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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조 May 06. 2023

속초의 골목에서 만난 공간들.

관광지를 벗어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들.

  지난 2월, 친구 덕분에 오랜만에 속초를 방문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열심히 돌아다닌 덕분에 속초의 터줏대감 같은 곳부터 나날이 유명해지고 있는 라이징 스타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속초라는 도시에서의 추억을 더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여행 중에는 이전과 달리 유명 관광지에서는 조금 벗어난 골목에 있는 공간을 많이 들렀는데 참 좋았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교동에 위치한 라이픈커피(reifen coffee)였다.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덕분에 더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크림치즈와 무화과잼을 얹은 토스트와 직적 로스팅한 에티오피아 커피 한 잔을 시켰다. 개인적으로 강배전 로스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직접 로스팅한 경우에는 약배전(라이트 로스팅) 원두로 내린 커피도 좋아한다. 마침 같이 먹은 토스트와도 잘 어울렸다.

  내부 공간도 매력적이었다. 커피를 내리고 간단한 베이커리를 조리하는 주방은 매우 포근하게 느껴졌다. 벽면과 테이블, 의자들이 비슷한 톤으로 맞춰져 있고, 중간중간 놓인 철제 선반에는 판매 중인 원두와 굿즈, 식물들과 책 등 다양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벽면에는 다양한 포스터들도 DP 되어 있었는데, 매장에서 구매할 수도 있었다.

  여기에 공간을 가득 채우는 햇빛이 여유롭고 따듯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고 약간 언덕진 골목에 위치한 덕분에 햇빛이 잘 들었다. 그러다 보니 햇빛에 따라 실내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는데, 마침 날이 맑아 '포근하다'는 느낌을 더했던 것 같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그 나름대로 차분하고 시크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이번엔 다음 일정 탓에 충분히 여유를 즐기진 못했지만, 다음에 다른 날씨, 기왕이면 비가 내리는 날 한 번 더 방문해 보고 싶은 카페였다.



  또, 동명동에 있는 카페 옥남도 좋았다. 중앙초등학교부터 속초문화예술회관까지 아우르는 동명동 일대 골목에는 이미 유명한 맛집들로 사람들이 항상 붐비는 곳이다. 그 골목을 거닐던 중 붉은 벽돌로 꾸며진 카페에 눈길이 향했다.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본 후에도 그 스토어 프런트가 아른거려 다시 그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조그마한 동네 카페였다. 창밖이 훤히 내다 보이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전체적으로 우드톤으로 장식된 인테리어와 식기들 사이에 카페 한가운데 놓여 있는 하얀색 난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창이 큰 인테리어 덕분에 햇빛이 잘 들었다. 레이픈도 그렇고, 카페 옥남도 그렇고, 햇빛이 잘 드는 카페들이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이날 따라 날이 좋았던 덕분에 만들어진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이 뇌리에 더욱 강하게 박혔던 것 같다.

  잠깐 책을 읽으며 앉아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자주 오고 갔다.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오신 분들 뿐 아니라 단골처럼 매일 들르는 듯한 사람도 있었다. 대화 주제도 대부분 인근에 있는 식당이나 카페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다음에는 이 분들처럼 인근에서 식사도 하고, 설악젤라또에서 젤라토도 먹고 나서 입가심하러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속초 여행 중에는 해가 진 후에도 밤바다를 뒤로 한 채 도심으로 향했다. 같이 한 지인이 찾아둔 LP 바들을 들러보기 위해서였다. 두 장소 모두 속초의 어느 골목의 밤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30여 년의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설은 공간 곳곳에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주인 어르신의 관심사와 애정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오랜 시간 수집한 수집품들과 LP 레이블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까지 더해져 있었다. 이렇게 시간과 사람들이 만들어낸 분위기는 다른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니크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공간에서는 추억을 자극하는, 조금 오래된 노래들을 듣고 싶어 졌던 것 같다. BSB나 웨스트라이프, 비틀즈, 레드 재플린부터 김광석, 유재하와 같은 아티스트들의 노래들 말이다. 마침 카운터 바로 옆에 앉아 있었던 덕분에 대화 중에 나온 노래들을 LP로 들을 수 있었다. 넌지시 듣고 싶은 올드 팝과 가요들을 언급하면 사장님께서 분위기에 맞춰 틀어주셨던 덕분에 더욱 마음껏 이 공간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아! 인심 후하게 넉넉하게 내려주신 커피도 오랜 시간 그 공간을 즐길 수 있게 한 몫 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설은 언젠가 다시 방문해도 지금 이 분위기 그대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마 한 자리에 오랜 시간이 겹겹이 쌓여 온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레트로한 트렌드를 구현한 공간이 아니라, 오픈했을 때에도 지금과 같은 음악이 흐르고 대화가 오고 가는 공간이었고, 그저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레트로가, 클래식이 된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 말이다. 소설은 그런 공간이었고, 그래서 더 좋았다.


