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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Oct 04. 2022

낡은 서랍 속의 물감

그림을 그리다

뒤척이다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여행을 갔다. 누구랑 갔는지는 보이지 않지만 함께 동행한 사람이 있다. 바닷가 어딘가 도착한 것 같은데 차는 바닷가로 가는 길로 접어들지 않고 길 왼쪽 오솔길로 접어들더니 오래된 건물 앞에 멈춘다. 낡은 상가 같은데 반쯤 비어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 둘러보니 해가 잘 들지 않는 어둑한 곳에  비어있는 점포 앞이다. 이사 나간 점포 여기저기 낡은 의자, 물건을 진열했던 선반들이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빈 점포 옆에 살림을 사는 중년부부가 문을 드르륵 열더니 쓱 한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집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빈 점포를 주거공간으로 꾸미고 사는 것 같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상가 2층 복도는 어두컴컴했다. 중년부부가 사는 옆집 앞 복도에 살갑게 가꾼 화분이 조르륵 놓여있는데 고추가 대롱대롱 실하게 열려있다. 사람사는 온기가 느껴진다. 식물이 주는 생명력을 발견한 반가움이 느껴진다. 옆집 화분들 옆에 내가 좋아하는 토기 화분이  겹겹이 포개있었는데 언제라도 가져다 꽃을 심어도 될 예쁜 토분이었다. 주인이 왜 가져가지 않았을까 생각될 만큼  깨진 곳 없이 말짱한 화분이었다. 옆에는 조그마한 모래 놀이터에 소꿉놀이 장난감이 그대로 있었다. 낡은 2층 점포 앞에 모래놀이이터라니! 아이가 살았던 것 같다.  이 집 아이가 조금 전까지 놀았던 것 같이 모래 놀이터는 오래 버려진 느낌이 전혀 없다. 놀이터 양옆에 나무 선반이 있었는데 복주머니처럼 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놀이 장난감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살짝 열어보니 공깃돌, 딱지, 모래 담는 주전자, 모래삽 같은 것들이  담겨있다. 마치 모래 놀이터에서 놀 새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깨끗하고 아담하다.



이사 나간 텅 빈 상가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는데 이상하게 익숙한 가게처럼 느껴진다. '어쩜!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인가?'하는 생각이 번뜩 든다. 어린 시절 우리는 집이 따로 없었고 드르륵 올렸다 내렸다 문을 열고 닫는 샷시문을 통해 가게로 들어가 그 안쪽에 방과 부엌이 있었다.  동생들과 함께 살았던 가겟집은 늘 어둡고 컴컴했다. 긴 복도처럼 컴컴한 가게를 걸어들어가야 방이 있었다. 물론 가족이 함께 잠을 자는 방과 딸린 방 하나 밖에 없었다. 공부방이나 놀이방 이런 건 없었다. 텅 빈 가게에는 쓰다 버린 목장갑, 통조림 깡통 이런 것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문에는 오래 비워져 있었는지 거미가 줄을 쳐 손으로 휘휘 젓고 다녀야 했다. 옛 기억에 방 안쪽으로 창고 같은 공간이 있었던 것 같다.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쓰던 책상과 의자가 겹겹이 쌓여있다. 처음 온 곳이지만 낯설지 않은 가게라 꿈을 꾸면서 뭔가에 홀린듯한 몽롱함이 느낌졌다. 스윽 훑어보다 낡은 책상 서랍에 시선이 멈추었다. 낡은 책상 옆에 커다란 도화지를 넣어두는 넓은 서랍이 눈에 띄어서 열어봤더니 반쯤 쓰다만 물감이 한가득 들어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색도 있고 자주 쓰는 색의 물감은 여러 번 써서 반쯤 눌려져있다. 물감을 보고 환호성이 터졌다. '와우, 이렇게 많은 물감은 처음 보는데!'


어린 시절 부모님이 장사를 하는 바람에 학교에서 준비물을 가져오라 할 때 가장 신경질이 날 때가 미술시간이었다. 크레파스, 그림물감 뚜껑을 열면 제대로 된 색도 없지만 반 이상 어디 갔는지 비어있어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었다. 있는 색 세 가지 정도 색으로 늘 똑같은 그림을 그려서 내고 만 기억이 난다.

