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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짱 Oct 14. 2019

피해의식은 피해를 입었으니 생기는 것이라

'니하오'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그 감각

지난 주말에는 어학원 다닐 때 친구들을 만났다. 이탈리아인 G, 멕시코인 S, 호주인 F.
독일어 무지의 상태로 학원을 다니던 G의 반에 둘째 달부터 내가 다니기 시작했으며, 다시 두 달 뒤에 S와 F가 들어왔다. 그때부터 학원 친구들이 종종 만나 맥주 한 잔씩을 하게 되었다. 20대서 30대초반까지의 급우들이 놀자는 데에 40대 후반의 왕언니 F가 기꺼이 함께해주어서 모임이 지속될 수 있었다. 어학 공부를 마치고도 가끔씩 안부를 주고받으며 연락을 지속해왔지만, 아무래도 학원에서 매일 만날 때만큼 서로가 일순위일 수는 없어서 모임이 뜸해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오랜만에 뭉친 밤.
9시에 알트슈타트(Altstadt, 구시가지)의 한 브로이하우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럴 줄 알았다. 이 도시에서 가장 많은 우반(U-Bahn) 즉 지하철  개 노선이 서는 정류장을 끼고 있기에 이 도시의 밤마실은 언제나 알트슈타트에서 이루어진다. 그 주체가 동양인들인 경우를 빼고는.

나는 독일인들에 대해 '맨정신에 점잖은 체하지만 술 마시면 본색을 드러낸다'라고 평하곤 하는데, 이 평가의 근거가 대부분 밤의 알트슈타트에서 습득되었다. 한인들끼리 자주 하는 이야기는 "인종차별하는 것들은 알고 보면 진짜 독일인 아니야"라는 것인데, 그들이 실제로 어느 국적을 갖고 있는지와 별개로 외관상 그들이 동유럽이나 터키 내지는 중동 출신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폭력적인 주장이다. 이런 얘기를 난민을 받아들일 정도로 범인류적 관용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독일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발설할 수는 없지만, 한국어 커뮤니티에서의 공유는 비공식이니 그렇게들 말하곤 했다. 이 주장은 기실 내가 싫어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말함으로써 왜곡되는 바가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말했다시피 외모만 보고서 상대방이 '진짜 독일인'인지 아닌지 실제적으로 구분도 안 될뿐 아니라 인종차별 당하는 입장에서 또 다른 인종차별을 의식으로나마 하는 요지라 꺼림칙한 것이 첫째다. 그리고 둘째는, 그럼으로써 본래의 독일은 인종 차별을 하지 않는 공간이라고 정신승리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 골상이 밋밋하고 머리칼이 까맣고 피부에 노란끼가 돈다는 이유만으로 입는 피해가 분명히 있는데 가해자집단을 표백하면 그 피해가 없어지기라도 하는 것인지. 무엇보다 그 주장의 수사가 내 맘에 안 드는 것과 별개로, ^순수한^ ^진짜^ 독일인들도 술취하면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방관하거나 자행하는 것이 문제다. 술 취한 그들은 우리에게 니하오를 위시한 차별적 언행을 내뱉거나 그런 친구를 내비두는 두 부류로 나뉜다. 다시금 말하지만 나는 그 순수한 진짜 독일인들이 정확히 어떻게 구분되는지도 알 수 없음에도.
그런 이유로 나는 웬만하면 사람들이 술취한 시간의 알트슈타트에는 가지 않는다. 동양인끼리는 더더욱 안 간다. 학원 친구들, 그러니까 비동양인들과 무리를 지어서라면 묻힌다는 마음으로 가기야 하겠으나 와중에도 내가 동양인 친구와 나란히 걸을라치면 '니하오'가 들려오는 것을.
그래서 이런 날이면 너무나도 억울했다. 너희에게 대충 묻어서야 간신히 여기에 나와지는 이 '마음먹음'을 너희는 영영 모를 테니까.

