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이 있는 숙소를 골랐던 이유
- 누구나 한 번쯤 여행 계획을 짜면서 고민에 시달렸을 것이다. 내 여행을 좀 더 싸게, 만족스럽게 다녀 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은 다양한 채널을 통한 검색부터 시작 된다. 시작 전 비행기 값을 한 푼이라도 낮추기 위해 경유를 택하고, 현지 교통비를 줄이기 위해 저가항공을 영어로 예매하거나 교통 패스를 미리 구입한다. 숙박비도 아끼기 위해 최저가 사이트 수십 개를 비교하며 가끔은 밤잠 이루지도 못하고 계속 찾고 또 찾기. 이처럼 여행 경비를 차지하는 대부분은 교통비와 숙박비, 식비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 비용들끼리는 근본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 교통비와 숙박비는 대개 여행을 떠나기 전 지출되는 사전 지출 항목이다.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긴 경로의 교통비가 가장 비싸며, 현지에서의 이동도 계획에 맞춰 미리 예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숙소 역시 마련 되어있는 상태에서 여행을 떠난다. 즉, 교통비와 숙박비는 여행을 떠나기 전 이미 절약을 할 만큼 해버린 항목인 셈. 그에 비해 식비는 현지 지출 항목이다. 여행을 떠난 후에야 구체적으로 얼마를 쓰고 얼마를 남길지 감이 오는 부분. 스캔 된 메뉴판을 통해 아무리 금액을 1원 단위로 맞춰놔도, '언제 또 오겠어' 하는 마음에서 시키는 맥주 한 잔이 쌓이고 쌓여서 낭패보는 경우도 왕왕 있다.
- 이번 여행에서 가장 걱정 한 부분이 식비였다. 식당을 정해도 메뉴는 즉흥적으로 고를 때가 많은데다, 근처 더 맛있는 식당이 있으면 당장에 이동해서 식사 해 버리는 성향상 식비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식사를 외식으로 떼우려다가는 교통 숙박을 합친 것 보다 더 많이 먹어버릴까 걱정했기에 결국 절반 정도의 식사는 숙소에서 해 먹기로 결심했다. 에어비앤비에서 부엌이 있는 숙소를 골랐고, 덕분에 저렴한 가격으로 현지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비엔나 / 리스본 / 포르투의 간단한 장보기 경험을 공유하려 한다.
- 비엔나는 마트에서 장을 보며 가장 만족했던 도시다. 일단 외식 물가가 생각외로 비쌌다. 제 값을 못하는 느낌은 아니었으나, 하루에 외식 두 번이 살짝 버거운 수준. 눈내리는 겨울밤 도착해서 숙소에 체크인 하자마자 근처 가까운 마트를 찾아봤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크게 세 개의 슈퍼 체인이 있다. 기본적인 재료들과 올리브오일, 발사믹식초, 레드와인. 통삼겹을 팔길래 사와서 칼로 썰어 구워먹었다. 사진에 보이는 'Klare Suppe'가 정말 맛난 수프였다. 건조된 블록으로 담겨있는데, 다른 유럽에서도 팔 줄 알고 사지 않은 것이 통한의 실수. 만약 저 Suppe가 보이면 반드시 구매 후 맛을 보세요. 마음에 드시면 마음껏 사오시길. 육수로 우려도 좋지만, 뜨거운물 붓고 수프처럼 마시기만 해도 기분 좋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장을 봐도 우리나라 돈으로 4만 천원 정도가 나왔다. 5일간의 아침식사와 커다란 삼겹살 덩어리, 와인과 계란 등을 포함해서 본 것 치고는 만족스러웠다.
>> 구입 추천 : 크랜배리잼, Klare Suppe
- 두 번의 조그만 장을 봤는데 모두 BILLA를 이용했다. SPAR는 뭔가 조명부터 인테리어까지 마음에 안들었달까. 라들러와 요플레가 세일해서 많이 집어왔다. 여기도 유통기한 임박 상품은 세일을 하는듯 했다. 요플레는 2+2 기획상품. 기존에 사 둔 올리브오일이 있기에 파스타를 기분좋게 해 먹었다. 사실 두 번째 장이 대박이었다. 판나코타 아이스크림과 굴라쉬 소스 및 굴라쉬용 고기를 사와서 직접 해먹었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 굴라쉬용 소스는 가루 스프인데 의외로 고기를 연하게 해 주는 효소가 들어있는듯 했다. 두 시간 정도 뭉근한 불에 꾸준히 저어주며 끓여주니 정말 맛있는 굴라쉬가 완성 되었다. 역시 '어디에도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추가 구매를 하지 않았다가 영영 살 수 없었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Klare Suppe와 더불어 필수 구입품. 그러나 한국에서 소고기가 그 만큼 싼가? 생각해보니 조금은 의문. 양짓살 두텁게 썰어서 오래도록 끓이면 비슷할겁니다. 판나코타는 공기가 듬뿍 차 있는 폭신폭신한 느낌이 그대로라 케익과 아이스크림 사이의 절묘한 맛을 잘 잡았다. 마트에서 파는 공산품이라고 생각 할 수 없을 만큼.
