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의 자전거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3주째가 되니 조금 서툴지만 독립문 공원을 혼자서 한바퀴 돌 정도가 됐다. 한번도 멈추지 않고 한바퀴를 온전히 돌고나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내가 찍어준 동영상을 반복 재생하며 스스로 대견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다 배운 거 같은데! 이젠 따릉이 2대 빌려서 어디 같이 가볼까?"
"아직 안돼! 사람들한테 부딪힐까봐 무서워."
"광화문 정도는 충분히 갈 수 있어. 나만 따라오면 돼"
"싫어, 무섭단 말야!"
역시 겁이 많은 게 문제였다. 놀이공원에 가면 바이킹은커녕 그냥 천천히 돌아가는 대관람차도 무서워하는 와이프였다. 연애할 때 처음 대관람차를 탔는데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이런 거 타고도 우는 사람이 있나' 싶었지만, 웃지도 울지도 못할 진짜 웃픈 상황이었다. 그런 사람이 케이블카는 어떻게 타는 지 모르겠다.
"그래도 실전만한 연습이 없는데..."
"그럼 다음 주에 도전해볼께"
와이프한테 자전거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와이프보다는 오히려 내가 '따릉이' 애호가가 됐다. 시내에 약속이 있으면 어김없이 따릉이를 이용했다. 버스나 지하철보다 편리했다. 기다리거나 갈아타는 번거로움도 없고 광화문이나 을지로까지 불과 20분 정도면 갈 수 있으니 시간과 비용, 건강, 환경까지 모든 걸 고려할 때 가성비가 최고였다. 다만, 자전거 전용도로가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곳에선 자동차나 보행자와 간섭이 생겨 서로가 불편했다.
프랑스 파리의 안 이달고(Anne Hidalgo) 시장은 지난해부터 시내 노상주차장을 모두 없애고 주행속도를 30km/h로 제한하는 한편, 놀랍게도 4차선 도로의 1개 차로만 남기고 3개 차로를 모두 자전거 도로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표지사진 왼쪽, 오른쪽은 서울). 시민들이 시내에 자동차를 갖고 나오면 종전보다 더 불편하게 함으로써 자동차 이용을 줄인다는 정책인데, 파리 시민들은 안 이달고 시장을 지지했다. 서울시내 주요 도로를 저렇게 바꾼다면 과연 서울시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 지는 궁금하지만, 실제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저런 파격적인 공약을 내건 후보가 나오면 좋겠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나를 교회에 데려갔던 친구는 지금 의료기기 사업을 하는데, 최근에 와이프가 골프를 배워 부부동반으로 같이 골프장에 갔단다.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탁구와 배드민턴을 제치고 골프를 선택했다고 한다.
"와~ 내 로망이 부부동반으로 골프를 치러 가는 건데! 제수씨가 운동을 좋아하나봐?!"
"아니, 스포츠 안좋아해. 움직이는 공을 너무 무서워 해"
"그래? 그런데 어떻게 골프를 치게 됐어?"
"탁구나 배드민턴은 가만 있어도 공이 날라 올 수 있지만 골프는 본인이 공을 치기 전에는 절대 공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알려줬지."
"...?!"
그런가? 잠시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다. 그래도 설득논리가 너무 단순하다.
더 흥미로운 건 육사를 나와 줄곧 직업군인으로 살고 있는 친구였다. 작년에 6개월 가량 와이프에게 자전거를 가르쳤는데, 도저히 안돼 가르치는 걸 포기했단다. 대신에 2인용 자전거를 사서 와이프를 뒤에 태우고 주말마다 서울시내와 한강변 곳곳으로 자전거 라이딩을 다닌다고 했다.
"진짜 제수씨가 자전거를 못 탄다고? 니가 가르치다 화내서 그런 거 아니고?!"
"아녀. 운동신경이 무뎌서 아무리 해도 안되더라고!"
"그럼, 제수씨는 뒷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거야?"
"어, 20년 넘게 아들 둘 키우느라 고생했으니, 내가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뒤에 태우고 돌아다니는 거지."
두 친구 모두 와이프가 전업주부였다. 반면에 와이프가 잘나가는 드라마 작가인 은행원 친구는 대구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월말부부란다. 우리 와이프도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다. 맞벌이 부부는 같은 취미를 갖기란 쉽지 않은가보다.
2~3년 전 와이프에게 골프를 배우게 하려고 온갖 감언이설로 꼬신 적이 있다. 마지막에 와이프가 내건 조건이 특이했다.
"당신 돈으로 사지 말고, 누구한테 골프채를 얻어오면 배워볼게"
"내가 새 걸로 사준다니까 왜 얻어와?!"
"아깝잖아. 얼마나 칠 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얻어오면 생각해볼게"
그 후 약 1년 가까이 주변에 부부동반으로 골프를 치는 커플 중에 누가 골프채를 바꾸지는 않는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드디어 어느 선배의 형수님이 골프채를 바꾼다는 소식에 염치불구하고 빼앗다시피 골프채를 얻어왔다. 비로소 와이프가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코로나19로 휘트니스센터가 몇 개월마다 문을 닫고 열기를 반복하니 흐름이 끊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부부동반 골프의 꿈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어느덧 다시 주말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몇 시에 타러 갈 거야?"
"근처에 어디 학교 운동장 같은 데 없어? 사람 없는 곳 말야. 마음껏 좀 타 보게"
"흠... 아마 있지 않을까, 한번 찾아볼게."
와이프는 까다롭다. 9월로 출국날짜도 정해진 마당에 과연 독일 가기 전에 와이프랑 한강으로 자전거 라이딩을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