'팁'은 여행자에게 가장 조마조마한 영역이다. 팁 문화가 없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순식간에 예절 모르는 자들로 실격당하게 되니까. 그래서 독일에 오고서 만난 지인들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이 "여기는 팁 어떻게 해?"였다.
그렇게 물어봐놓고 초장에 한번 혼쭐이 나고야 말았다. 우리의 선불 유심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행했던 남편 친구의 애인에게 대접하는 날이었다. 구구절절하게 관계를 명기한 만큼 예의를 차리는 자리였다. 독일에 오고서 얼마 안 된 터라 우리는 알트비어를 탐사하기 위해 한 브로이하우스에 갔다. 독일 1인분은 한국 성인 남성 기준 1.5인분은 되지만 예의를 차려야 했으니 접시 세 개를 시키고 맥주도 넉넉히 마셨다. 이 자리를 선점한 예약자들이 올 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 계산할 때, 한 50유로 넘는 금액이 나왔는데 어쩌다 보니 잔돈이 없어 팁을 1유로정도 주게 되었다. 그랬더니 내내 유쾌하게 응대하던 웨이터가 정색하면서 내가 너네 나라에 가면 너네 나라 방식을 지킬 것이듯이 너희는 독일에 왔으니 독일 방식에 따라야 한다, 팁을 이렇게 줄 거면 자기는 차라리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독일에 10년 산, 그래서 독일어가 유창한 남편 친구의 애인이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하여 1유로는 돈도 아니냐고 대꾸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팁은 그저 감사의 의미일 뿐 수입이 없는 너희가 팁을 반드시 내야 할 의무는 없어"라던 친구의 어학원 선생님의 지혜를 나눠받기도 했고 막상 음식점에서 서버로 일하며 정산할 때에 독일인이라고 해서 5~10퍼센트 딱딱 지켜서 팁 내는 것도 아님을 경험도 했지만, 어쨌든, 그날의 우리는 팁 안 주는 동아시아권에서 나고 자라 현지에 발맞추지 못하는 무뢰한이었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우리는 가상의 모욕을 방지하고자 그 5~10프로에서 10프로에 가까운 쪽에 맞춰 꼬박꼬박 팁을 헌납하고 있다. 다시금 말하지만 실제 독일인도 안 그러는 경우가 왕왕임에도.
내가 이런 금전적 고생을 감수하는 것은 상대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그럴듯한 심사에서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 동양인'으로 지적받지 않기 위해서임이 더 크다. 팁을 적게 줬을 때 출신국과 엮여서 지적받았었으니까.

이번 모임의 첫차는 최근에 취직한 G가 쐈다. 저녁을 먹고 만난 모임이라 맥주만 다섯 잔 마셔서 11유로가 나왔다. 뒤셀도르프 모든 브로이하우스들 카드 받는 꼴을 못 봤는데 가장 오래된 이 브루어리는 웬일인지 카드결제기가 있어서 카드로 결제했다. 카드로 결제하는 경우에도 결제액을 더 높게 불러 팁을 줄 수 있지만 G는 그러지 않았다. 이탈리아에는 팁 문화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함께 밥 먹은 중에 결제를 각자 먹은 만큼만 할 때면 G는 단 한 번도 팁을 내지 않았다. 그녀보다 3년 먼저 이주해온 그녀의 애인도 여즉 독일식 팁 문화에 대해 몰라서 나에게 물어봤었을 정도였다.
결제가 진행되는 그 순간에 나는 마음 속으로 어디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웨이터가 11유로라고 말했고, G가 (팁을 더한 금액을 따로 부르지 않고) 카드를 내밀었고, 아저씨가 단말기에 11을 적었고, 아, 손놀림에서 못마땅함이 느껴지고, 카드에 적힌 이름도 이탈리아계, 카드 회사도 이탈리아계 그러니까 팁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건 동양인인 내가 아닌게 확실하고, 결제가 승인되는 중이고, 영수증이 나오고, 아 어쨌든, 결국 팁은 없었던 것이다. 웨이터는 카드를 돌려줄 때에 테이블에 던지듯이 내려놓는 것으로써 불쾌를 표현했던 듯하다. G가 아닌 내가 그랬다면 어땠을까. G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상상이라도 할까.

