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튜브가 추천 동영상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아이돌 멤버의 자취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의 클립이었는데, 그가 소개하는 집안 곳곳에는 술병이 가득했다.
차갑게 마시는 술, 상온 보관하는 술.. 냉장고, 장식장..
어딜 가나 술병들이 질리도록 쌓여있었다. 패널들이 그를 순 주정뱅이 아니냐며 놀렸지만, 그는 꿋꿋하게 자기는 술을 많이 마시는 게 아니며그저 풍류를 즐기는 것이라고 웃어넘겼다. 그 영상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이들이 보면어쩌지?' 하는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유튜브에 술을 내세우는 채널이 많아져 문제이며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봤었다. 그래서 대체 어떤 영상인지 찾아보기도 했었다.그리고 경악했다.
유명 연예인들이 유튜브에서 술을 만취할 때까지 마시다가 각양각색의 술주정을 하는 것을 웃음 포인트로 내보내고,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겼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나에겐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어떤 면에선 범죄를 저지르고 술을 마시고 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도 연상이 되었다.)
게다가 "피맥(피자와 맥주)은 진리다", "이럴 땐 소주가 빠질 수가 없지!", "이런 날씨엔 막걸리거든!"이런 식의 일상 속에서 늘 술이 있어야 한다는 듯한 멘트가 난무하는 유튜브 영상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아이들이 이런 영상을 보며, 술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될 것 같아 걱정되었다.
사실 유튜브만 문제인 것은 아니긴 하다. 유튜브는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이 더 쉽게 접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유튜브가 우리의 일상에 없을 때도 사람들은 술을 찬양하는 말들을 주문처럼 외웠다.
"남자가 술을 좀 마실줄 알아야지!" "원래 술을 마셔야 진짜 친해지는 거 알지?" "하루 한 잔의 술은 약이야. 약. 혈액순환이 잘 되거든~"
대한민국에서 술을 잘 마시고, 주량이 센 것은 쉽게 장점으로 여겨진다. 사실 몇 년 전까지 나는 비주류(非酒類) 음료를 좋아하는 비주류(非主流)였다. 한국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뭘 모르는, 놀 줄 모르는 사람취급을 받는다. 비주류였던 나는 확실히 안다. 내가 받았던 대접이기도 하니까.
술을 못 마신다고 해도, 싫어한다고 해도, 끈질기게 권하는 상대도 많았고, 내가 술을 못 마셔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쉽다는 말도 참 많이 들었다. 술은 안 마실지언정 모임에는 참석을 했건만.. 꼭 술을 나눠 마시며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대체 무엇인지.. 술을 마실 줄 알게 된 지금도 잘 모르겠다.
술은 신경을 마비시키는 물질이다. 술을 마시면, 감각과 순발력, 사고력 등 여러 가지 능력이 평소보다 부족해진다. 혹시 그래서 우리는 술을 찬양하게 된 것일까.
맨 정신으로 있기엔 너무 재미가 없는 현실에, 내키는 대로 말을 하다가 해버린 실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래서 일상을 또렷하게 살기보다는 흐릿한 필터를 끼우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씁쓸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