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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가은 Nov 11. 2021

대수로운 생일

선택할 수 있다면 또 삶을 택할 수 있을까



생일에 축하를 받는 건 여전히 쑥스럽다. 좋으면서 수줍은 감정이 아니라 해석하지 못해 피하고 싶은 그런 감정이다. 제법 나이를 먹으니 태어난 날이 별거냐며 일이나 하자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어 안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오늘 생인인데 뭐해?’라고 묻는 팀원의 말에는 유니크한 을지로 가게에서 연인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고 대답한다. 나는 외톨이가 아니에요 라는 걸 구태여 보여주는 것 같다. 


그날만큼은 멋진 저녁을 보내야 할 것 같고, 좋고 행복한 기분이 유지되어야 할 것 같고, 가족과 지인의 축하와 선물에 감사하면서 나 이렇게 잘 살았다! 하고 시끄럽게 하루를 마감하는 것 같지만. 실은 여전히 자신의 탄생의 의미와 이유를 찾지 못해 끙끙대고, 축하를 건네준 고마운 이들의 마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해 스스로가 답답한. 그런 날이기도 하다.


태어난 날을 마냥 좋아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생일날 먹는 합법적 케이크가 그렇게도 달았다. 누군가의 생일에 초대되면 특별한 사람이 된 것 마냥 우쭐했고, 누군가를 생일에 초대하는 것도 설레고 떨렸다. 9살 즈음에는 같은 반에 나랑 같은 날 태어난 애가 있었다. 이럴 때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같은 날 태어나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나는 그 친구와 그 친구의 무리들과 결코 같은 케이크를 자르고 나눠먹을 수 없는 운명이었다. 


초딩 시절에는 직접 만든 카드에 초대의 말을 적곤 했다. 내 생일잔치에 와줄래? 라고 말하며 같은 문장이 써진 두 번 접은 색종이를 내밀었다. 내심 같은 생일인 그 친구네 말고 우리 집에 와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품었다. 지금 내 카드를 받는 이 친구가 올지 안 올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마음을 두고 있는 그 친구는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



생일날이다. 엄마는 갈색 낮은 상 두 개를 붙여서 긴 테이블을 만들고 분주하게 요리를 한다. 가운데는 내가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가 우뚝 올라서 있고, 하나 둘 좋아하는 음식들로 상이 채워진다. 나는 두목 자리에 앉아 꼬깔모를 쓰고 친구들을 기다린다. 조금 떨린다.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시간이 가까워 올 때마다 엉덩이가 저릿하게 조인다. 혼자 꼬깔을 쓰고, 길게 차려진 생일상에 앉아있는 건, 어쩐지 조금은 불안하고 웃픈 광경이다. 


초인종이 한 번씩 울릴 때마다 심장이 쿵쿵거린다. 내가 와주길 바라는 그 애도 참석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안녕! 하고 경쾌하게 인사를 건넨다. 다들 오다가 문방구에 들러서 급하게 샀거나, 엄마가 곱게 포장해서 보내 준 선물을 하나씩 끼고 입장한다. 행사 순서는 딱히 없다. 그냥 다들 앉자마자 밥도 잘 먹는다. 생일 초를 불고 선물을 받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벌떡 일어나 노래를 한다. 동요를 불렀던 것 같은데, 가지런히 손을 모아 몸을 좌우로 흔들며 불렀다. 부르면서도 속으로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지’ 하며 창피해했던 감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저 때의 기억 이후로, 내 인생에는 조금 일찍 파도가 쳤다. 사는 것이 너무 아프고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집의 가난, 아픈 언니, 가족의 이별. 세상에 내가 존재해서 누리는 행복보다, 나에게 닥쳐오는 시련의 크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상담학을 연계전공했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사실 내가 상담을 받고 싶었거든. 나는 상담을 받을 때마다 선생님들에게 비슷한 말들을 쏟았다.



 "제가 태어나기를 바라거나 선택한 적이 없는데, 저는 왜 삶이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하나요?"



삶이 고달파지자 나는 나의 탄생을 내가 선택하지 못한 것에 억울함을 느꼈다. 부모의 행복을 위해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해 놓고, 이렇게 힘든 삶을 선물해주는 것이 어디 있느냐며. 좋은 삶으로 다시 포장해달라고 떼를 썼다. 삶의 쓴 부분을 일찍 먹고 체한 탓이었다. 그래서 생일이 대수롭지 않았다. 누군들 자신이 삶을 선택해서 존재하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에. 나의 생일도 남의 생일도 시시했다. 그러다 자신의 탄생을 순수하게 기뻐하며 충만한 생일을 보내는 사람을 만나면 질투가 났다. 나는 생일 축하라는 것을 온전히 받지도, 하지도 못하는 가난한 영혼이 되어버린 것 같아 서글펐다.


시간이 오래 지나 벌써 서른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다. 문득 케이크 하나 때문에 순수하게 생일이 좋던 어린 날의 나를 떠올린다. 지금은 케이크도 먹고, 고기도 먹고, 영양제도 먹고, 온몸을 쫙 뻗어 잘 집과 생일잔치에 올지 안 올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평생의 연인도 옆에 있는데. 기쁘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이냐며 반문을 해본다. 아직까지 내 삶의 존재 이유와 탄생의 의미 같은 건 속 시원히 풀지 못했다. 하지만, 삶에 고통보다는 행복의 빈도가 많다는 것을 기억한다. 인정하긴 싫지만, 고통이 있기 때문에 행복이 찾아올 때 더 깊이 누리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시련이 선물이라는 말 나도 참 싫었다. 여전히 너무 잔인하게 느껴져서, 피할 수 있다면 피하라고 외치고 싶다. 그치만 나에겐 그 선물이 도착했고, 충분히 펼쳐서 슬퍼했다. 그래서 다른 좋은 선물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조금은 자라났다.


그래서 나는 대수롭지 않은 생일을 대수롭게 보내려는 노력을 한다. 뻔하지만 연인과 레스토랑에 가는 것, 가족과 지인의 축하에 굳이 호들갑 떨며 고맙다 외치는 것,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 멋진 풍경을 보는 것. 지인의 생일엔 작은 메세지와 선물에도 적당한 온도의 마음을 담는 것. 매년 다가오는 형식적이고 다소 지겨운 날일지라도, 그렇게 꾸준히 의미를 붙이고 이유를 찾고 좋은 것을 덕지덕지 갖다 붙이다 보면 답을 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누군가의 탄생. 실로 대수로운 것이었다고. 세상이 너의 탄생을 기다렸다고. 너의 인생은 찬란할 것이라고. 너의 인생에 고난도 아픔도 슬픔도 시련도 불안도 좌절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너는 기쁨도 행복도 감사함도 즐거움도 사랑함도 감동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조금만, 조금만 더 살다 보면 오르락 내리락 하며 너는 올라가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너의 탄생은 실로 대단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사실 진짜 선물은 너였다고. 



그렇게 기억하는 날들이 많아지기를 

용기 내어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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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ZG7TmxQbp5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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