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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조 Sep 17. 2022

홋카이도 부타동 스미레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4길 61

  2019년 말에 받았던 종합검진에서 정밀&추가 검사를 요하는 항목들이 나왔다. 그래서 2020년 초부터 한동안 주기적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화요일이나 목요일 오전 시간에 3개월 간격으로, 가끔씩은 조금 더 자주, 연차나 반차를 내고 병원을 갔다. 

  정기적으로 받는 검사는 항상 '금식'을 요했다. 그래서 가능한 가장 이른 시간에 검사와 진료 일정을 잡았다. 보통 병원일을 마치고 나면 11시 전후였다. 그렇다, 딱 배가 고플 시간이다. 업무 일정 상 반차를 써야 하는 날은 곧장 회사로 돌아가 근처에서 점심을 때웠지만, 연차를 쓴 날에는 뭔가 루틴을 만들고 싶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평일에 자유 시간이 생기는 거니 그냥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학창 시절부터 자주 다니던 CGV 신촌아트레온이 근처고 하니, 점심을 먹고 아트하우스에서 영화나 한 편씩 보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맛집 정보를 찾다 우연히 알게 된 곳이 '부타동'을 파는 스미레였다.


  첫 방문 때, 오픈 시간에 맞춰 간다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11시 반에 매장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이후로는 가능하면 오픈 시간 전에 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두고 얼마나 지났을까 한 명 자리가 나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먼저 가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은 U자형으로 배치된 다찌 테이블의 왼쪽 끝에 앉았다. 그리고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난 뒤 이 공간에 깊게 빠져들었다. 


제일 처음 방문했던 2020년 1월의 스미레(좌), 다른 노렌이 걸려 있었던 어느날(중), 그리고 2022년 9월의 스미레(우) 

  우선 부타동이라는 메뉴가 처음이었다. 일본식 덮밥류를 좋아하지만 부타동은 조금 생소한 메뉴였다. 무엇이든 첫 경험은 강하게 기억되는 법이라 그런지 그 메뉴 자체가 좋았다. 

  두 번째는 가게의 분위기가 너무너무 좋았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적당한 조도와 대화를 금지하는 운영방식 덕분에 매우 조용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차분히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이 운영 방식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방문하기에 만들어지는 일종의 약속이 좋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음이 좋았다. 간간히 음식을 서빙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소리와 잘 먹었다는 인사 소리와 잔잔한 라디오 소리도 좋았다.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그런 느낌. 특히 화룡정점 같았던 포인트는 일본 라디오 방송이었다. 진부한 표현이라 쓰고 싶지 않지만, 진자 말 그대로 잠깐 일본의 어느 동네 덮밥집에 온 것 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방문 때 라디오 방송이 아닌 재즈 음악이 나오는 게 아쉬울 정도로 그 공간에 머문 순간을 온전히 즐겼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잔상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 만큼 완벽하게 어우러진 공간감과 분위기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부타동이 맛있었다. 숯불에 적절하게 구워진 돼지고기, 과하지 않게 매력적인 타레소스, 고슬고슬한 밥까지. 양념이 잘 베어 숯불에 구워진 돼지고기 위에 고추냉이를 살짝 얹고, 타레소스가 적당히 묻은 밥과 함께 한 입 먹고 나면, 저절로 게걸스럽게 덮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된다. 시원한 우롱차를 한 잔 곁들이면 더 좋다. 


  그래서일까, 연차를 쓰는 날이면, 별다른 고민 없이 그곳을 다시 찾았다. 처음 방문했던 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았다. 부타동과 우롱차를 시키고, 싹싹 비운 후 가게를 나서면 기분이 좋았다. 당시 SNS에 남긴 감상을 그대로 빌려오자면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벗어나 다른 세상에 다녀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 병원에 가는 날이 기다려질 정도로.


  다행히 건강이 좋아진 덕분에 더 이상 주기적으로 신촌을 나갈 일이 줄었고,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한동안 스미레와도 멀어졌다가 얼마 전, 친구와 신촌에서 약속이 있어 다시 스미레를 찾았다. 코로나 탓에 일부러 좌석 간 간격을 확보하느라 대기시간이 조금 더 늘어나긴 했지만, 다른 모든 것들은 그대로였다. 그 덕에 오랜만에 배부르게, 그리고 기분 좋게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소소한 행복, 조만간 다시 그 행복을 만끽하러 신촌에 나갈 일을 만들어야겠다. 점심은 먹고 만나기로 하고, 한 번 더 부타동을 먹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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