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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조 May 12. 2023

포시즌스 호텔 서울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97 

  개인적으로 밀도 있고 행복한 경험을 했던 공간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묘한 기분이 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렵지만, 굳이 표현을 해보자면 그 공간이 원래 살아오던 세상과 따로 분리되어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공간의 '문'이 마치 하나의 포털 같은 역할을 하여 드나들 때마다 다른 차원으로 오가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이하 포시즌스 서울)은 지금껏 방문했던 모든 호텔 중에 가장 자주 이런 느낌을 경험했던 곳이다. 일상 속의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단절되어, 오롯이 그 공간 안에서의 경험에 온전히 몰입하여, 그 간극을 통해 만들어진 시공간의 이격을 즐기는 곳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서, 아니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아하는 호텔을 하나 고르라면 언제나 포시즌스 호텔 서울을 선택한다.

  그래서 기념할 만한 일이 있거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며 숙박을 하는 형태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계속 찾아가고 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거나, SPA에서 마사지를 받는다거나, 혹은 찰스 H에 들러 술을 한 잔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포시즌스 서울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꽤 많이 생겼다.


  포시즌스 서울에서 제일 먼저 경험한 공간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보칼리노였다. 퇴근 후에 사고 싶은 책이 있어 광화문 교보문고를 들렀다 가는 길, 갑자기 찾아온 허기에 새로 오픈한 포시즌스 서울에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포시즌스 마카오에서 워낙 좋은 경험을 했던 터라 한 번 방문하고 싶었는데, 이 기회에 구경이라도 하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전 조사 없이 2층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보칼리노로 향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블랙 트러플과 제철 버섯으로 만든 풍기 크림 딸리에뗼레(Tagliatelle Al Tartufo)를 주문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참 맛있었다. 서비스 템포도 적절했고, 앉아 있는 테이블도 다른 테이블과 간격이 멀고 시야가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어 Private 한 느낌이 들었다.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책을 읽으며 느긋하게 디저트까지 즐기고 나왔다. 아마 1시간 조금 넘게 포시즌스 서울에 머물렀던 것 같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호텔 밖을 나서는 순간 갑작스럽게 공감각적으로 다른 분위기가 덮쳤다. 그제야 포시즌스 호텔에 있는 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시각적, 후각적, 청각적인 측면이 모두 특별했다. 포시즌스 서울이 '광화문'에 있기에 이러한 차이가 더욱 극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포시즌스 서울에는 전광판이나 차량의 불빛 대신 눈에 부담스럽지 않은 조도와 도시의 소음을 대신하는 차분한 음악이 있었다. 분주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차량들과 달리 차분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도시의 매연 대신 포시즌스 서울을 위해 만들어진 향이 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도시인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일대의 모습과 모든 면에서 대조되어, 문 하나 사이로 느끼는 모든 감각의 대비가 극명하게 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문을 나섰던 그 순간 포시즌스 서울과 사랑에 빠졌던 것 같다. 그리고 포시즌스 서울을 방문할 때면 언제나 그 기분 좋은 간극을 즐길 수 있었고, 그 덕에 일상과의 단절이 필요할 때면, 그 단절을 통해 에너지를 얻어야 할 때면 포시즌스 서울을 방문하곤 했다. 다음 해 생일을 맞이하여 호캉스를 포시즌스 서울로 떠났고, 자연스레 대부분의 부대시설을 이용했다. 생일이나 연말연시 같이 의미 있는 이벤트를 기념하고자 할 때면 제일 먼저 후보지가 되었고, 그럴 때면 언제나 포시즌스 서울의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룸 컨디션도 특급 호텔답게 훌륭하다. 물론 최근 2~3년 사이에 오픈한 조선 팰리스, 페어몬트, 소피텔 등등 신상 특급 호텔들에 비하면 이제는 다소 구식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있지만, 여전히 나에겐 제일 좋은 호텔룸이다. 개인적으로 포시즌스 서울의 방에 머물다 보면 이 공간이 '동양화' 또는 '백자'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처음에 혼자 쓰기 너무 넓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점차 그 공백들이 주는 편안함과 쾌적함에 빠져들었다. 인테리어도 전반적으로 차분한 느낌이라 더욱 공간이 여유롭게 느껴졌던 것 같다. 통창이 주는 시야감도 이러한 매력을 배가 하는 요인 중 하나 일거다. 코로나 팬데믹 때, 서울 특급호텔 호캉스 수요가 워낙 많다 보니, 로비와 엘리베이터 같은 공간이 다소 북적이고, 정신없는 때가 있었다. 그때도 체크인 후에 방에 들어서니 그런 번잡함은 금세 잊히고, 무척이나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었던 것도 공백이 만들어낸 쾌적함 덕분이지 않을까 한다. 매우 뻔한 이야기지만 침대와 소파, 데스크와 의자 전부 매우 편안하다. 여러 호텔을 다니며 호캉스를 했지만, 포시즌스 서울에서 자는 날 가장 숙면을 취했던 것 같다. 이건 약간의 플라세보 이펙트와 콩깍지 탓일 수도 있지만.