2차는 좀 더 젊은이가 많고 좀 더 인싸력이 충만한 공간이었다. 독일인들의 '밤사' 같은 곳인데, 우리가 맨 처음 저녁에 함께 놀았을 때 어쩌다가 들어갔던 그곳에 기념 삼아 다시 가자는 제안에 흔쾌히들 가게 된 것이다. 독일인들이 90년대 감성의 독일 노래들을 대화도 힘들 정도로 틀어놓고 떼창하고 춤추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역시 동양인은 없는 공간이다.
추억이 반가운 마음에 그리고 1차를 G가 쐈으니 그것만 낼름하고 빠지기가 민망해 그러마고는 했지만 나의 피해의식이 또 한껏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독일인들이 취한 시간이면 알트슈타트 중심부를 걸어가기만 해도 조마조마한데 그 핵과 같은 곳에 내 발로 걸어들어가다니... 이동하는 길에 다행히도 비가 와 우산을 최대한 낮게 써서 은신할 수 있었고, 동시에 내 자켓이 자라인 것에 안심했다. 바지는 에잇세컨즈지만.. G와 S가 영어로 시덥잖은 말들을 소리 높여 떠드는 소리가 우산 너머에서 들려왔지만 나는 우산만 꼭 잡고 있었다. 우산을 접고 가게로 들어가자니 하하 역시나 시선이 쏟아진다. 신분증 검사를 일행중 나만 당했지만 이 정도는 익숙하지 않음의 문제임을 안다. 맥주를 하나씩 시키고, 역시 나는 4.7유로짜리 500 한 잔을 시켰지만 5유로를 내고, 개중에 인구밀도가 덜한 곳을 찾아 가게 안을 헤맸다. 누구와도 눈을 안 마주치길 바라며 고개를 숙이고서.
자리를 잡고 G와 함께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마침 화장실 관리인이 상주하여 팁을 주게 되어 있는 곳이었다. 외부 화장실들의 경우 입장료 개념으로 지불해야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가게에서 서비스를 이미 구매한 고객들이 이용하는 곳. 필수는 아니지만, 팁문화가 발달한 문화상 으레들 돈을 내는 영역이다. 이번에도 G는 내지 않았고, 나는 냈다. 낼 생각을 못했네 하는 그녀에게 나는, 마치 그날 맨 처음 우반 역에 내리고서부터 술취한 누군가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움츠렸던 마음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했다. 아마 지금 여기에 동양인 나 하나일걸, 동양인 대표로서 냈어.

얼마전 엄마가 왔을 때 남편과 셋이 뮌헨 여행을 다녀왔다. 뮌헨은 아주 사소한 이유로 내게 중요한 공간 중 하나인데, 8년 전 옥토버페스트에 갔을 때 페스트비어에 실망하던 차(도수가 높아서 소맥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소맥의 맛을 몰라서..) 같은 테이블을 나눠 쓰던 독일인들이 추천해준 아우구스티너(Augustiner)의 밀맥주가 내 인생 맥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맥주가 이런 맛이 날 수도 있구나 느꼈고, 그때부터 다양한 맥주를 찾아 마시기 시작했으니, 이 맥주가 아니었으면 내가 남편을 만나지 못했었을 것이라는 나비효과식 의미부여를 했던 것이다.
뮌헨에 도착하고서 첫끼를 아우구스티너의 브로이하우스에서 하기로 했기에 구글맵에서 위치를 검색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살펴본 '후기'란이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내가 한국인임을 인식한 구글은 친절하게도 한국인들의 후기만 모아서 보여주었는데 인종차별 당했다는 사람이 반, 괜찮았다는 사람이 반이었던 것이다. 동양인 전담 서버가 있어서 동양인들만 한곳으로 몬다거나, 옆 테이블보다 현저히 늦게 서비스한다거나, 주문과 다른 음식을 주면서 니가 시킨 거 맞으니까 먹으라고 했다거나..
그때부터 공복인데도 속이 얹힐 것만 같았다. 나와 남편 단둘만이면 그런 일을 당해도 욕하고 말면 된다. 하지만 엄마를 모신 입장 아닌가.. 괜찮았다는 의견도 인종차별당했다는 의견만큼 있었지만 어쨌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애시당초 뮌헨에 가자면서도 걱정이 컸다. 바이에른의 후예들은 그만큼 콧대가 높아서 그들의 거점 뮌헨은 인종차별이 심한 도시 중 하나이며 피해를 입어도 주변으로부터 구제받기 쉽지가 않다는 경험담들이 재독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 눈에 자주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아우구스티너에서는 독일인들 틈의 한 테이블에 앉아 가게 돌아가는 사정과 맞물린 속도로 서비스받았고, 관광하면서도 (아마 관광지 위주로만 돌아다녀서였겠지만) 별다른 일 없이 뮌헨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은 아무래도 머리에서 뗄 수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팁을 내지 않고 1년째 독일에서 살고 있는 G와 나는 얼마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모국어로 깔깔댈 때에 "칭챙총" 소리를 듣는다.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스쳐지나가던 타인으로부터 인간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 "니하오"를 듣는다.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여기 애들은 애들이어도 가슴이 큰데 너는 니 나이로 안 보이네" 소리를 듣는다.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니하오'를 쌩까고 지나갈 때에 허리를 붙잡힌다.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잔돈이 모자라 거스름돈을 적게 주는 데 대해 아무런 양해의 말도 듣지 못한다.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길 가는 데 고층에서 누가 물을 뿌린다.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미용실을 예약하고도 폐점할 때까지 머리만 감은 채로 방치당한다.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누군가로부터 날아오는 맥주병을 피해야만 한다.

