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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kyjodi Jan 14. 2024

함께라는 것

독거노인 방문 프렌들리 비지터 (Friendly Visitor) 프로그램


코비드가 맹위를 떨치기 몇 해 전, 성공회(Episcopal Church)에서 프렌들리 비지터(Friendly Visitor)라는 독거노인 방문 프로그램을 로스앤젤레스에 론칭했다. 트레이닝을 이수한 발런티어들이 정기적으로 혼자 사는 노인들을 방문해서, 친교 시간을 보내거나 간단한 일처리를 돕는 것이었다. 프로그램 디렉터인 V와 콘퍼런스에서 마주친 인연으로, 나는 참가자 모집을 돕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른 생각을 나누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만남을 통해 타인의 삶에 대해 배우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이 내겐 중요하다. 요즘처럼 개개인이 고립되기 쉬운 사회 속에서 세대 간의 교류가 어려워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다. 하여 나는 참가자 모집에 열성을 기울였고, 본의 아니게 프로그램 세일즈 일등을 했다. 참가 의사를 밝힌 내 손님들은 V와 설문지 작성 및 인터뷰를 거쳐 발런티어와 연결되었다. 알고 보니 V는 매칭의 여신이어서 이들 모두는 대만족이었다. 


참가자 데이비드는 발런티어 리처드와 페어가 되었다. 이들은 둘로 쪼개진 거울을 맞춰 놓은 듯 잘 맞았다. 성소수자, 작가라는 공통점에다 각자의 내재적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구도여서 그랬던 듯하다. 성장 시 아버지의 부재를 겪은 리처드는 데이비드를 멘토 삼아 지냈고,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늘 서운함이 컸던 데이비드 역시 리처드를 아들 겸 친구처럼 살갑게 지냈다. 리처드는 격주로 토요일마다 데이비드를 방문했다. 그들은 공원에도 가고, 함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필요시에는 은행이나 식료품점에도 갔다. 데이비드는 리처드와의 만남을 통해 조울증 치료가 거의 필요 없어질 만큼 활력이 생겼다. 리처드는 데이비드와의 만남을 글로 써서, 유명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저장강박증(Hoarding disorder)으로 원베드 아파트를 책과 DVD 컬렉션으로 꽉 채운 데이비드를 도와 리처드는 짐정리를 도왔고, 책더미에서 자던 D에게 침대를 마련해 주기 위해 고 펀드미(GoFundMe)를 통해 기금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리처드는 데이비드가 갑작스레 암 판정을 받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성실하게 그를 방문하고 최선을 다해 도왔다. 


두 번째 참가자 윌리엄은 캐더린과 매칭이 되었다. 스타의 꿈을 안고 할리우드로 왔던 콜로라도 태생 윌리엄과 2살 무렵 중국에서 이민 와 로스쿨 재학 중이던 캐더린과의 만남이었다. 윌리엄은 고향 콜로라도에 90을 바라보는 누나 두 명을 제외하고는, 지인이나 친구가 없었다. 윌리엄은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캐더린이 오는 화요일이면 멋지게 차려입고, 약속 시간 30 분부터 그녀를 기다렸다. 그 둘은 다른 장소로 가지 않고 늘 아파트 건물 내 라운지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으로 보이는 이 둘이 만나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고, 간간이 웃기도 하는 모습은 왠지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엄이 낙상 사고로 응급실로 실려간 후, 그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캐더린은 자청해서 그의 누나들과 연락을 취해 스카이프 (Skype)를 통해 유품 정리를 도왔다. 캐더린은 유족의 부탁 대로 가구는 굿윌 (Goodwill)에 기부하고, 귀중품들은 누나들에게 우편으로 보내주는 수고까지 해주었다. 그리고 가족들을 총동원해 아파트 내부 청소까지 도왔다. 그렇게 그녀는 마지막까지 혼자였던 윌리엄의 곁을 지켜주었다.