  입지도 매력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상과의 공감감적 이격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뚜벅이로 다니기에도 편하고, 근처에 좋아하는 장소들, 교보문고과 스타벅스, 경복궁, 청계천, 광화문 광장, 세종문화회관 등등을 도보로 방문할 수 있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매우 마음에 든다. 또, 저녁 시간에 룸에서 내려다보면 꽤 멋진 야경도 즐길 수 있다.


  호텔 부대시설 중에 개인적으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레스토랑 이야기를 이어서 하자면, 간단하게 말해 모든 레스토랑이 다 훌륭하다. 포시즌스는 원래 F&B에 신경을 많이 쓰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F&B를 구성할 때,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으로 최상의 퀄리티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걸 지향한다. 그렇기에 숙박은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레스토랑이 포시즌스 브랜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레 녹아들게 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만약 이게 맞다면, 내가 그 전략에 그대로 Lock-in 되어버린 고객일 거다. 

  아키라 백은 시그니쳐 메뉴들이 좋았다. 튜나피자나 타코 같은 메뉴들은 그 존재 만으로도 방문할 이유가 될 만하다 생각한다. 유유 안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포시즌스 호텔 마카오에서 생에 첫 '중식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경험했었던 스토리와의 연결성도 있어 더 좋다. 특히 베이징덕 코스는 가성비도 훌륭하다. 

아키라 백의 시그니쳐 메뉴인 튜나피자와 타코, 롤. 
유유안 베이징덕 코스는 애피타이져부터 요리, 식사까지 매우 훌륭한 구성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

  그리고 여름 시즌 가든 테라스에서 팝업으로 운영했던 BEER & BURGER도 좋았다. 그 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문화소외계층 어린이들에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여 주는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친구들과 함께 룸에서 간단한 티타임 및 회의를 갖고 BEER & BURGER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그때 핸드 앤 몰트 수제맥주와 함께 여러 가지 버거를 같이 먹었는데, 삼겹살과 김치를 활용한 '서울 버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침 무렵 테라스에서 바라본 노을도 너무 좋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더 좋았던 걸 테지만.

BEER & BURGER에서 먹었던 서울 버거(좌)와 오스틴 버거(우)
BEER & BURGER를 즐겼던 가든 테라스(좌), 그리고 마루의 망고 빙수(우)

  신라호텔 애플망고 빙수보다는 조금 아쉽지만, 빙수들도 다 맛있다. 여름휴가철에 바캉스 떠나는 대신 마루에서 빙수 먹는 게 루틴이 되기도 했다. OUL이랑 더 마켓 키친은 아직 못 가봤는데, 다음 호캉스 때는 이 두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겠다.


  마지막으로, 포시즌스 서울 이야기를 할 때면 THE SPA와 찰스 H도 빼먹으면 안 되지만, 두 곳은 워낙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 만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따로 각각에 공간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풀어 볼까 한다.

  아무튼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는데, 정리하면 포시즌스 서울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가능한 자주 즐기러 가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슈가 높은 담벼락을 치고 있다. 슬프게도 최근에는 그 담이 더욱 높게 느껴진다. 그래도 꼭 숙박을 위한 게 아니더라도 언제나 기회가 된다면,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포시즌스 서울은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호텔이자, 전 세계에서 제일 편안하게 쉬었다 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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