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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가은 May 25. 2021

5년차 마케터가 출근하다 말고 퇴사한 이유

10년 뒤에 당신은 어떻게 일하고 싶나요?




"갑자기?? 퇴사한다고??? 어디로 이직하는데"

"지금은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어서.. 밖에서 프로그램 제작도 하고 디지털 마케팅 일도 하려고"

".... 야, 넌 언제까지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건데??? 커리어도 좀 생각해야지"



무슨 소린가.

나는 커리어를 너무 생각해서 탈이다.

하고 싶은 일은 꼭 덕업일치를 이루겠다는 그 생각.


근데 궁금하다.

당신은 언제까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텐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며 살아온

마케터/제작자의 커리어




2021년 4월 5일부로 나는 처음으로 무소속 인간이 되었다. 유치원에 다니고부터 서른이 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늘 어딘가에 소속되어있었다. 물론 자발적으로 강력하게 소속되고 싶은 곳이 존재해왔다. 내가 합격했던 대학교가 그러했고, 생명과학부에서 전과했던 마케팅 학부가 그러하였으며, 5년 반 동안 다닌 두 곳의 회사가 그러했다.


첫 회사로 IT스타트업에 갈 때도 나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곳에서 신입을 뽑지 않자 나는 8년 차 홍보담당 채용에 지원을 했다. 내 지원서를 보면서 어이없었을 텐데 감사하게도 퍼포먼스 마케팅 포지션으로 바꿔서 채용을 해주었다. 1년 반 동안 높은 러닝 커브를 그리던 시기가 지나자 브랜딩 관점의 성장이 필요해졌고, 늘 가고 싶어 했던 동경하는 광고회사로 이직을 했다. 운이 좋았다.


이 곳에서는 다양한 브랜드의 디지털 미디어 플래닝을 했다. 그러면서도 콘텐츠 기획과 제작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혼자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다가 > 내부 프로젝트 TF로 범위를 넓혔고 > 브랜디드콘텐츠팀 제안을 드린 후 > 캠페인제작팀으로 팀 이동을 했다. 너무 좋은 회사여서 더 오래 있고 싶었다. 진심으로. 하지만 내 속에 있는 그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갈증을 해결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뒤죽박죽처럼 보이는 커리어패스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디지털마케팅에서 다방면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해주면 너무 고맙겠다. 실제로 5년 반 동안 나는 퍼포먼스/미디어 플래닝/콘텐츠 기획/제작을 해왔고 팀원들에게 아쉽지 않은 성과를 냈다. (아쉬웠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 그래도.. 퇴사 직후에 3년간 맡았던 클라이언트에게 불려 가 '너랑 일할 때 너무 만족스러워서 그 회사에 일을 더 주게 됐다'는 분에 넘치는 찬사를 받았으니 이것으로 조금은 믿어주면 좋겠다.


원하는 일을 발견하고 가까워져가고 있는데 굳이 잘 달리고 있는 기차에서 뛰어내릴 이유가 있을까. 갑작스러운 퇴사 통보에 주위 사람들부터 디렉터분들까지 다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셨다. 이 시국에 굳이? 정확히 뭐할 건데? 대책은 있어? 밖에서 꼭 고생을 해봐야 할까? 무수히 많은 질문들에 명확히 대답을 할 순 없었지만


나를 회사 밖으로 나오게 만든 질문에는 분명 내 안에 선명한 대답이 있었다.




10년 뒤

너는 어떻게 일하고 싶어?




이 질문을 받아 본 적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아침 7시 반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질문을 받았다. 때는 지하철이 뚝섬유원지를 지나고 있었다. 이 구간에는 모두가 자연스레 창 밖을 보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서는 모니터만 보고 있으니까. 빛이 있을 때 풍경을 볼 수 있는 아주 귀한 시간이다. 지하철이 정거장으로 들어서고 빛이 반전되는 순간 내 푸석해진 얼굴이 창 안으로 비쳤다. 깜짝이야. 그때 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좌> 색감미술관의 사진 <우> 72초tv 오여정 1화의 스틸 컷


10년 뒤 너는 어떻게 일하고 싶어?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이놈의 지옥철 없는 삶 좀 살아보고 싶다였으나 건설적인 대답으로 정리해보면 이러했다.

1.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젝트를 하며 살고 싶어
2. 따로, 또 같이 프로의 동료들끼리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멋지게 해내고 싶어
3. 일을 하면서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선명해지는 그런 일들을 하고 싶어
4. 일 외의 시간을 잘 확보해서 건강한 일상도 영유하고 싶어
5. 아 그리고 낮에는 응구(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싶어

나중에 이 개념이 프리에이전트로 일하는 방식인것을 알게됐다.


10년 뒤 너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 건데?


10년 뒤에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해보고 싶은 일은 많았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일을 더 많이 해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1. 브랜드를 위한 웹프로그램/웹드라마를 만들어 보고 싶어
2. 일에 관련된 개인 프로그램을 연재해보고 싶기도 해
3. 좋아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진행도 하고 싶고
4. 내 얘기가 꾹꾹 담긴 책을 낼 수 있으면 좋겠어
5. 내가 배운 디지털 마케팅으로 더 많은 브랜드를 돕고 싶고
6.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내 브랜드도 만들고 싶지


그럼 지금 상태에서 쭉 10년을 일하면 저렇게 일할 수 있어?


아니. 아니었다. 회사의 소속 유무의 문제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저 일들을 지금 하지 않으면 10년 뒤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분명 이 일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멋진 CD가 되거나 CMO가 되는 것을 선망했다. 물론 되면 좋겠다. 근데 지금의 우선순위는 조금 달랐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건강한 일상이 유지되면 좋겠고, 내 하루를 내가 선택한 일과 사람과 시간들로 채워서 충만히 보냈으면 좋겠다. 보다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하면서도 독립적인 내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내 안에서 얘기했다.


그럼 너는 지금 뭘 해야 하지?


여기까지 독자분들이 스스로를 대입해서 읽었다면 아마 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무소속으로 2021을 살아보겠다는 것이었다. (프리워커나 인디펜던트워커 자유노동자 비스므리한거다.) 대신 딱 8개월간. 언제까지고 회사에 가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조직으로 구성되어 일하고, 내가 조직을 만들기도 하며,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단 8개월간 내게 실컷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하고 싶은 방향의 일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기회. 환상이 깨지거나 현실이 되거나 할 기회. 그리고.. 유치원 이후부터 서른까지 하루도 안 쉬고 무언가를 했으면 8개월 정도는 내 인생에 갭을 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지내도 내가 해온 5년 반의 커리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싶다. 땅에 떨어지는 경험은 결코 없다. 이 시기를 통해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더 명확한 방향성을 정하게 되었다고, 더 밀도 있는 일과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결말을 꼭 들고 오고 싶다. 올해 12월 31일의 이 사람의 결말을 궁금해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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