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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최태성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by 세잇

과거가 우리에게 건네는 삶의 해답

언제부터인가 역사는 중요하지 않은 학문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당장 써먹을 곳도 없는 옛날이야기를 왜 알아야 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역사는 늘 변명하듯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야 했죠. 하지만 최태성 선생의 『역사의 쓸모』를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역사는 변명할 필요가 없었어요. 오히려 우리가 역사를 외면하며 놓쳐온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죠.


다들 잘 아시겠지만, 역사 강사이신 최태성 선생님은 30여 년간 역사를 가르치며 700만 명의 '랜선 제자'들과 만나온 대한민국 대표 역사 커뮤니케이터입니다. 그런 그가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역사를 공부해서 어디에 쓰느냐'는 회의적 시선에 대해 '삶이라는 문제에 역사보다 완벽한 해설서는 없다'라고 당당히 답하는 거죠. 저자는 '희미한 불빛에 의존해 운전할 때면 잘 가고 있는지, 주변은 안전한 지를 확인하기 위해 백미러를 살핍니다. 그 어느 때보다 삶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각자의 인생을 운전해 나가는 우리에게는 삶의 주변을 살펴주는 역사라는 백미러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미러가 아니라 룸미러이긴 하지만요 ㅎㅎ) 늘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는, 가끔 뒤를 돌아봐야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일상 속에 스며든 역사의 흔적들

서울 종로의 피맛골이라는 골목 이름에서도 역사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양반들이 타는 말을 피해서 다니는 길이라 피맛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니, 그 좁은 골목길 하나에도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거죠. 안성맞춤이 안성의 맞춤유기처럼 품질 좋은 물건을 뜻한다는 것도, 방납업자들이 사또에게 주던 사례비를 '인정'이라고 불렀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역사가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일상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 지나다니는 길에도 오랜 시간이 쌓여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일상이 훨씬 풍성해집니다. 저자가 계속 강조하는 것처럼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입니다. 단순히 연도와 사건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과 선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들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 결과는 어땠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통찰을 얻는 거예요. 역사를 통해 우리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얻는 지혜가 바로 역사의 진정한 쓸모가 아닐까 싶습니다. 염장을 지른다는 표현이 장보고를 배신한 염장의 이야기에서 나왔다는 것처럼, 우리가 지금 쓰는 말들 속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선택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득권을 내려놓은 사람들의 꿈과 현재적 의미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같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모두 상류층 집안의 엘리트였고, 신분제의 혜택을 가장 잘 누린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신정변으로 그런 특권을 없애고자 했으니까요.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했던 겁니다. 양반과 상인의 차별 없이 다 같은 사람으로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꿈이었죠. 이 대목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면서도, 역사 속의 인물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경주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농사를 지으러 나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황룡사 9층 목탑이길 바란 것이 선덕여왕의 깊은 뜻이었다고 합니다. 신라인들의 마음을 모으는 것, 우리도 강해질 수 있다는 비전을 신라인 모두와 공유하려는 것이었죠. 선덕여왕의 이 통찰이 특별한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높은 탑을 세운다고 해서 저절로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건 아닐 겁니다. 그 탑이 상징하는 바, 즉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전을 공유할 때 비로소 진정한 리더십이 발휘될 테니까요.


내가 가진 작은 특권이라도 공동체를 위해 내려놓을 용기가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이 발휘되고 있는지, 과연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지 돌아보게 됩니다.



갈등과 열정, 그리고 성찰의 지혜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 중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갈등은 당연한 것이고 뜨거움도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뜨거움이 혹시 빗나간 열정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요즘처럼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에 이 말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갈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겠죠. 열정은 좋지만 그 열정이 파괴적이 아닌 건설적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는 지혜일 겁니다.


3·1 운동이 대한'제'국을 대한'민'국으로, '백성'을 '시민'으로 바꾼 계기였다는 해석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독립운동이었다는 것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죠.


역사는 이렇듯 과거의 일이면서 동시에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지금 벌이고 있는 모든 갈등과 논쟁도 언젠가는 역사가 될 텐데, 그때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생각해 본다면 좀 더 신중해져야 할 겁니다. 뜨거운 열정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열정이 옳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냉정함도 필요하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



정도전이 보여준 문제의식과 개혁정신

정도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정말 깊은 울림을 주었는데요. 왕과 귀족만이 사람 취급을 받던 시대에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주의를 실현하려 했던 정도전. 유배당하고 유랑하면서 만난 비뚤어진 세상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런 세상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의 마음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사회와 자신에 대한 인식과 비판의 불을 항상 환하게 밝혀놓았으면 합니다'라고 당부합니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되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자세, 이것이야말로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도전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애써야 합니다. 정도전이 작은 것 하나까지 치밀하게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도 단순히 비판하는 데 그치지 말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겠죠.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아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걸 정도전의 삶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의 개혁정신은 지금도 우리가 배워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 생각합니다.



삶의 완벽한 해설서로서의 역사

최태성 선생은 '삶이라는 문제에 대한 가장 완벽한 해설서는 역사'라고 이야기합니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선택과 그 결과가 담긴 역사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인생을 살다 보면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럴 때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큰 위로와 지혜를 주는데,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고 비슷한 고민과 갈등을 겪었기에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결과를 맞았는지 살피다 보면 우리 앞에 놓인 길이 조금 더 선명해지곤 합니다.


결국 『역사의 쓸모』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일 겁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역사라는 거대한 도서관으로 우리를 안내하죠. 정약용, 정도전, 박상진 같은 인물들을 멘토로 소환하면서, 그들의 삶에서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궤적을 그리며 살다 갔다는 것일 텐데요.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서 자신만의 인생을 만든 위인들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했고요.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일 겁니다. 수많은 사람의 선택과 그 결과를 돌아보며, 어떤 선택이 나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역사는 쓸모가 있습니다. 아니, 쓸모를 넘어서 꼭 필요합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들이 모여서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고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추어보고

그 속에서 더 나은 삶의 태도를 모색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최태성 선생이 우리에게 건네고자 했던

역사의 쓸모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하루는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어쩌면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한 마음

어제보다 덜 흔들리는 시선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일의 반복일 겁니다.


그 안에서, 삶이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

역사를 통해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는 이야기를 통해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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