썼다 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
스스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 재주가 없어서.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그렇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고 첫 문장을 고민하는 시간이 실제로 글을 쓰는 시간보다 길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글쓰기라는 것이 재주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의 문제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글을 쓰며 살아간다. 메신저로 주고받는 대화, 업무용 이메일, 간단한 메모까지.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글쓰기와 진짜 글쓰기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지 않나. 마치 요리를 할 줄 안다고 해서 셰프가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글쓰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의 뿌리를 따라가 보니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닿는다. 누가 인정할지는 모르겠으나, 나름의 꼼꼼한 성격 탓에 다름과 틀림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고쳐드려야 하고, 맞춤법 하나, 띄어쓰기 하나도 잘못 쓴 것이 없나 찾아보고 살피는 이 성격이 때로는 글쓰기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완벽하지 않으면 세상에 내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를 주저앉힌 것은 아닐는지.
직장인의 글쓰기
회사의 일이라는 것이 그렇듯, 말로는 줄줄줄 흘러나올 이야기를 보고서엔 단 한 줄로, 이메일엔 존칭과 예의를 담아 핵심만 전한다. 이것이 내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글쓰기다. 압축의 기술이라고 해야 할까. 복잡한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감정은 빼고 사실만, 개인적 견해는 최소화하고 객관적 데이터를 중심으로.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주간 리포트를 작성할 때면 한 주 동안 겪었던 모든 시행착오와 고민, 팀원들과의 소통 과정이 '이슈 없음, 진행 중'으로 압축된다. 까다로운 협상 과정은 '요구사항 조율완료'로, 야근을 밑바탕에 깔고 해결한 긴급한 장애는 '백업복구를 통한 정상화'라는 말로 정리된다.
이런 글쓰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감정을 드러내고,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풀어내는 글쓰기가 낯설어진다. 마치 계속 속도를 내며 달리던 사람이 갑자기 천천히 걸으려고 할 때 느끼는 어색함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의 글쓰기가 전혀 의미 없다 생각지는 않는다. 핵심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능력, 피보고자를 고려한 보고서의 스토리, 명확하고 간결한 문장 구성 등은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 너머에 더 넓은 글쓰기의 세계가 있다는 것에 새로운 갈증만 더해 간다.
독서와 글쓰기 사이
나에게 책은 어찌 보면 있어빌리티의 모멘텀이다. 자기계발과 성찰과 타인과의 차이를 위한 고풍스러운 취미라 생각하겠지만. 솔직히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도 명확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지. 물론 재미있긴 하지만 영상에 길들여지지 않기 위한 현재의 발악일 수 있고.
유튜브와 넷플릭스, 인스타그램으로 이어지는 영상 콘텐츠의 바다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 일종의 저항이다.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콘텐츠에 맞서 천천히 읽고 곱씹고 생각하는 시간을 확보하려는 노력. 하지만 이런 노력이 때로는 허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로 깊이 있게 읽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읽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게 읽는 건 쌓여가는데 기억나는 건 없고, 또 그러다 작가들이 가진 생각의 깊이가 부럽고. 이것이 독서를 하면서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이다. 배가 아프다. 책을 덮는 순간에는 분명 뭔가 얻은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그 감동도 깨달음도 희미해진다. 마치 꿈에서 깬 후 꿈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더욱 부러운 것은 작가들의 사유 과정이다. 일상의 소소한 경험에서 보편적 진리를 끌어내는 능력, 개인적인 이야기를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로 변화시키는 재능. 같은 하루를 살아도 그들의 눈에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눈에 담는다. 같은 경험일지라도 그들의 마음에는 내가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남는다. 또 배가 아프다. 나는 할 수 있을까. 긴 글을 줄이는 데에만 능숙한 내가, 나의 생각을 텍스트로 옮길 수 있을까. 그 옮긴 것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질문들만 선명해진다.
글쓰기라는 지겨운 시간
그래서 나의 글쓰기는 배아픔이다. 종종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겠다고 메모는 해두지만 메모는 그저 메모일 뿐. 스마트폰 메모장에 저장된 수많은 한 줄짜리 문장들, 우연으로 기록될 대화의 파편들, 지하철에서 마주친 풍경. 이것들이 글이 될 수 있을까.
실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 더욱 답답해진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지겨움. 문장을 쓰고 지우고, 벼르고 걸렀다 다시 쓰고 또 지우는 버거움.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처음에 쓰려했던 내용조차 잊는다. 머릿속에서는 분명 괜찮은 글이었는데. 나중엔 유치하고 뻔한 이야기만 남는다.
밑줄 그은 문장을 펼치며 어떻게 배치하고 어디에 내 삶을 집어넣고, 누군가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나는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풀어내보는 지겨운 시간이다. 글의 구조를 짜는 것부터가 난제다.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떤 순서로 풀어나가야 할까.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맺어야 할까.