꿈속처럼 그렇게 많은 물감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꿈속 서랍에는 당장이라도 쓸 수 있는 물감이 한가득 들어있다. 3-40가지 색의  물감이었으니 아마 전문가용 물감처럼 보였다. 세상에 내가 살던 어린 시절 가장 결핍되었던 놀이와 장난감, 미술도구가 가득한 낡은 점방을 꿈에 방문하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참고로 부모교육을 오래 하면서 사람의 내면 변화에 관심이 많아 이후로도 비폭력대화를 배우면서 나의 돌봄에 관심을 갖고 오래 셀프 내면 치유를 해온 상태이다. 최근에 새로운 일이나 난이도가 있어 보이는 일 앞에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고 학령기 7세 때 초등학교 입학식 다음날 손을 들고 화장실 시범을 보인 그날 일을 떠올려 치유하고 공감하는 작업을 했다. 무료 상담 과정에 참여해 그때 그 일을 떠올려 충분히 털어놓고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내면아이 치유 작업을 한 셈이다. 14세 중학교 때 일도 동일하게 작업을 했다. 가족들이 모두 서울로 이사한 지방에 숙모 집에서 반년 동안 떨어져 있었다. 사춘기 나이이지만 분명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어찌어찌 반년을 숙모 집에서 보내고 서울로 전학 오는 날, 나 혼자 전학을 해야 했다. 수업 시작 전 교무실 들러 선생님들께 인사하고 1교시 담임 국어시간 친구들에게 앞에 나가 인사하고 혼자 걸어서 뒷문으로 나오는데 친구들이 창문을 열고 잘 가라고 손짓을 했던 것 같다. 굳게 닫혀있던 뒷문을 수위 아저씨가 열어주었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인사를 뒤로하고 걸어 나오면서 부끄러웠다. 세상에서 혼자라는 깊은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고 그 후로 혼자라고 느낄 때 수치스러웠다. 이 두 사건은 내 인생에 깊은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끼게 했으며 일생 동안 따라다닌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지인 중에 융의 꿈 분석을 공부하고 있는 의사가 있어서 꿈 이야기를 했다. 낡은 가게를 들어가는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자 "혹시 자주 가본 곳'인지 묻는다.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낡은 점방이 내 어린 시절 집이었다고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지인의 질문에 "아! 어린 시절 자란 그 집을 방문했구나" 하는 생각이 확실해졌다. 꿈에 본 서랍 속 쓰다 만 그림물감, 소꿉놀이가 고스란히 있던 모래 놀이터, 언제 심어도 괜찮을 예쁜 토분 모두 내가 좋아하는 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유년 시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놀이를 이제서야 꿈속에서 만난 거다.

"앞으로 노는 기쁨을 잘 누릴 것 같아요" 유년 시절 놀지 못한 놀이를 창조적으로 놀 수 있길 바라며 행복한 모습 기대할게요" 지인은 축하의 말을 해주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풍경 스케치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유년 시절 결핍된 놀이를 대변하는 놀이이다. 한 번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는데 꿈속 유년의 집에서 그림물감을 선물받았다. 그림 그리기가 기쁨이 될 거라는 생각은 물론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적이 없다. 스케치를 하면서 물감을 사야 했다. 물감 값이 10만 원 이상 고가여서 계속 미뤘다. "와우, 꿈속의 그림물감을 현실에서 받다니" 마침 내 생일이 가까워서 두 아들이 돈을 모아 그림물감을 사주었다. 꿈에서 본 물감이 지금 내 손에 들어와 그 물감으로 채색을 하고 있다. 물감 색을 섞으면서 '윈저엔 뉴턴' 수채화 물감의 맑고 투명한 색에 감탄하고 있다.


이후 내게 풍경 스케치는 헤르만 헤세가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다는 모든 감탄을 동일하게 느끼는 '멋진 놀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 홀로 외로워하던 그 친구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으니 얼마나 기쁘고 살가운 일인지 모른다. 스케치하는 동안 어린 내가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뭉클하다. 놀이를 모른 채 즐거움, 기쁨으로 삶을 살지 못한 어린 나에 대한 연민으로 시간을 보낸다. 아이다운 즐거움을 잊은 채 세상에서 사랑받는 사람으로 사느라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는지 모른다. 이제 좀 쉬고 싶다. '놀이의 기쁨'과 고요한 아름다움에 침잠하기, 자기 공감과 몰입하는 시간을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어떻게 찾은 나의 놀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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