  반면에 교동에 있는 노웨어(nowhere)는 소설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교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노웨어는 트렌디한 공간 구성이 매우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사장님의 취향으로 가득 채워진 조그마한 현대미술 갤러리 같은 공간이었다. 

  모든 조명이 녹색이었다. 그래서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온통 초록빛 공간이었다. 계산할 때 그린카드로 깔맞춤 하고 싶어질 만큼 온통 초록초록해서 좋았다. 요즘 이상하게 초록색이 좋았던 터라 더 좋았다.

  음악은 (소설과 비교해 보면) 트렌디한 팝, 힙합과 EDM 등이 나왔던 것 같다. 몇몇 노래는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고, 바 뒷 벽면을 가득 채운 바이닐들도 한두 번 들어본 아티스트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 공간에서 인상 깊었던 마지막 포인트는 인테리어 소품 중 하나였다. 바 위에 올려진 CRT 모니터와 벽에 걸린 스크린에서는 미디어 아트 같은 영상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과 연관된 영상은 아니었지만, 초록빛 가등한 공간에 미러볼과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아주 뻔한 말장난이지만, nowhere는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은 곳이자, now/here 이기에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만 존재하는 공간이라고도 생각하는데, 이 말장난에 딱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운전을 해야 했기에 술을 마시지 못해 아쉬웠다. 위스키 한 잔 하면서 멋진 공간감을 즐기기 참 좋을 것 같았던 터라 더더욱 아쉬웠다. 다음엔 귀찮고 돈 아까워도 택시 타고 와서 술 한 잔 꼭 하고 싶다. 


  속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일식당 키친오뮤도 골목에 위치해 있다. 다른 장소들에 비하면 속초의 가장 큰 번화가에 있긴 하지만 찾아가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갈 곳에 위치해 있어서 좋았다.

  점심에는 일식을 베이스로 한 단품을 팔고, 저녁에는 오마카세(맡김 차림)로 코스 요리가 제공된다(주류 주문 필수). 골목에 있는 식당들이 다 그렇듯, 주차가 문제인데 주변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어 주인 분께 허락을 구하고 운 좋게도 가게 앞에 세울 수 있었다.

  여행을 가면 그 동네 음식을 즐기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메뉴들을 로컬 음식 + 유명 맛집으로 채우는 편이라 북적북적이는 분위기에 녹아들어 후루룩후루룩 흡입하듯 먹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한 끼 정도는 조용한 곳에서 차분히 먹는 걸 선호한다. 이번 속초 여행에서는 키친 오뮤가 그런 장소였다.

  다양한 해산물을 활용한 요리들이 코스로 제공되는데, 자왕무시-모리아와세-파스타-빠삐요뜨-술찜-후토마키를 베이스로 철에 따라 디쉬들에 변주를 주는 듯했다. 다소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전반적인 서비스 수준이나 요리들은 적당한 수준이었다. 속초 여행의 마무리로 즐기기에도 매우 적절한 식사였다.


  나에게도 속초는 아직 속 시원한 동해 바다와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킨 명소들이 떠오르는 도시이긴 하다. 그 푸른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명소들이 많기에, '바다가 보고 싶을 때' 떠오르고 떠나는 도시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익숙한 명소들에서 벗어나 골목을 거닐며 매력적인 공간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을 느꼈다. 다음에 또 속초에 들리면, 새로운 공간을 발견해 내는 즐거움을 또 한 번 느끼고 싶다.


끝.


'속초에서 쓰는 속초 이야기'를 적은 후 머물렀던 1박 2일 동안 방문했던 장소들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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