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정하 Oct 04. 2022

자신의 기쁨을 위한 '멋진 놀이'

그림을 그리다


'요즘 내가 일을 하는 사이사이에, 뭔가 아름다운 것을 누리고 싶거나 잠시 급박한 일에서 벗어나 의심의 여지없이 가치 있는 무언가에 침잠하고자 할 때면, 시를 짓지 않고 그림을 그립니다. 마흔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그리기는 내게 있어 시 쓰기와 거의 똑같은 일이며 종종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내가 추구할만하다고 여기는 유일한 영혼의 상태는 사욕이라곤 없는 내적 공감과 몰두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화가 헤세. 이레 출판사. 1917년 7월 4일 한스 이부리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헤세는 아름다움을 누리고 싶을 때, 의심의 여지없이 가치 있는 무언가에 침잠하고 싶을 때, 사욕이라곤 없는 내적 공감과 몰두의 상태에 머무르고 싶을 때 그림을 그린다. 그는 어느 날 한 친구의 정원에 가서 꽃을 꺾어다 화병에 꽂고 다채로운 빛을 내는 꽃에 물을 주면서 무척 즐거운 감동을 느낀다. 그러다 활짝 핀 꽃의 죽음을 예감하게 되고 부드럽고 살찐 봉우리로 기우는 꽃을 보면서 아름다움이 얼마나 일회적이고 무상한 지 화들짝 놀라 서둘러 열렬한 마음으로 그림으로 그려야 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취미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림을 그린다고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이유가 있다. 감탄사를 넣은 짧은 문장 몇 줄 쓴다고 시를 쓴다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책을 두 권 썼지만 작가라고 나를 소개한 적이 없다. 글쓰기에 관해서 아직 자신이 없다. 아마도 베스트셀러라는 소리를 들어야 작가로 소개할지 모르겠다.

헤세도 자신을 화가라고  부른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어 했지만  나이 마흔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화가가 되려고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다. 헤세에게 그림 그리기는 아름다움 자체였으며 고요한 침잠과 내적 공감, 몰두의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멋진 놀이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을 위해  '멋진 놀이' 하나쯤은 쟁여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삶에서 이룬 성취가 크다 해도 나이 듦이 주는 쇠락의 의미를 견디고 수용하는데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 오직 자신의 기쁨을 위한 '멋진 놀이'를 통해 고요한 침잠을 누릴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자신과 만나 다정하게 다독다독 대화 나누며 마음을 다독일 수 있다면 그 시간은 분명 오랜 벗과 살가운 대화를 나누는 교류의 시간일 거다.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바쁜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그리는 행위에 몰두하는 시간을 통해 회복되고 삶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일인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스케치가 아니라서  온전히 그리는데 집중하는 '몰입의 기쁨' 선물을 받는  같다.  대개 저녁을 먹고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일로 하는데 운동으로 러닝머신을 뛰고 나면 체력과 의욕이 오히려 생긴다.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스케치를 주로 하는데 어느 날은 스케치에 채색을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다른 사람의 그림을 따라 그린다. 1 1 그림 그리기처럼 그리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반복은 피한다.  무의식적인 반복은 그리는 기쁨을 느끼기보다 의무처럼 해치우게 되는  같아 싫다.  '그리고 싶은 마음'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싶은 마음' 있는지를 가장 먼저 살핀다. '몰입의 기쁨' 다시 느끼고 싶다. 처음 글을    쓰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늘 마음은 나 조차 잊을수 있는 몰입의 시간에 가 있다. 그 자체가 기쁨이다. 그림을  그리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온전히 그리는 행위에서 기쁨을 찾고 꽃과 나무와 하늘이 주는 색감을 감각으로 느끼고 색을 가지고 노는 놀이로서의 그림 그리기에 침잠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서다.





쇠락의 시기로 접어들 나에게 '의심의 의지 없이 가치 있는 무언가에 침잠할' 즐거운 놀이 하나쯤 선물하고 싶다. 빠르게 사그라질 빛나는 생의 기쁨을 붙잡아둘 방법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사람이 아니어도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 줄 '멋진 놀이' 하나쯤 없는 인생은 얼마나 애잔할까 싶다.


운동을 다녀와서 손바닥만  스케치 북에 수채화 채색을 하고 잠이 들면 하루가 충만하게 끝마무리되는 느낌이 든다. 이런 날은 어김없이 렌즈를 빼고 핸드폰으로 일주일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하는데,  수채화 물감 코너에 들러 여러 다채로운 물감  갖고 싶은 색을 아이쇼핑한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색이지만 느낌, 색이 주는 에너지가 모두 다르다. 색이 열렬히 갖고 싶다. 옷이나 보석이 아니라 색을 탐닉한다. 색에 붙여진 이름 또한 들어본  없는 전문용어 같다. ' 다이크 브라운, 울트라 마린, 퍼머넌트  그린'  이런  이름의 생소한  들이다. 색이 주는 느낌이  달라  나라마다 수채화 물감이 갖는 색의 느낌이  다르다.  돈이 있다면 각기 다른 색을 모두 사서 쟁여두고 싶을 정도이다.  잠자다  때도 이리저리 뒤척이다 수채화 물감 색을 탐닉하다가 잔다.

마당에 정원을  사람들의 관심은 꽃과 나무로 옮아갈 거다.  가다 색다른 꽃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 이름을 익히고 꽃씨를 우연하게 얻게   삶의 기쁨을 느낀다. 소중하게 간직하다 이른 봄에 씨를 뿌린  드디어 활짝  꽃을 보는 기쁨은 분명 '의심의 여지없이 가치 있는' 아름다움이다. 헤르만 헤세는 그림 그리기는 물론이거니와 '정원을 가꾼 정원사'로도 유명하다. 헤세는 사그라드는 유한한 삶의 끝을 포착하고 생의 생생한 기쁨을 추구한 위대한 시인인 셈이다.


죽음의 순간까지 곁에 둘 '멋진 놀이' 친구는 당신에게 무엇인가? 좀 생뚱맞고 거창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나의 스케치 그림 친구와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할 수 있길 바란다. 죽음의 순간까지 나의 벗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멋진 놀이' 친구와 잠이 들면 행복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이중섭 화가 그림 '판잣집 화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