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부부가 그렇듯 와이프와 난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음식 취향이 다르고 좋아하는 영화도 다르고 치약 짜는 방식도 다르다. 와이프는 자투리 비누는 꼭 새 비누에 붙여 쓴다. 화장실을 쓰고나면 어김없이 불을 끈다.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어릴 때 가난했단다.
와이프는 오래 전부터 머그컵, 텀블러, 에코백을 쓴다. 우리나라에 - 아니 내가 살던 강서구에 - 대형 쇼핑몰이 생긴 게 2000년대 초반이니 그 때부터인가보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이산화탄소 이런 거 때문이 아니라 절약 습관이 자연스럽게 '친환경'으로 승화됐다고 할까.
나는 절대 머그컵 따위는 쓰지 않았다. 종이컵이 너무 편하다. 언젠가 누가 선물로 준 머그컵은 한번도 씻지 않고 계속 쓰다가 너무 더러워져서 결국 버렸다. 텀블러는 들고 다니기 번거롭다. 가방도 귀찮아서 안 들고 다니는 판에 언제 마실 지 모를 커피 때문에 그런 물건을 손에 들고 돌아다닐 순 없지 않나. 에코백은 개뿔, 비닐봉투가 최고다. 요즘은 마트에서 종량제 봉투에 넣어준다.
초등학교 3학년 새학기 개학하는 날이었다. 2학년 때 쓰던 노트들에 안쓰고 남은 자투리를 잘라서 연습장을 만들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내 옆을 지나다 연습장을 발견하고는 한마디 했다.
"구질구질하게 이게 뭐야?"
구질구질하다고 했는지, 구차하다고 했는지, 궁색하다고 했는지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난다. 뜻은 몰라도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단어였다. 그날 나는 생애 최초로 만든 재활용 연습장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시는 그런 구질구질한 짓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와이프가 시장보러 가는 길에 인왕산 둘레길에 근사한 북카페가 새로 생겼다고 같이 가잔다. 뒷문을 나와 20분 정도 걸으니 비교적 탁 트인 전망의 카페가 나왔다. 기후변화나 환경에 대한 책이 의외로 많았다. 두 권을 샀다.
"웬 일이야? 그런 책을 다 사고?"
"아... 칼럼에 참고하려고"
"아니 에코백 들고 다니는 거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 그런 쪽 글을 쓴다고?!"
기후위기와 탄소 제로에 대한 웬만한 아젠다와 솔루션은 이미 책에 다 있었다. 며칠 전 후배가 비닐봉투 - 요즘은 영어식으로 플라스틱백 -이 개발된 게 종이봉투 사용을 줄이기 위한 거라는 얘기가 기억났다. 당시엔 종이를 만들기 위해 무분별하게 나무를 벌목하는 게 문제였단다. 그랬던 플라스틱이 이제는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되다니. 와이프에게 세상이 참 아이러니컬하지 않냐며 얘길 하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뭐든, 적당히 해야지. 우린 벌써 옛날부터 아나바다했어"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맞다. 2000년 초반부터 와이프는 아나바다했다. 플라스틱 문제 해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심지어 같이 사는 사람은 20년전부터 실천하고 있었다니. 와이프 손에 들린 에코백을 받아들고 시장을 향했다.
이 글은 <IMPACT ON> 1월23일자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