"니하오"에 대해 한인들은 '당했다'라는 서술어를 연어로서 덧붙인다. 동북아인이 지나갈때에 인간적인 교류를 나누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그저 내뱉기 위해 지껄이는 말들 중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이 '니하오'이기 때문이다. 내가 유럽대륙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던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곤니치와'가 대세였는데. 합장하고서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라고도, 길을 막아서며 포권을 취하기도, 길맥하는 자리를 스쳐지나가며 '나마스테'라고도 내뱉는다. K-POP 덕분인지 '안녕하세요'도 두 번쯤 들어봤는데 그때마다 이를 고마워해야할지 황송해해야할지 묘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물론 일차적인 감정은 어찌됐든 불쾌감이다. 그냥 침 뱉듯이 생리적으로 하대해도 되는 대상으로 인식된 것뿐이니까. 그 말이 나름 치레한답시고 '인삿말'일 뿐. 우리가 예의를 차릴 때에 말을 고르며 쩔쩔매다가 정적의 순간을 맞는 것을 생각하면 완벽한 반례가 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니하오'와 그 비슷한 무언가쯤을 듣고도 아주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았던 적은 내가 시내 명품가 구석탱이의 마이클코어스에 구경 갔을 때 내가 중국인인 줄 알고 친절하게 응대하려던 중국계 추정 직원의 '니하오'뿐이 없었다.
이 '니하오 당함'은 한인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논란이 되는 소재다. '니하오를 당해' 불쾌하다며 경험담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친해지고 싶어서 인사한 것뿐이니 올바른 인삿말을 알려주면 된다'라는 ^친절한 교정^이 종종 가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로 이어지는 이 설교가 오만한 것은 상황을 직접 겪고 불쾌감을 느껴 하소연하는 피해당사자에게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네가 느낀 불쾌감은 잘못 인식된 것이니 다른 방향으로 느끼거라, 라는 훈계가 되는 탓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감정 코칭이던가. 가장 논란이 되는 '니하오'에 대해서 말고도, 인종차별에 대해 걱정하고 분노하는 물결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라는 훈계들은 너무나도 차고 넘친다. 시발.

이런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게 뿌듯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에 날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건 나 스스로도 너무너무 피곤한 일이다. 혹시라도 방금 저 점원이 거스름돈을 덜 준 게 내가 동양인이어서는 아닌지, 혹시라도 방금 우리 자리 의자만 정리한 게 인종차별은 아닌지,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사위를 매번 경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거 인종차별이야?" 하며 친구들과 웃곤 하지만 이것은 실상 골계미에 불과하다. 유학생 커뮤니티에는 종종 갖은 인종차별 사례들이 쏟아지는데, 그런 간접경험을 토대로 맥도날드에 갈 때마다 무례를 당하는 건 아닌지 스타벅스에 갈 때마다 내 컵에 찢어진 눈 이모티콘이 그려지는 건 아닐지 마음을 졸이게 된다. 마음을 졸이는 것만이 심정적 피해의 끝이라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혹시라도 정말 피해를 당한다면? 그냥 에이 시발 욕하고 말지, 직원에게 항의를 넣고 매니저를 부르고 본사에 항의메일을 보낼지, 피해를 당한 것도 아닌데도 벌써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항의를 넣자니 짧은 독일어로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감도 안 잡히고, 그 번거로움을 핑계 삼아 침묵하자니 '농담'으로써 인종차별이 공고해지는 데에 비겁하게 한몫했다는 자책감이 나를 괴롭힐 것만 같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중앙역 맥도날드에, 혹은 시내 스타벅스에 가기로 마음먹고서 무사히 메뉴를 타오기까지 마음 속에서 휘몰아쳤을 뿐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나는 이 번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혹은 독일 사회에 더 잘 녹아들려고 노오력을 하건 말건 간에, 내가 전형적인 동북아인의 골상과 피부색을 한 순간 가능성이 생겨버린 것이니까. 잘못은 인종차별한 그 점원 말고는 누구에게도 없는데 이 번민은 피해자 그리고 그와 동일시하는 모든 사람들의 몫으로 남는다.

독일에 오고서 나의 정서에 생긴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이러한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을 당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간다는 감각. 나는 이등도 못 되는 삼등 시민이라는 감각. 한국 사회에서 나의 자아를 포장해주던 직업이라든가, 학벌이라든가, 패션 스타일이라든가, 사회적 지향이라든가 하는 그 모든 차며 포며 하는 것들이 죄다 떼어지고 표백된 채로 '동북아시아인 여성' 기표 단 한 가지만 남아버린, 발가벗겨진 듯한 감각. 이 감각이 진해질 때면, 어디를 어떻게 하고 다닐지라도 내 외관이 어떠한 대표성을 띤다는 생각 없이 무감히 다녔던 한국의 거리가 아득히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아주 도덕적인 공간이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나부터가 "요즘 학교에 중국인 많아졌어"를 떠들던 사람이니...)

