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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 천선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라 해도

by 세잇
"내 목소리 들려?"


이 짧은 물음은 세상의 끝에서 던져진 가장 절박한 기도이자 무너지는 세계를 지탱하는 유일한 기둥이 된다. 종말은 거창한 굉음과 함께 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가 더 이상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 나를 향해 웃어주던 눈동자가 텅 빈 동공으로 변해버릴 때, 그리하여 너와 나 사이에 쌓아 올린 시간의 지층이 단숨에 무너져 내릴 때, 비로소 세상은 멸망한다.


천선란 작가의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는 우리가 흔히 아는 좀비 아포칼립스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피와 살이 튀는 생존 투쟁 대신 감염되어 가는 연인의 손을 놓지 못하는 이들의 떨리는 호흡에 귀를 기울인다. 작가는 데뷔 이래 줄곧 무너진 다리 위에 서 있는 존재들, 궤도에서 이탈한 자들, 그리고 인간의 경계 밖으로 밀려난 존재들을 향해 끈질긴 구원의 서사를 써 내려왔다. 그녀에게 SF란 차가운 기술의 미래가 아니라 현실보다 더 점성 높은 슬픔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이번 소설에서 그녀는 좀비라는 가장 비극적인 은유를 통해 역설적이게도 가장 완전한 사랑의 형태를 질문한다.




모든 종말의 순간에도 인물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뛰어. 서로를 살리기 위해. 죽어가는 순간에도 애틋하게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사랑을 속삭여. 슬프지만 아름답고 극적인 이별을 맞이할 수 있어. 하지만 좀비는 아니거든. 사랑하는 사람을 잊고,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총을 쏴야 해.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시체가 되어버린 처참한 몰골을 봐야만 해. 이게 가장 끔찍한 종말이야.


작가는 묻는다. 왜 좀비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가장 끔찍한 종말인가. 그것은 죽음 그 자체의 공포 때문이 아니다. 나의 연인, 나의 가족, 나의 친구였던 존재가 나를 식육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의 비참함, 그리고 내 손으로 그 사랑하는 얼굴을 파괴해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잔혹한 딜레마 때문이다. 기억의 소거는 곧 관계의 죽음이며 관계의 죽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사라지는 종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인물들은 도망치지 않는다. 우주로 탈출할 기회가 있음에도, 혹은 안전한 쉘터가 저 멀리 있음에도 그들은 감염되었거나 감염되어 가는 사랑하는 이의 곁을 지킨다. 합리적으로 판단하자면 그들의 선택은 어리석다. '타일러'처럼 명료하고 효율적인 화법을 가진 리더의 눈에는 그저 자멸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단호하게 말한다. '진솔함과 명료함은 리더가 되지만, 무례함과 매정함은 폭군이 된다'고.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타인의 고통을 소거해 버리는 태도야말로 진짜 재난이라고.


"태어난 게 벌이 될 수는 없어. 살아 있는 게 죄인 사람은 없어. 오해하지 마. 가끔 벌처럼 느껴질 땐, 등을 봐. 그 사람의. 노윤이의. 한참 동안 바라보면 햇살에 반짝이는 털들이 보여. 특히 뒷덜미에. 숨을 쉴 때마다 그것들이 움직여. 광대에도 털이 나 있어. 반짝여. 어깨가 미세하게 위로, 아래로, 또 위로, 다시 아래로… 숨을 쉴 때마다 바뀌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어서 더 편하고 때로는 슬퍼. 얇은 옷에 앙상하게 튀어나온 척추가 보여. 오돌토돌. 가녀리지만 단단함이 느껴져. 뼈로 이루어진 몸. 당장 죽을 것 같고, 가끔은 이미 죽은 것 같은데,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몸에도 이토록 단단한 뼈가 있구나. 무너지지 않겠구나. 나약하지 않구나. 살아 있구나. 살아 있는 걸 마음에서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는데 미리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다는 것만 생각해야지.”


이 문장을 읽으며 한동안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살아있는 존재를 마음속에서 미리 죽이는가. 가능성이 없다고, 희망이 없다고, 혹은 나와 다르다고 선을 그으며 타인을 이미 끝난 존재로 치부해 버리지는 않았던가. 소설 속 인물 '은미'가 장애를 가진 딸 '노윤'을 바라보며 되뇌는 이 다짐은, 좀비가 창궐한 세상에서 인간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비록 겉모습이 변하고, 호흡이 거칠어지고, 이성이 사라진다 해도, 내 앞에 있는 당신이 '살아있다'는 그 감각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천선란이 말하는 구원이다.