쓰다 보면 좋아진다는데, 점점 어렵기만 하다. 글을 쓰면 쓸수록 좋은 글과 나쁜 글의 차이가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내가 쓰는 글의 한계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무지했을 때는 무서울 것이 없었는데, 조금씩 알아갈수록 두려워진다. 결국 잘 안 써진다.
하지만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조차 글쓰기의 일부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쉽게 써지지 않는다고 해서 글쓰기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고민하고 망설이고 수정하는 과정이 조금씩 나를 어딘가로 나아가게 만드는 걸 테니까.
도전과 좌절
그러다 브런치스토리라는 것을 시작했지. 작가 신청을 받고 심사하는 시스템. 최소한의 허들을 가졌다고 생각했으니까. 쉽게 생각했다. 평소에 독서도 하고 나름의 생각도 있으니 몇 편의 글을 잘 풀어두면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첫 번째 신청을 위해 정성스럽게 쓴 글을 안다.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한 서평, 일상에서 느낀 소소한 깨달음, 일상의 사유를 정리했지. 결과는 뭐. 명확한 이유도 알 수 없는 차가운 거절.
두 번째 도전도 마찬가지. 다른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어보고, 어떤 스타일의 글이 선호되는지 분석해 보고, 나만의 색깔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첫 번째보다 더 신중하게 준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또 다른 탈락. 한 번, 두 번. 탈락이 쌓여 마음을 접었지. 통보를 받을 때마다 느꼈던 그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쓴 글이 전혀 가치가 없다는 판정을 받는 기분. 글쓰기에 대한 소박한 꿈이 내려앉는 기분.
이유를 외부에서 찾으려고 했다. 심사 기준이 불분명하다거나, 이미 유명한 사람들만 선발한다거나, 특정한 스타일의 글만 선호한다거나.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문제는 내 글에 있었다.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이 부족했고 읽는 사람을 끝까지 붙잡아둘 매력이 없었다.
재도전, 변화
3년이 지나 2025년. 다시 도전했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하지 않았나 싶다.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크고 작은 경험이 쌓였지.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달까.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나 자신과 솔직하게 마주하는 글쓰기로.
글을 올릴 수 있게 되었고, 하나 둘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책과 내 일상을 엮었고, 좋아하는 문장을 골랐고, 취향으로 굳어진 작가를 글로 살폈다. 완벽한 글을 쓰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 내려갔지.
글을 쓰는 과정도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을까. 재미있어하는 것, 궁금해하는 것, 감동받은 것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그래서인지 댓글을 통해 공감을 표현하는 독자들, 내 글을 읽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사람들. 글을 통해 연결되는 경험이 새롭다. 혼자만의 글쓰기가 아니라 소통하는 글쓰기가 되어가는 중이겠지.
선한 영향력
그로 인해 날 더 배 아프게 만드는 작가분들을 온라인으로 만난다. 같은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와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예리한 관찰력을 가진 사람들, 더 깊은 사유를 하는 사람들, 더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사람들.
내 글이 너무 얕고 뻔해 보여 위축되기도 했지. 하지만 이런 만남이 오히려 자극이 되고 동기가 됐다. 좋은 글을 읽으며 내 글쓰기의 목표점이 높아지고, 다양한 스타일의 글을 접하며 나만의 색깔을 찾아간다.
어느새 스토리 크리에이터가 되었고,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서평엔 저자의 라이킷이 달린다. 이런 작은 성취들이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됐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고 있다는 확신,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는 느낌.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위로와 격려, 다름을 인정하고 사유를 확장하며, 온기를 주고받아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온라인의 사소한 글이지만 끈끈한 연대로 이어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글쓰기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관계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생각을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니까. 때로는 댓글 한 줄이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글이 내 삶에 새로운 관점이 된다.
글쓰기를 통해 배운 것들
이제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확신은 없다. 여전히 첫 문장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여전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니까. 여전히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부러워하고 내 글의 한계가 보이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지 않을까. 완벽한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 괜찮지 않을까. 독자의 반응을 걱정하기보다는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적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글쓰기는 결국 나 자신과의 대화이겠지.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더 명확하게 알게 된다.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문장으로 정리되면서 하나의 의미 있는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리고 글쓰기는 타인과의 소통임을 배운다.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고, 내 생각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연결감이 글쓰기를 계속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메모는 그저 메모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메모들이 모여서 하나의 글이 되고, 그 글들이 모여서 나만의 목소리를 만들어간다. 글쓰기라는 배아픔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그 아픔조차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완벽하지 않겠지.
알아, 서툴 거야.
그럼에도 나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고
다른 작가분들과 더 깊이 소통하고
이 세상을 더 의미 있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야.
그렇게 믿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