여기에 오고서 알게 된 한 친구는 학부와 대학원을 모두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나왔다. 한국에서 잠깐 일했지만, 독일 남자와 결혼하면서 독일로 건너왔다. 나는 늘 인간은 20살부터가 한 살이라고 말하고 다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을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으로 한정하는 편협한 사고긴 한데 아직 교정할 고민의 여력이 없다) 그렇게 치면 그녀는 대부분의 삶을 유럽 커뮤니티의 타자로서 살아온 것이다. 유럽 거주 초심자인 내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우리 사이에서 흐르던 미묘한 기류는 결국 그녀가 평생에 걸쳐 이미 차별을 내면화한 때문으로 판명고 말았다. 어느 커뮤니티에서나 이질적인 그룹이 있는 이상 차별은 당연한 거고, 유럽인들 사이에서도 차별은 존재하고, 심지어 이민자 커뮤니티가 큰 지역에 가면 ^순수 독일인^들도 차별을 당한다... 그녀의 현실론은 관광객도 시민도 아닌 내게는 체념이나 순응 정도로 보이고, 나의 분노나 한풀이는 그녀에게 신입생의 철 모르는 패기 정도로 보일 것이기에 우리는 이런 주제를 어쩔 수 없이 입에 올려도 그냥 적극적인 피드백을 하지 않음으로써 주제를 종료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그녀가 동의하는 지점이 있다면 어쨌든 우리는 '차별을 당한다'라는 것이다. 익숙지 않은 골상을 보면 '니하오' '칭챙총'을 내뱉게 만드는 그 생리적인 혐오가 어쨌든 존재한다는 것이다. 10년을 넘게 산 그녀와 끽해야 1년 산 내가 진단하는 의미는 다를지언정, 어쨌든 우리는 존재하는 그 비참을 어떻게든 인식하고 있다. 구주에서 살아가는 동북아인들이라면 어떻게든 조금씩은 감각할 그 존재. 개보다도 못하다는 동양 남자들이라도, 개보다는 나은 이유가 옐로피버 때문인 동양인 여자들이라도. 나에 비하면 '니하오'류의 것들을 훨씬 덜 당하는 독일인 평균 신장에 맞먹는 남편도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길을 나서고, 이 도시의 아시아인들은 밤이면 이 도시의 홍대이자 서면이자 상무지구인 알트슈타트가 아니라, 아시아 식당이 몰려 있는 오스트슈트라세(Oststrasse)로 몰려든다.

다행히도 내가 어느 학제에 편입되었거나 정규직으로서 취직을 하지는 않은 덕에 좁은 커뮤니티 안에서 집약적으로 가해지는 피해를 입은 적은 없다. 학교 내에서 연구소 내에서 사무실 안에서 농담으로든 행정으로든 포상 과정에서든 어떻게든 동북아인들은 차별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한다. 그 어떤 인종들보다도 가장 낯선 외모 때문에. 아프리카인, 스칸디나비아인, 근동과 서아시아의 그 누구에 비하면 명백히 미지의 인종들이니까.
그렇지만 내가 피해를 당할 수 있는 하늘 아래서 살아간다는 감각은, 어쨌든 분명히 의미 깊은 것이다. 당장에는 여기 머물지언정 수년 뒤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덕에, 나는 독일 사회의 일원으로 녹아들고자 아등바등하지 않을 수 있마음 편하게 적당히 거리를 두고 이런 피해의식을 정리해볼 여유도 갖는다. 적당히 체류하고 적당히 언제라도 발뺄 수 있는 한걸음 물러난 시선. 그래서 나는 체념하지도 못하고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이 삼등 시민으로서의 기류를 체험하고 있다.


사람마다 자신의 경험이 우선인 것처럼 지금 나의 고민도 수년 뒤 본다면 그녀에게서와 같이 철모르게 느껴질 수 있다. 몇 년 뒤 지금은 짐작 못할 경로로 이주했을지 모르는 나에게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이 모두를 기록으로써 박제하고픈 것은 지금 내게 기회가 주어진 이 '감각'을, 세월에도 타자에게도 빛 바래뜨리지 않은 채 언젠가 다시 만나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 2010년대의 끄트머리서 인종차별의 약자로 살아가고 있다. 내게 많은 것을 보장하던 고국의 수식을 다 벗어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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