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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플래닛 Dec 18. 2023

햄스터는 햄스터답게 화를 내면 된다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머리가 띵할 정도로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틀에 갇히지 않은 유연한 사고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다가 주인공이 화가 나서 공룡으로 변해 쿵쾅거리는 장면이 나왔다.

'러분은 화가 나는 순간에 나는 어떤 동물로 변하나요?'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공룡, 사자, 호랑이, 곰... 덩치가 크고 사나운 동물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햄스터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은 마음에 다시 물었다.


○○아, ○○이는 화가 나면 햄스터로 변한다고?


"!" 아이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햄스터로 변한 ○○이가 화를 내는 모습을 표현해 볼까?"


아이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갉갉갉.. 무엇인가를 갉아대는 모습을 취했다.

그 모습을 보자 웃음이 터지며, 그 마음이 온전히 이해가 되었다.


렇지.. 공룡, 사자, 호랑이.. 다 무섭고 사나운 동물이지만, 꼭 그런 동물들에게만 감정이 있는 건 절대 아니지. 햄스터도 토끼도.. 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다.


"저는 화가 나면 햄스터로 변해서 갉갉갉..
모든 전선을 갉아먹을 거예요."


아이의 진지하지만 짓궂은 말에 다시 빵 터졌다. 

"우와... 휴대폰, 노트북, 냉장고.. 이런 전자 제품의 전선이 끊기면 정말 곤란하겠다. 햄스터처럼 화 내니까 너무 무서운데?!"

내가 맞장구를 치자 아이는 신나서 깔깔깔 웃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아이들과 와글와글 이야기하다가 '동물로 변신해서 화를 낼 수도 있지만, 상대에게 지금 내가 지금 느끼는 기분을 말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하는 결론을 내고도 아이의 말은 오래 내 마음에 남았다.


때로는 나를 지키기 위해 화를 내는 일도 필요하다 생각한다. (물론  방식이 아주 중요하다!! 요즘 뉴스를 보면 무서운 사례가 너무 많다..)


가끔씩은 '나는 왜 사자가 아닐까. 코끼리나 하마처럼 크고 존재감이 있는 동물이 아닌 걸까. 누가 나 같 작은 햄스터의 분노에  신경을 쓸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 작아지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햄스터는 햄스터답게,

목소리를 내고 살아가면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

오늘도 아이에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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