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달인, 80대 싱글녀들의 소신 있는 삶 이야기
내가 일하는 로스앤젤레스의 시니어 하우징에는 싱글녀 3인이 계시다. 이 분들은 평생 독신으로 지낸, 직계 가족이 전혀 없는 분들이다. 입주 서류에 비상 연락할 사람으로 교우, 친구 등의 연락처만을 적어 두셨다. 나는 내심 이 분들이 걱정되었다. 가족이 없어서 도움을 받을 사람들이 없고, 명절에도 쓸쓸하게 보내시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마주칠 때마다 나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꼭 알려 달라고 말씀드렸다. 알고 보니 이것은 나의 기우였다. 이 분들은 삶의 달인이었다.
1. Ms. P의 이야기
P는 동남아 국가 태생이다. 결혼 생활로 인해 고통받는 언니를 지켜보다 비혼의 삶을 선택했다. 젊어서 미국으로 혼자 건너와 봉제일을 하며 살았고, 할리우드의 불교 사원에서 만난 승려, 교우들과 친교를 쌓으며 지냈다고 한다. 80세 생일을 앞두고 욕실에서 넘어진 후, 수술과 재활 치료를 받았다. 이후 많이 쇠약해져서 나는 간병인 서비스 (IHSS: In Home Supportive Services)를 신청해드렸다. 메디케이드 (Medicaid: 캘리포니아는 메디 캘 Medi-Cal이라 한다)라는 저소득 노인을 위한 의료보험이 있는 경우, 무료 간병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교우 한 분이 간병인이 되면서, P의 집으로 1주일에 세 번 방문해 청소와 요리를 돕는다. 이외에도 간병인은 마켓, 병원등으로 라이드를 해준다. 덕택에 그녀는 본국의 음식을 매일 먹고, 모국어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 흡족해한다. 그녀는 이웃 T와도 아주 친해져서, 함께 영화도 보고 미용실도 같이 다닌다.
2. Ms.C의 이야기
그녀는 P의 옆집에 사는 이웃이다. 홈리스 갱생 프로그램의 드문 성공 케이스로서, 엘에이 다운타운의 텐트 생활을 십 년도 넘게 하다, 70대 중반에 한국계 목사님의 홈리스 사역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후 정상적 삶에 복귀 하자는 결심을 하고, 주변의 도움으로 시니어 하우징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트릿 생활에서의 거친 습관으로 입주 초기에는 이웃과 마찰이 있었지만, 이젠 적응해서 잘 지내고 있다.
C는 이웃인 P와 친구처럼 지내며, 영어와 컴퓨터가 서툰 P를 돕는다. 관공서에 전화할 때나 간단한 문제가 생기면 C가 나서서 P를 도와준다. C 역시 간병인 서비스 (IHSS)를 이용하고 있는데, 간병인 K가 와서 청소, 요리, 라이드를 맡아서 도와주고 있다. C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데, 파즈 엘에이(Paws LA : 반려 동물을 키우는 저소득 노인 지원 기관으로, 반려동물 건강 보험 및 사료를 무료로 제공함)에서 도움을 받는다. C는 텐트 생활 중 만난 한국계 목사님 내외를 아들딸 삼아서 지내왔다. 목사님 내외는 서너 달에 한번 정도 그녀를 방문하고, 생일이면 파티를 열어 준다.
3. Ms. M 이야기
M은 어려서 부모님께 버림받고, 평생 혼자 살아온 여성이다. 배우였던 그녀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다, 엘에이로 건너왔다. 그녀는 친구가 많다. 젊은 시절, 동물 복지 단체에서 간사로 활동하며 뜻이 같은 친구들을 만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그녀의 친구들은 실로 넓은 연령 스펙트럼을 자랑하는데, 50대부터 90대로 다양하다. 그들은 가끔 방문도 하고 안부 전화를 정기적으로 하고, 생일 마다 카드와 선물을 보낸다. M은 93세가 되면서 녹내장과 황반 변성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이다. 현재 법적 대리인(Power of attorney)으로 절친 S를 선임해 두고,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 친구가 모든 일들을 대신 처리할 수 있도록 법적 조치를 해두었다.
