋ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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