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가진다는 것은
그 비밀을, 언제 어떻게 알려야 할까?
3개월 간의 준비 기간 동안 참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나는 결심을 하고, 목표를 세우면 안달복달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정만 가득했을 뿐 난 아기를 갖는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몰랐다. 이전에도 말했듯 나는 내가 아기를 갖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아기가 생길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유튜브를 통해서 임신과 난임에 대해 공부하고 나니 깨달았다. 내 나이에, 한 번에 아기가 생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회적으로 젊은 나이와 신체적으로 임신이 잘 되는 나이에는 크나큰 괴리가 있었다. 하지만 생물학적 나이는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나이에는 1년 정도는 노력을 해야 아기가 생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몇 번의 시도와 몇 번의 실패를 겪자 임신테스트를 하는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테스트기를 가지고 욕실에 갈 때마다 얼마나 생각이 많았는지 모른다.
아기가 생긴 것을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사람은 나니까. 이 소식을 남편에게 전해야 하는데, 어떻게 전해야 할까. 남편은 어떤 반응일까. 상상을 하며 비장하게 욕실로 들어가곤 했다.
그리고 나선 매직아이의 시간, 테스트기를 뚫어져라 보면서 가느다란 선이라도 나타나진 않나 조마조마해했다. 뭔가 보인 것 같아서 남편에게 선이 보이지 않냐고 물었는데, 단호하게 '아니다. 안 보인다'는 말을 듣고 차게 식기도 했다. 남편 입장에선 안 보이니 안 보인다고 한 것이지만, 나는 나만 아기를 원하는 것인가 싶어서 조금 뿔이나기도 했다. 티를 낼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몇 번의 아침이 지나자 나는 남편 출근 전에 테스트기를 하는 것이 싫어졌다.
꼭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들고 검사를 받는 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테스트기를 하고 나서, 보이는 것이 없고, 며칠이 있으면 생리가 시작되었고, 그러면 나는 아기에게 해가 될까 참아왔던,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먹고 싶어 하는 컵라면을 먹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안쓰러워했다.
이번에 임신이 안된다면 나는 가임력 검사를 다시 한번 받을 것이라고 벼르던 달이었다.
다음 달부턴 아예 병원에서 날을 받아와야겠다고 다짐을 했던 달이기도 하다.
남편이 출근하고 난 후 나는 혼자 테스트기를 해봤다.
두 줄이었다.
이제까지 남편에게 테스트기를 내밀며 뭔가 보이는 거 같지 않냐고, 자세히 잘 봐보라고 말했던 내가 우스워질 만큼 두 줄은 이렇게 보이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벅차고, 무서웠다.
내 몸 안에 생명이 있다. 나는 몰랐지만, 이미 아기가 날 찾아와 있었다.
남편에게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들고 다다닥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런데.. 너무 낭만이 없었나 싶었다. 우리의 아기가 생긴 것을 이렇게 알려도 되나?
이럴 거면 아까 남편 출근 전에 같이 있을 때, 확인할걸.
아직 남편은 카톡을 확인하지 않았다. 황급히 카톡 메시지를 지웠다.
그리고, 임신출산 대백과를 펼쳤다. 보건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임산부 관련 제도를 알아봤다. 그때, 남편에게 무슨 일이 나며 카톡이 왔다. 카톡이 왔었던 것 같은데 지워져서 내용이 안 보인다며 무슨 일이 있냐고 했다.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며 하루를 보낸 후 퇴근한 남편과 마주했다. 남편은 혹시 임신테스트를 해봤냐고 물었다.
거짓말에 약한 나는 우물쭈물거리며 무서워서 아직 못해봤다고 간신히 말했다. 아직은 말할 수 없었다.
이미 나는 아주 사소하지만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내 제안에 따라 우리는 근처 대학교 캠퍼스로 산책을 나갔다. 내가 저녁에 일하지 않는 날엔 산책을 나가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기에 남편은 의심 없이 따라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캠퍼스를 거닐다가 가로등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나는 품에 넣어뒀던 엽서를 꺼냈다.
테스트기가 붙어있는 편지였다. 남편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상기된 얼굴로 진짜냐고 묻다가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다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차를 마시며 내 몸에 찾아온, 우리의 아기에 대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기 태명은 무엇으로 할지 양가엔 언제쯤 알릴지, 내가 카톡을 보냈다가 지웠는데도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인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힘껏 행복해했다.
이 정도면 첫 번째 임밍아웃은 성공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