>> 구입 추천 : 굴라쉬 소스
- 리스본의 마트는 비엔나에 비해 다소 아쉬웠다. 사실 숙소 주변에서 가다보니 모든 슈퍼를 가지 않아 그렇게 느낀 점도 없잖아 있지만. 숙소 근처 미니프레소는 동네 슈퍼 수준의 규모인지라 정육점도 갖추지 않아 카레용 고기로 염장고기를 사버렸다. 나쁘진 않았지만 유감인 부분. 그러나 반갑고 놀라웠던 점은 밥을 판다. 우리 입맛에 맞는 식감은 아니지만, 충분히 조리된 쌀 자체로도 다양한 요리에 응용이 가능해서 종종 사먹었다. 2회차 장보기는 크림 파스타에 도전. 잘 보면 바깔라우 요리용 베샤멜 소스가 보인다. 걸쭉한 베샤멜 소스를 파스타에 응용하니 그 자체로도 만족스러웠다. 의외로 고기육수 블록은 별로였다. 와인은 너무나 저렴하니 도시별로 하나씩은 꼭 사먹기. 버섯도 통조림 버섯을 썼고, 베이컨도 유럽은 전체적으로 저렴한듯 하다. 남은 크림소스에는 밥을 섞어 리조또로 해먹었다. 한 끼 뚝딱!
>> 구입 추천 : 딱히 없음. 베샤멜 소스는 저렴하니 애용 가능.
- 세상에 장보기 하나를 담지 못했다. 그 만큼 리스본에서의 장보기는 큰 임팩트는 없었던것 같기도 하고. 무튼 꼬다리 다 잘라서 샌드위치용으로 파는 식빵이 의외로 많길래 하나 사 봤다. 리스본 장보기는 끗. 포르투갈 물가 자체가 비엔나에 비해서는 외식이 만만한 편이고, 사실 근처에 Time Out Market이 있어서 외식하기 딱 좋았던 점도 한 몫 했다. 이렇게 포르투로 넘어갔다.
- 포르투갈어로 슈퍼마켓이 Supermercado인가 보다. 중국 식료품점에 한국 라면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포르투에 도착하자마자 들렀다. 진라면 등 다양한 라면이 있었지만 우리 입맛을 사로잡은건 불닭과 짜장라면. 외국에서 가장 땡기는 것이 의외로 짜장과 카레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참이슬은 구입하지 않았다. 소주보다는 포트와인이 땡겼으니. 짜장과 불닭을 섞어 떡과 함께 조리하여 저녁에 곁들여 먹었다. 환상.
>> 구입 추천 : 다양한 한국 라면, 떡
- 포르투 마트는 리스본과 또 달랐다. 특히 Froiz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마트. 식재료도 다양했는데 놀라웠던 점은 머릿고기 누른 편육부터 닭 부속까지 판매했다는 것. 닭똥집을 팔길래(!!!) 숙소에 갖고와 소금에 볶아 와인 안주로 먹었다. 세상에. 돼지고기도 스테이크처럼 먹었고, 포트와인을 처음 먹는지라 겁없이 식사에 곁들여서도 한 잔. 사실 포트와인이 너무 달아서 식사랑 어울리지 않는다는걸 잘 몰랐지만 맛있으니 됐다. 샌드맨 파인토니 큰 병이 7유로 정도. 행복해서 포르투에만 한 달 살고 싶었던건 비밀.
>> 구입 추천 : 포트와인, 포트와인, 포트와인.
- 이처럼 다양한 장보기를 경험 하면서 나라의 식문화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여행을 했다. 사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도 장보기를 경험 했으나 사진이 많지 않아 아쉽다. 스페인 마트는 '메르카도나'에서 '하센다도 꿀국화차'를 사면 된다. 이 정도면 되겠지? 사진을 보며 글을 적다보니 BILLA의 굴라쉬와 Frioz의 포트와인을 곁들여 한 끼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우리나라에서 장을 보면 매번 고뇌에 휩싸여 지갑을 부여잡고 울곤 했는데, 유럽에서는 오히려 장을 보며 행복했다. 나중에는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더욱 더 많은 마트와 재료를 겪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