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을 시작하는 노래 3 (소란, 토이, 신현희와김루트)
프로 짝사랑러가 있다. 언제는 그녀의 다정함에 반해버릴 때도 있고 전혀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에도 쉽게 빠지는 걸 보면 인간의 본능이란 정말 주관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간사한 존재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짝사랑만 주구장창 열심히 하던 그는 결국 자기가 만들어낸 자괴감을 이기지 못하고 감정의 사찰 속으로 들어간 듯 죽은 듯이 지낸다.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다는 듯이 또 자기만의 사랑을 시작하겠지만.
그와 같은 '금사빠류' 인간이 아니더라도 결국은 연애란 건 둘 중 하나라도 호감이 있어야 성립하는 것. 하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 치열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딱히 짝사랑의 비극적 결말을 생각하지 않고도 "못다한 말을 전하지 못하는"(이전 게시물 참조) 상황이 생긴다는 건 답답함을 뛰어넘는 묘연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이뤄지지 조차 않은 사랑을 지속하면서 내 스스로 변화하는 걸 느끼는 것도 나름 재미라면 재미다. 언젠가는 꼭 잘될 거라는 희망 속에서.
(작사 : 고영배 / 작곡 : 고영배 / 편곡 : 필터(Philtre))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밤에 잠들 때 까지, 하루종일 하나부터 열까지, 너만 생각하면 대단한 거 잖아. 근데 그걸 내가 해."
"해보고 또 해봐도 이해 안 되는 일들은, 차라리 외워 볼게. 숙제가 많아져도 행복해."
그만 생각하려고 하면 더 생각난다. 시험 전 날 같은 일찍 일어나야 하는 밤에 꼭 이런다. 꼭 커피를 마신 것처럼 심장 소리가 점점 커지고 새벽으로 갈수록 걱정도 커진다. 소란(SORAN)의 싱글 '너를 공부해'의 앨범 커버는 이런 상황을 잘 잡아낸 듯하다.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스탠드는 환하게 켜져있다. 너를 생각하는 만큼 공부를 했으면 성적이 잘 나올까 싶지만 그만큼 공부를 했으면 이딴 생각도 안했겠지.
이 곡은 제목 그대로 좋아하게 된 상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을 '공부'한다는 약간 과장된 단어로 표현한 곡이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 생기면 뜻하지 않아도 하루종일 생각하게 되고 가끔은 이렇게까지 하는 자신에 놀라기도 한다. 함께했던 작은 순간과 행동 하나하나를 머릿속에서 반복하고 종종 귀여운 상상도 하면서.
사실 이 곡은 '공부한다'는 제목과는 약간 다르게 하루종일 한 사람을 생각하는 자신을 신기하게 여기는 부분의 비중이 크다. 그 사람은 뭘 좋아하는 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는 부분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마치 공부하듯 너를 생각한다는 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자칫 주제를 벗어난 듯 보이나 구체적 상황의 비중을 줄이고 감정 위주의 표현을 한 것이 오히려 대중적 가사로서의 역할에 어울린 듯하다.
(작사 : 유희열, 크러쉬(Crush, 빈지노(Beenzino) / 작곡 : 유희열 / 편곡 : 프라이머리(Primary), 유희열)
"Things I wanna do with you' list
첫 번째는 아무 이유 없이 너에게 전화를 거는 거.
두 번째도 아무 이유 없이 너의 이름 대신 특별한 별명을 붙여 부르고 싶어.
세 번짼 I wanna cook you 김치볶음밥, and go party with you up all night.
그리고, 한강을 따라 걸으며 노을이 묻은 하늘을 보면서 넋을 놓고파.
그리고 난, 말하고 싶어 내 눈에는 너가 더 예뻐."
솔직히 빈지노가 없었다면 이 곡은 진부해질 뻔했다. 빈지노는 낯 간지러울 만한 내용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Things I wanna do with you' list' 라니. (이 와중에 라임을 맞춘 건 정말 감탄할 노릇이다) 이렇게 귀여워도 될까 싶을 정도로 소박하지만 누구나 꿈꿔볼 만한 내용이지 않나?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빠른 템포의 R&B곡에 빈지노의 랩핑을 얹은 유희열의 센스와 크러쉬의 중고음은 추운 겨울에 난로 앞에서 몸을 녹이며 만끽하기 썩 괜찮은 조합이다. 게다가 보컬 부분의 2인칭 위주의 가사와 랩 파트의 1인칭적 가사는 짝사랑 상태에서 감정 내부의 복합적인 변화를 적절하게 담아냈다. 겨울에 발매된 세련되고 따뜻한 곡, 토이는 'U&I'로 겨울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었다.
(작사 : 신현희 / 작곡 : 신현희 / 편곡 : 서정일)
"우린 서로 좋아하는데도 그 누구도 말을 안해요."
"말을 하면 멀어질까 너무 두려워. 너를 잃기가 나는 너무 무서워."
이제는 많이 유명해져버린 인디씬의 기대주 신현희와김루트를 지금에 있게 한 곡이다. 신현희와김루트는 영락없는 어쿠스틱 듀오지만 통통튀는 음악으로 어쿠스틱 뮤직 특유의 침착함 대신 발랄함을 갖췄다. 타이틀곡 '오빠야'는 인터넷 방송에서 유명세를 타 각종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는 곡이다. 어쿠스틱 듀오라는 점에서 비슷한 시기에 주목을 받은 '볼빨간 사춘기'와 종종 비교되었으나 '편한 노래'나 '집 비던 날'과 같은 감성적인 곡 보다는 '오빠야' 같은 대중적 곡이 유명세를 탐에 따라 음악성에 있어서는 평가절하 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신현희와김루트는 2014년부터 인디씬에서 꽤 훌륭한 '물건'으로 통했다. 특히 보컬 신현희의 리드미컬한 작사 능력과 톡특한 발성은 이들이 반짝 스타가 아닐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오빠야'는 어린 소녀의 풋풋한 짝사랑을 담은 노래다. 도입부의 "오빠야"는 보컬 신현희의 고향이 영남지방인 점에서 더욱 맛깔나게 들린다. (정작 "오빠야"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 잘 안쓰인단다. 타 지역 사람들의 환상일수도.) 그에 이어서 음절별로 뚝뚝 끊기는 가사는 발음이 좋지 않아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어있고 후렴부에서 빛이 나는 구조로, '확' 뜨기엔 괜찮은 노래다.
그런데 후렴부의 "우린 서로 좋아하는 데도 그 누구도 말을 안한다"는 내용은 과연 사실일까 소녀의 상상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소녀는 분명 이런 경험이 별로 없는 상태일 것이고 이로 인해서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서로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까? 소녀의 바람일 수도, 상상과 착각의 과장일 수도 있다. 판단은 우리가 하는 거겠지.
Editor. Yum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