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천운영의 소설 「바늘」은 당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크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섬뜩하고 감각적인 문체도 놀라웠지만, 우리 문학사에서는 처음으로 ‘문신’이라는 이색적인 소재를 정면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바로 문신하는 여성, 그러니까 사람들의 몸에 문신을 해주는 여성이었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남성의 몸에 바늘로 한 땀 한 땀 문신을 새기는 모습을 너무나 실감나고 섬세하게 묘사한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조폭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문신’에 대한 편견이나 금기를 여지없이 깨트렸다고 할까.
지난 16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타투업법’ 제정을 위한 퍼포먼스를 보면서 「바늘」이 떠오른 것은 당시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등이 훤히 드러나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등판에 ‘타투’(문신)를 한 모습을 보란 듯이 공개하다니, 타투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도발이나 다름없는 퍼포먼스였다.
류호정 의원은 우리나라 타투 인구가 300만을 넘을 만큼 대중화됐고, 타투도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 패션과 같은 ‘외모의 일부’라고 주장하지만, 문신은 아직 우리 사회가 금기시하는 것 중에 하나다. 이런 민감한 사안에 대해 류호정 의원은 정면으로 문제를 던지는 방식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비난 일색이지만 포털 뉴스에는 엄청난 댓글이 달렸고, SNS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류호정 의원은 정의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을 때부터 잡음이 있었고, 당선 후에도 숱한 논란을 몰고 다녔다. 이번 ‘타투업법’ 기자회견에서도 “누군가는 제게 ‘그런 거 하라고 국회의원 있는 게 아닐 텐데’라고 훈계합니다만, 이런 거 하라고 국회의원 있는 거 맞습니다”라며 일부러 엇나가는 듯한 언사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탓에 내 주변엔 정의당 지지자를 찾기도 쉽지 않지만, 유독 류호정 의원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좌충우돌 류호정 의원은 이미 지난 8일 ‘BTS의 몸에서 반창고를 떼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 때문에 사과까지 했나 보다. 정치에 BTS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류호정 의원은 “타투인구 300만 시대, 최고의 기술력, 높은 예술성을 지닌 국내 타투이스트들이 세계 대회를 휩쓸고, 세계 무대에서 뛰어난 아티스트로 추앙받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자유로운 개인의 개성과 창의를 존중하는 세상의 변화에 ‘제도’가 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류호정 의원은 타투가 ‘산업’으로 육성되지 못했고, ‘노동’으로 보호받지 못했으며, 타투를 매개로 한 경제행위는 ‘세금’이 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타투업법을 통해 타투행위를 정의하고 면허의 발급요건과 결격사유를 규정해 신고된 업소에서, 자격이 인정된 타투이스트만 시술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타투업자에게 위생과 안전관리 의무, 관련 교육을 이수할 책임도 부여하겠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타투를 선호하지 않고 타투업에도 문외한이지만 그 주장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운동선수나 연예인 말고도 주변에서 타투를 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니 차제에 타투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함께 입법까지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런데 류호정 의원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더욱 흥미로운 건 류호정 의원과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홍준표 의원이 이 법안 발의에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류호정과 홍준표의 조합이라니! 갑자기 류호정 의원의 행보에서 놀라움보단 20대의 톡톡 튀는 젊은 감성과 유쾌함이 느껴졌다. 홍준표 의원은 류호정 의원 못지 않게 안티가 많다. 정치적으로는 정의당과 대척점에 있기도 하다. 그런 홍준표 의원을 찾아가 동참을 요구한 20대 젊은 의원의 패기와 재기발랄함도 유쾌하거니와 류호정 의원의 제안을 내치지 않고 흔쾌히 받아준 홍준표 의원의 ‘대인배’ 다운 넉넉함도 유쾌하다.
류호정 의원의 퍼포먼스에 대해 사람들이 비난 일색인 건 유감이다. 유머에 인색하고 작은 잘못이나 돌출행동도 용인하지 않고 자신과 조금이라도 생각이 다르면 적대감을 드러내는 건 우리 사회가 아직도 일종의 ‘엄숙주의’나 '획일성'에 빠져있다는 반증이다.
류호정 의원이 말하는 "자유로운 개인의 개성과 창의를 존중하는 세상의 변화"에 걸맞게 20대의 젊은 의원의 유쾌한 도발에 좀 더 관대해 질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