M은 수입이 조금 많아서 메디케이드 신청 자격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무료 간병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가 없다. M의 지역구 시니어 센터에 문의했더니 케어 앳 홈 (Care At Home)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신청해드렸다. 케어 앳 홈 (Care At Home)은 간병인을 파견해서 일주일에 한 번 와서 청소와 빨래, 간단한 가사들을 돕는다.
M의 큰 문제는 식료품 조달이었다. 내가 밀즈 온 윌즈 ( Meals on Wheels: 식사 배달 프로그램)의 음식은 어떠냐고 하니, 그녀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며 거부했다. 그녀는 트레이더 조 (Trader Joe's)라는 식료품점에서 식재료를 사 오고 싶다고 했다. 고심 끝에 나는 헬핑 핸즈 (Helping Hands : 팬더믹 이후 발족한 LA카운티 내의 시니어를 위한 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하는 비영리 단체)와 연결해 드렸다.
이 서비스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M이 Trader Joe's에 전화로 식료품을 주문 후, 헬핑 핸즈 (Helping Hands) 에게 배달 요청을 한다. 그러면 매칭된 발런티어가 식료품을 픽업해서 전화로 약속을 하고, M의 집으로 배달해 준다. M에게 연결된 발런티어 A는 뉴욕 태생의 젊은이로, 식료품을 가져다주던 첫날 그녀에게 꽃 한 다발도 선물하는 신사였다. M은 A의 다정한 행동에 감동받았고, 동향이라 그런지 그 둘은 친해졌다. A는 M의 상황을 알고 난 후, 자신이 생기면 동료 L에게 부탁해 음식 배달에 차질 없도록 조처까지 해주었다.
한편, M이 병원 갈 일이 생기면 내가 액세스 패러트랜짓 (Access Paratransit : LA 카운티 내의 라이드 프로그램. 보행이 불편한 경우, 이용 가능하다)에 픽업/드롭오프 약속을 잡아드린다. 그러면 M은 왕복 6달러 정도를 내고, 병원-집 라이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독서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나는 그녀가 브레일 인스티튜트 (Braille Institute :시각 장애가 있는 분들을 돕는 기관으로, 오디오 북 도서관을 운영한다) 오디오북 우편 대출 회원 신청을 도와드렸다. 그녀는 보통 집에서 TV를 보거나 오디오 북을 듣고, 친구들과 전화 통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 세 분의 손님들을 통해, 나는 그간 가져왔던 선입견을 버릴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삶 속에서 관계 형성을 하고, 개성 있게 삶을 꾸려왔던 이들의 모습에 경외심을 느꼈다. 어쩌면 직계 가족이 없기에, 친구나 이웃, 교우들과 더욱 돈독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가정 안에 매몰되어 자신의 꿈은 잃고 살아가셨던 우리네 어머니들이 더욱 소외된 삶을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사회적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경우, 싱글 노인의 자립에 엄청난 도움이 됨을 새삼 깨달았다. 헬핑 핸즈 (Helping Hands)라는 단체와 뜻있는 발런티어들이 없었다면 M은 코로나 팬더믹 내내 어떻게 식료품 조달을 했을까? 운전을 못하면 어딜 갈 엄두가 안나는 이 드넓은 미국 땅에서 액세스 패러트랜짓 (Access Paratransit)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그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문제와 비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또한 간병인 프로그램(IHSS)을 통해 저소득 노인들은 자립적인 생활을 좀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연방 주택국의 지원을 받는 저소득 시니어 하우징 에는 나와 같은 서비스 코디네이터가 있어서, 주민들이 지역 사회 및 정부 복지 프로그램 혜택을 쉽게 받을 수 있다. 이를 생각하면 사회적 시스템의 힘은 가히 상상 이상일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종교 단체들의 사회적 역할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노년학 연구들에 의하면, 종교 활동을 하고 예배나 모임 등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행복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다고 한다. 사이비 종교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모든 종교가 타인을 향한 연민(compassion)의 발휘를 권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많은 노인들이 교회, 성당, 불교 단체 등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같은 신앙인들과 교류하며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시는 듯하다.
물론, 모든 싱글 노인들이 위에 언급한 손님 세분처럼 큰 문제없이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외로움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가족 공동체가 없기에 생활 속에서 도움을 받기 어려울 때도 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관계를 아예 안 맺거나, 모든 지역 사회 서비스를 다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마음을 열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고, 제공되는 서비스 들도 이용한다면 노후의 삶이 덜 팍팍하지 않을는지. 인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두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