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펠리즈의 굿사마리탄
아침 출근을 하면 애프터 아워(After Hour)에 걸려온 전화 내역 이메일부터 확인한다. 퇴근 후 오피스에 전화하면 외부 상담원과 연결되고, 모든 내용은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전달된다. 광고나 임대 문의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따금 주민들의 안전이 걸린 중대 사건의 실마리가 될 내용이 있기 때문에 집중해서 읽는다.
얼마 전, 나와 동료를 십년감수하게 했던 전화 기록이 있었다. 익명의 한 사람이 남긴 메시지였다. 길을 잃어버린, 나이 든 아시안 여성을 로스 펠리즈 (Los Feliz)의 주택가에서 발견해서 택시에 태워 집으로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확인해보니, 미시즈 박이었다. 요즈음 기억력이 흐려진 그녀는 토요일 저녁, 남편이 숨을 잘 못 쉬고 답답해해서 병원 응급실에 함께 가셨다고 한다. 입원을 시킨 후 집에 돌아오려고 일단 택시를 탔는데, 영어도 못하고 주소도 대지 못하니 난감한 기사는 근방의 가장 안전한 주택가에 내려준 것 같았다. 이 동네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한동안 배회 하고 있으니, 누군가가 그녀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말을 걸고, 집을 찾아줄 방법을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세스 박의 손가방에서 내 명함을 찾은 그분은 시니어 하우징의 주소와 기관명을 확인하고, 그녀를 택시를 태워 보내며 오피스에 전화를 한 것이었다.
동료와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혹시나 범죄자가 그녀를 보았더라면, 로스펠리즈가 아닌 험악한 동네였거나 내 명함이 가방에 없었더라면 과연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동료들과 나는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살 만한 것이 않겠냐며 입을 모았다. 우리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분을 로스펠리즈의 굿 사마리탄(Good Samaritan:성경에서 나그네를 도운 선한 사마리아 인의 영어식 표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연락처를 알면 통화를 하거나 감사 카드라도 보낼 텐데. 그분은 이름도 연락처도 남기지 않았다.
치매 환자 열 명 중 여섯은 배회(wandering) 증상을 보인다. 어디론가 가고 싶은 욕구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혼자 집을 나섰다가 돌아올 방법을 몰라 배회하게 되기도 한다. LA 경찰국 (Los Angeles Police Department)에 실종 신고를 하면 대개 며칠 안에 찾아 주지만, 누구나 그런 행운을 가진 것은 아니다. 고속도로 갓길을 걷다 변을 당하기도 하고, 영영 찾지 못해 케이스가 종결되는 경우도 있다. 세상의 그 누구도 세상을 떠날 때 그런 상황을 겪고 싶지 않을 텐데, 그래서 치매 환자의 배회 증상은 무섭고 슬프다. 돌보는 가족은 또 어떤가. 동료의 절친은 치매에 걸리신 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되셨는데, 가족과 친지 모두 전국 뉴스에까지 나올 수 있게 힘썼지만 결국 못 찾았다고 했다. 그런 이별은 어떤 깊이의 슬픔과 자책감, 안타까움을 남길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바쁜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주변을 돌아보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에 쫓기고, 지나가는 타인을 눈여겨볼만한 여유를 갖기가 어렵다. 길 잃은 사람의 집을 찾아준다는 것은 책임감이라는 부담 또한 작용한다. 섣불리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도움도 못 주고, 원망을 들을까 두려울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로스펠리즈의 굿 사마리탄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지를 발휘해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푼 것이다.
미세스 박의 귀환 사건 이후, 나는 그녀에게 알츠하이머 협회(Alzheimer's Association)에서 제공하는
세이프 리턴 프로그램 (Safe Return Program) 등록을 권했다. 미세스 박은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으셨지만, 길을 잃었던 그날의 일을 여러 번 상기시켜 드렸더니 등록에 응하셨다. 세이프 리턴 프로그램에 등록하면, 911에 실종신고 접수 시 가입자의 사진과 의료 정보가 근처의 모든 지서에 공유되면서 수사에 용이하게 된다. 또한 가입자는 팔찌나 목걸이 둘 중 선택 착용하게 되어 있어서 식별하기 쉽게 되어 있다. 누구든 실종 사고로 인해 가족을 잃지 않길. 개인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사회 제도와 단체 활동에도 새삼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