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노년의 만남
내가 일하는 시니어 하우징 기관은 남가주 대학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과 협력하여 헬스케어 관련 전공 (의대, 치대, 약대, 작업치료, 물리치료, 공중보건 등) 대학원생들에게 노년층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남가주 대학에서는 장차 의료계에서 노년층의 환자를 만나게 될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이 강좌를 선택과목으로 개설해 10여 년째 운영 중이라고 한다. 요즘처럼 세대 간 교류가 많지 않은 핵개인의 시대에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통합전문 노년의학 프로그램 (Interprofessional Geriatrics Program)이라고도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학생 7-8명으로 이루어진 그룹 하나당 노인 참가자 한 분이 매치가 된다. 학생들은 노년층의 치위생, 보행, 약물 치료 현황, 정신 건강 등 소주제에 관해 강의를 듣고, 매칭된 노인 참가자와 전화/화상통화 등을 통해 주어진 주제에 맞춰 질문하고 대화를 주도하게 된다. 교수들은 주제별로 강의도 하지만, 환자와의 효과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도 지도하고 의료인으로서의 윤리 등에 관한 토론도 진행한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노인 참가자 리크루팅. 내가 근무하는 시니어 하우징 주민들 중 참가자를 모집해서 학생들과 연결되도록 돕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은 곳이라, 그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시니어 하우징은 영어 외에 10가지 이상의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다언어 사회이다. 그러다 보니 매칭을 위해서 언어 정보가 핵심이 된다. 지원자의 모국어와 수강생의 이중언어 가능 여부는 매칭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학기 시작 전, 남가주 대학 프로그램 담당자는 수강생들의 이중언어 현황을 집계해서 보내주는데, 나는 그에 맞춰 지원자 섭외에 착수한다.
코비드 중에는 대면 미팅은 폐지되었다가, 2023년부터는 학기 중에 한번 하게 되었다. 1주일에 한 번씩 참가자-학생들 간의 전화 통화/줌미팅을 하는데, 주제별 인터뷰와 더불어 스몰톡이 곁들여지는 모양이다. 노인 참가자들은 젊은 세대와 교류를 통해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고,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와 스타일도 알게 되며, 노화에 대한 개인적 경험 전달을 통해 교육 과정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보람을 느끼신다고 한다.
내가 근무하는 시니어 하우징에서 참가하신 분들은 대략 70대 중반, 건강 상태는 양호하신 경우가 많다. 60대는 일을 하시거나 손자녀를 돌보시는 경우가 많아서 참가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고, 80대 중후반 이후는 건강상의 문제로 매주 학생들과 대화를 이어갈 엄두를 못 내신다.
이 프로그램 세일즈는 내 입장에서는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상당 기간 학생들과의 인터뷰가 이어지기에 시간적,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기에 참가자들의 진입 장벽이 높다. 한편 노인들의 경우는 건강문제가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어 프로그램 중도 하차도 간혹 볼 수 있다. 학과 과정이기 때문에 중단할 수가 없으므로 백업을 중간에 섭외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하나, 참가자의 증감은 있을지언정 나는 포기하지 않고 해마다 섭외를 이어나간다.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 모집에 애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사용으로 개인 간의 교류가 현격히 줄어든 이 시점에, 세대 간의 교류(intergenerational exchange)가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이라도 서로를 알게 됨으로써 친밀감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좀 더 서로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좀 더 따뜻한 사회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한편 학과 공부라 약간의 강제성으로 시작되었다고는 해도, 이 수업을 통해 젊은이들은 노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인적인 측면에서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애정을 갖고, 훗날 그들 자신의 삶을 꾸려갈 때도 도움이 될 거란 믿음이 있다. 노인 참가자들은 젊은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 세대의 지혜를 전달하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를 갖는 데다 사회에 기여한다는 기쁨을 누리신다고 말씀을 하시니 나는 이 작지만 큰 나의 '소명'을 버릴 수가 없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대부분의 학생들과 노인 참가자들은 안녕을 고하는데, 지난 학기엔 두 명의 학생들이 참가자와 만남을 이어간다는 미담을 들었다. 가끔 통화도 하고, 하이킹도 다니고, 스타벅스에서 만나서 커피 한잔을 한다고. 만남을 이어가는 이들의 온기가 우리 모두를 따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