참가자 호세는 마리아과 연결되었다. 이들은 스페인어가 모국어이고 멕시코 태생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격주로 토요일에 만나, 근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같이 하며 시간을 보냈다. 호세는 마리아와 함께 시내로 나가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듯했다. 마리아가 라이드를 해주기에 자신이 식사비를 내주고 싶은데, 마리아가 한사코 만류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불만이었다. 호세는 미국으로 늦은 나이에 건너와서 영어를 거의 배우지 못한 데다, 멀리 사는 아들 둘과 손녀 말고는 사회적 관계가 극히 적었던 상황이었다. 변호사인 마리아는 호세에게 공문서 등을 읽어주기도 하고, 그가 전화 사기를 당했을 때 조처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 둘의 만남은 팬더믹 중에도 계속되었다. 팬더믹 초기에는 전화 통화만 했지만, 이후에 백신 접종을 하고부터는 야외 식당에서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났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철수한 후로도 몇 년 동안 이 둘은 수 년동안 만남을 이어온 것이다. 


성공회 프렌들리 비지터 (Friendly Visitor) 프로그램은 2018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철수했다. 참가자가 많지 않았던 데다, 론칭 후 2년 만에 팬더믹이 시작되어 시기적으로도 좋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 참가를 꺼렸던 것 같다. 나 역시도 수많은 분들에게 거절당했다. 내가 단 세 명의 참가자 연결로 세일즈 일등을 했다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극히 낮은 호응도를 보여준다. 


한국 분들은 일단 '나이'가 제일 문제가 되는 모양이었다. 젊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썩 편하지 않은 데다, 만나서 할 말이 없다고도 하셨다. 


영어권 손님들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부담감으로 인해 거절하는 분들이 많았다. 어떤 제도를 통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런 상황에 놓인 자신을 불쌍하게 볼까 봐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분들은 만사가 귀찮다고도 하시고, 누군가를 만날 여유가 없다고도 하셨다. 모두 이해가 될 법한 거절의 사유들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이들을 만나기 위한 용기를 냈던 모든 이들은 연대감이 주는 기쁨과 의식의 지평을 넓히는 경험 모두를 누렸으리라 생각한다. 참가자들은 새로운 에너지와 생각들로 가득한 젊은이들을 만나, 호의를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리처드는 그의 글에서 데이비드가 아버지가 해줄 법한 조언을 해주고, 그가 활동했던 당시의 성소수자, 작가들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던 것이 그의 삶에 있어 큰 위로와 자양분이 되었음을 술회했다. 데이비드 역시 리처드와의 교류로 인해 삶의 활력을 얻고 인식의 전환을 이루었다. 데이비드는 인터넷상의 커뮤니티와 SNS 활동을 혐오했었는데, 리처드가 고 펀드미(GoFundMe)로 미전역을 대상으로 기금을 조성해 침대 구입을 도운 후 그는 달라졌다. 새로운 세상을 거스를 수 없고, 새로운 세대가 온 것을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캐더린과 만나면서 윌리엄은 동아시아 이민자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 내게도 내 모국인 한국이나 이민 후 미국에서의 새로운 경험들에 대해서 묻기도 했었다. 이전의 그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분야였다. 아마 그가 지금 살아있었다면 그는 아시안 혐오 범죄를 막아야 한다며 캐더린의 보디가드를 자청했을지 모른다. 캐더린은 노년의 삶, 특히 저소득 층의 삶에 대해서 좀 더 이해를 넓혔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사회적 책임감이 많던 예비 법조인에게 어떠한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불러일으켰을까. 또한 호세와 마리아의 만남 역시 그들의 삶에 어떤 울림을 주었으리라 믿는다. 


내가 노인이 된 후 혼자 살게 된다면, 그리고 이러한 프로그램 참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는 참가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나를 만나는 이가 듣고 싶어 한다면, 햇볕이 잘 드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내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지 모르겠다. 조언해줄 것은 없지만 혹시 묻는다면 이야기해 주고 싶다. 매사에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삶이 허락하는 충만한 기쁨을 최대한 느껴보라고. 



* 개인정보를 지키기 위해 모두 가명을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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