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와 부폰의 서로 다른 존중
대국민 사기극.
“날강두”가 따로 없다.
지난 금요일 밤, 세계 최고의 축구스타 호날두의 팀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유벤투스 FC와 우리나라 K리그 올스타 간의 친선경기를 두고 가장 많이 회자되는 두 문장이다. 이날 밤 저녁을 먹으며 경기를 기다리던 나는 이상하리만치 의아한 장면을 마주했다. 경기 시작은커녕 선수들이 몸을 풀러 나오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빈 잔디밭을 비추는 카메라와 해설진들의 열띤 사전 설명과 경기예측만이 1시간가량 지속된 것이다. 사실 당시에 나는 킥오프 시간을 잘 몰랐던 터라 그저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빅매치에 중계방송사 KBS가 시청률 사수를 위해 소위 ‘설레발’을 치는 줄로만 알았으나 웬걸, 뒤늦게 등장한 유벤투스 선수들이 들어와 잠깐 구장을 뛰더니 들어가 곧바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그중에는 모두가 바라던 호날두의 모습은 없었다.
경기가 뒤늦게 시작되고,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차 시간 맞추느라 애 먹겠다”는 경기 전 진심 어린 걱정은 보잘것없게 되었다. 최대 40만 원에 육박하는 티켓파워의 주인공인 호날두가 끝내 유니폼 조차 입지 않고, 몸을 푸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벤치를 달구다 들어간 것.
“희망고문”이 이런 것일까.
K리그의 팬들은 호날두의 유벤투스를 상대로 자국 리그의 선수들이 한 팀이 되어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테고, 유벤투스의 팬들은 그들의 수준급 플레이를 두 눈으로 목격하고 싶었을 것이며, 호날두 선수의 팬들은 “우리 형”이 내 앞에서 뛰는 모습을 생생히 느끼고자 할 것이다. 의도가 어찌 되었건 간에, 호날두의 결장은 경기장에 모인 6만 5천여 명의 기대를 한 몸에 저버렸다.
경기가 끝난 직후,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이 경기는 장소와 여건을 마련해준 프로축구연맹과, 아시아 투어 중인 유벤투스 구단과, 행사의 섭외 및 관리를 담당하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 간의 ‘약속’과 ‘수익사업’이 관련되어 있는 만큼, 사태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집요한 추궁과 추측, 비난 등이 이어졌다.
‘호날두 45분 출전’을 계약했으나 호날두를 내보내지 않은 유벤투스에게 책임이 있느냐, 계약을 부실하게 체결한 매니지먼트 사의 잘못이냐,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소홀한 관리 행태를 보인 연맹 때문이냐를 넘어 이 모든 화살이 호날두에게로 가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까지 번진 이번 사건에서 나는 법적, 도덕적 책임보다는 한 선수의 작은 행동에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RESPECT
“존중의 메시지는 축구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 -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
'존중’, ‘존경’의 의미를 지닌 위 단어는 2008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FIFA의 캠페인의 이름이기도 하다. 축구의 4개 주체인 선수, 코치, 심판, 서포터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RESPECT’ 캠페인은 축구계의 각계각층에 퍼져있는 각종 폭력, 폭언 사건과 인종차별을 근절하여 축구가 전 세계인을 아우르는 거대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관중이, 서포터가, 팬이 없으면 구단과 선수들은 지금과 같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없고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관중들에게 다양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동시에 선수들은 서포터들에게 ‘존중’을 보여주어야 한다.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최악임에도 불구하고 자의로 출전하여 짧은 순간이라도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들어간 메시와 굳이 비교를 하지 않아도, 그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본인도 잘 알 것이다. 자기가 얼마나 뛰어나고 유명한 선수인지, 이런 경기를 쉽게 접해보지 못할 아시아 팬들이 얼마나 자기가 1분이라도 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지, 또 자기가 얼마나 돈이 되고 막대한 지위를 갖고 있는지.
그걸 알만한 선수가 6만 명 앞에서 “자리만 지키다” 갔다.
물론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호날두 개인의 몸 컨디션이랄지, 구단과 업체 간의 ‘어른들의 사정’으로 계약 상의 오류가 있었는지, 출전권을 쥐고 있는 감독의 권한에 부딪혔던지... 그러나 그 어떤 사정상의 부득이함이 있다 하더라도 눈 앞에 6만 명을 두고 날 보러 와줘서 고맙다는 표현 한마디 없이 휘슬이 울리자마자 자리를 뜨는 행동에서는 그 어떤 존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선수의 따뜻한 행동 하나에 머나먼 나라의 축구팬에 대한 ‘존중’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날 우리는 이벤트 경기임에도 마치 신인 선수처럼 최선을 다하며, 모두 호날두를 연호할 때 사방의 모든 관중에게 경의를 표해 준 선수가 있었다.
올해 만 41세의 축구선수로서는 노령의 나이, 실력으로나 경력으로나 축구계에서 그의 행동을 간섭할 만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25년간의 기나긴 선수생활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기 위해 복귀한 고향팀에서 그의 빛나는 입지를 바라는 경우는 없겠지만, 그가 25년간 5번의 월드컵을 출전하고 42회의 개인상을 수상하는 등의 커리어를 결코 실력과 운만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그는, 지안루이지 부폰이다.
최소한 그가 서포터를 대하는 태도는 최소한 ‘진정성’이 담겨있었다. 필드 안에서 그는 마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임하는 듯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필드 바깥에서는 평생 한번 볼까 말까 한, 오히려 자신에게 월드컵 탈락의 아픔을 선사한 나라의 관중들에게 하나하나 감사의 표현을 담아주었다.
팬은, 내가 사랑하는 그 대상의 작은 관심 하나에 자신의 우주가 바뀌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여기까지 올라오게끔 만들어준 사람들, 자신의 플레이를 늘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들, 자신을 보는 게 평생의 소원인 사람들에게 보여준 부폰의 작은 손짓은 ‘존중’이라는 이름을 지닌 자신의 축구 인생의 전부였다.
팀의 최고참, 레전드, 그 이름만으로 유벤투스 그 자체인 그의 작은 존중은 우리가 왜 축구를 여전히 사랑해야 하는지 다시금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