세상은 자꾸만 우리에게 매정해지라고 가르친다. 상처 입은 나무는 베어내고, 썩은 과일은 도려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는 밑동이 휘어진 나무는 휘어진 채로, 흉터가 있는 나무는 흉터를 품은 채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밑동이 휘어진 나무는 그대로 휘어진 채 자란다. 기둥에 파인 흉터는 회복되지 않고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흉터 위에 벽을 세운다. 그건 새살이 돋아 상처가 아물어 사라지는 회복과는 다르다. 그래서 상처 입은 나무를 자르면 나이테에 흉터 자국이 혹처럼 남아 있다. 어느 시절에 받은 상처인지 보인다. 상처를 평생 품고 산다. 아물지 않은 채로.


그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기에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알아볼 수 있다. 소설 속 옥주와 묵호가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았듯, 상처는 부끄러운 낙인이 아니라 서로를 끌어안게 만드는 자력이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작가가 숨에 부여한 의미였다. 언어가 사라진 자리, 이성이 마비된 자리에서 최후까지 남는 것은 숨이다.


엄마는 이제 숨으로 우리랑 대화할 거야. 그러니 잘 듣고, 온몸으로 기억해 둬. 아가가 가장 가까이서 들었던, 한때 너의 숨이기도 했던 숨의 말을 잘 들어야 해.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숨에 모든 말이 새겨져 있으니까. 어렵지 않아. 집중의 문제지. 긴장할 때 숨은 빨라지고, 편안할 때 숨은 느려지고, 두려울 때 숨은 딱딱해지고, 슬플 때 숨은 축축해진단다. 화가 날 때 숨은 잘게 쪼개지고, 답답할 때 숨은 눌어붙는다. 욕망할 때 숨은 뜨거워지고 낙담할 때 숨은 미지근해진다. 사랑을 느낄 때 숨은 찬란해지고 그리움을 느낄 때 숨은 잠시 멈춘단다. 그리고 이런 숨은 코나 입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빠는 엄마의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어깨와 등에서도 숨을 느낀단다. 특히 엄마처럼 숨으로 소통하는 인간들은 더 잘 느낄 수 있어. 엄마 품에 안겨봐.


좀비가 되어가는 아내의 숨소리를 기억하려는 남편, 변해버린 연인의 곁에서 그 낯선 호흡마저 사랑하려는 이들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들로 사랑을 정의하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그저 곁에 머무르며 상대의 숨결을 나누는 일인지도 모른다. 바이러스가 뇌를 파먹어 기억을 지운다 해도, 맞잡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맥박과 체온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좀비가 되어갈 예정이거나 이미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존재들 일지 모른다. 현대 사회라는 거대한 재난 속에서 우리는 타인에 대한 감각을 닫고, 각자의 쉘터로 숨어들기에 바쁘다. '내 목소리 들려?'라고 외치는 누군가의 절박한 신호를 소음으로 치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소설의 끝자락에서, 인류가 떠나버린 지구에 남은 존재들을 통해 서늘한 선언을 한다.


사람들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지. 장풍이가 바다로 돌아갔듯이, 결국에는. 하지만 나는 복수를 아는 인간이다.
그러니 돌아오지 마십시오, 그대들.
당신들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이제 이 행성에는 우리뿐입니다.


이것은 버려진 자들의 독백이 아니다. 이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남기로 한 자들'의 승전보이자 효율과 생존 논리만을 쫓아 떠나버린 자들을 향한 우아한 복수다. 그들은 폐허가 된 행성에서, 괴물을 끌어안고, 기꺼이 서로의 곁을 지키며 그들만의 천국을 완성했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매일매일 무너지는 일상 속에서, 나를 구원하는 것은 거창한 시스템이나 영웅이 아니다. 오늘 하루 힘들었지라며 건네는 투박한 위로, 묵묵히 내 옆자리를 지켜주는 사람의 온기, 그리고 나의 보잘것없음조차 끌어안아 주는 누군가의 시선이다. 효율과 생존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끝내 사랑하는 이의 곁을 떠나지 않고 숨의 언어를 나누려는 이들만이 멸망 이후의 행성에서 자신들만의 천국을 짓는다.




천선란의 소설은 말한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라 해도

당신이 있다면 그곳은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니라고.


그러니 두려워 말고

혐오하지 말고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고.


괴물이 되어버린 세상일지라도

우리가 서로의 숨소리를 기억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인간일 수 있다고.


오늘 밤, 당신 곁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를 바란다.

그 규칙적이고 따스한 리듬 속에

우주보다 넓은 세계가 담겨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당신을 살게 하는 유일한 구원이며

영원히 멈추지 않을 우리 삶의 가장 오래된 문장임을 알아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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