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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gnalhill Aug 18. 2022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워킹맘'은 버겁다. 

1. 얼마전 남편과 MBTI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TV프로그램에서 남녀가 MBTI만 가지고 한참을 이야기하는 것을 봤는데"저게 정말 과학적 근거가 있는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자기 휴대전화에 며칠 전 MBTI 검사를 한 결과를 캡처해두고 아, 내 MBTI 뭐였더라 그거...하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나도 해본적은 있지만 벌써 까먹었다. TV속 저 사람들처럼 ISTJ는 어떻느니...하나하나 다 외우지도 못하고. ㅋㅋ


2. 어제는 울적해서 조금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나왔다. 딸을 돌봐주시는 친정 부모님이 딸의 하원 후 같이 차를 타고 시내에 나왔다고 하시기에 만나서 저녁을 먹었다. 부모님과 대화 중 답답함을 털어놨다. 


"내가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어. 난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봐. 어떨 때는 집이 너무 더러워서 새벽에 일어나서 청소를 하고 출근을 해. 아이는 가끔 새벽에 깨고, 그럴때마다 나는 아이의 싱글침대에서 새벽 두세시간을 부대끼며 선잠을 자야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화 한번 낸데 죄책감을 가져야 해. 회사에서도 내가 예전처럼 인정받는것 같지 않아. 자꾸 소심해지고.. 분명히 할 도리는 다 하고 있는데도 말야. 이해받고 싶은데 시선이 차가우니 몇배로 상처받아"


엄마가 내 손에 백화점 상품권 10만원짜리를 쥐어주며 너 지난번에 갖고 싶은 귀걸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그거라고 사라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아빠를 보며 눈물을 참았다. 정말,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는 요즘.


이럴때면 모든 화살은 다 남편에게 가는 것 같다. 그냥 밉다. 그저 살던대로 살면 되는. 나보다 잃은 것이 별로 없는. 나도 너만큼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왔는데. 이런 유치한 생각이 드는 걸 어쩔수가 없다. 남편에게 계속 질투심이 드는거다. 아픈 다리로 딸과 놀아주고 뭐든 우리 편한대로 하라는 엄마를 보면, 주말에 집에 한번 불러 먹을 것 해주는것도 부담스러워 하는 시어머니가 같이 생각날 수 밖에. 


3. 친한 선배와 업무 점심 이후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돌쟁이 아들이 있는, 1년 위의 선배. 그녀는 회사에서도 손 꼽힐 정도로 일을 잘하는 선배다. 뭐든 똑소리가 난다. 저녁 술자리 때문에 눈치보인다고 했더니 그녀는 말했다. "너도 참 대단하다. 난 아이 때문에 안된다고 해 그냥"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내가 더 훌륭한 직원이 되면 저렇게 당당할 수가 있는건가. 맞아, 저렇게 이야기하면 되는데 왜 난 자꾸만 망설여지는 걸까. 속상하다"


갑자기 내 MBTI가 궁금해졌다. 내 MBTI 뭐였지? 이건 그냥 성격 차이인걸까, 내가 뭔가 잘못돼 가고 있는걸까. 지금 내 상황에 대해 누가 답 좀 내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4. 복잡한 마음. 이 마음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속이 상하는 것. 남편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확신섞인 외로움. 아마도 나는 혼자서 앞으로의 어려움을 다 헤쳐나가야 할 것 같다는 두려움. 누구도(남편도) 내 이런 마음을 몰라준다는 원망. 고마움의 표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가슴아픔.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내가 뭔가 소심하거나 예민한 사람이어서 이렇게 생각할거라는 

나 자신에 대한 비난....


아이를 낳고 나서 나는

속이 많이 뭉그러진다. 


아이는 예쁘지만, 사랑하지만,

나는 누굴까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리 저리 끌려만 다니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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